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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이아빠 Oct 10. 2022

me and NZ - (3) 아오테아로아

키아오라

8월 15일 김포공항.  목욕탕에서 얘기 꺼낸 지 딱 1달만 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아버지 친구분들이 호주에 많이 살고 계셔서 처음 목적지는 호주 시드니/브리즈번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침 그때 MBC 탐사 보도 TV 프로그램이 '호주 유학생들의 실체'라는 것을 방송했고, 그곳에선 유학생들이 술에 취해 밤거리를 헤매다 길거리에서 잠이 들었다.  부모님은 급하게 목적지를 호주에서 뉴질랜드로 변경했다.  나는 '아무려면 어떠랴 호주나 뉴질랜드나 한국만 벗어날 수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를 외치며 호기롭게 비행기에 올라탔다.


동네 친구들이 많이 섭섭해했다.  유학을 떠나기 1달 전에 알렸기 때문이다.  워낙에 급하게 결정이 된 것이어서 어쩔 수 없었지만 섭섭 해 했다.  매년 방학 때 돌아오리라고 약속하고 마지막으로 친구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노래방에서 한곡씩 뽑았다.   그 당시 에는 노래방에서 노래를 부르면 서비스로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해 줬는데, 그날은 대표로 내가 그 테이프를 가지게 되었다.  뉴질랜드에서 딱 한 번 들어봤다.  한국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때 노래방 같이 다니던 그 친구들은 세월이 지난 지금도 만난다.  친구들 돈 들고 튄 한 명 빼고.


"그런데 어쩌지? 난 영어를 못 하는데?"


한 달 뒤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간다고 하니까 설레는 것도 잠시,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영어는 곧 잘했다.  흥미도 있어하고 성적도 잘 나왔다.  하지만 이것은 실제 상황이다.  막상 외국 사람과 대화를 해 본 적도 없고, 어디서 영어로 얘기해 본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의 영어 교육의 문제점에 대해 토로할 시간이 없다.  나의 비행기는 어쨌든 1달 후 출발한다.  걱정이 돼서 아버지에게 얘기했다.  "학원 같은 거 얘기하는 거냐?  그냥 부딪히면서 하면 팍팍 는다.  걱정 말아라."  왠지 아버지 말에 믿음이 생겼다.  믿습니다 아버지.  그런데 이 것 때문에 도착하자마자 밥을 굶게 된다.  언어는 곧 밥과 연관되어 있다.


제주도 갈 때 타본 비행기 말고 장거리, 해외 비행은 처음이었다.  비행시간 내내 지겨웠다.  요즘처럼 개별 모니터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도 없던 시절 비행기 안에서 할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처음 장거리 비행기를 탄 사람으로서 불편함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지금 같으면 사람 없는 자리 찾아서 누워가기도 하고 할 텐데, 그땐 내 자리에 꼿꼿이 앉아서 10시간 이상을 버텼다.  불편하고 온 몸이 굳어갔지만 왠지 이것도 못 버티면 나의 유학 생활은 실패로 끝나고 말 것 같았다.  장거리 비행으로 부어오르는 다리를 처음 느껴보며 그렇게 10시간을 버텼다.


관광업과 낙농업으로 운영되는 나라 뉴질랜드.  이곳은 전 세계 우유와 양털의 공급처이다.  그래서 그런지 뉴질랜드에 가까워질 무렵부터 비행기 모니터에서 뉴질랜드 관광 홍보 영상이 계속 리플레이되었다.  우유와 양털이 모니터로 계속 방송됐다.


아오테아로아 : 길고 흰 구름의 땅


뉴질랜드에 영국인들이 처음 도착하기 전, 먼저 이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을 마오리족이라고 부른다.  '아오테아로아' 는 마오리족이 뉴질랜드를 부르던 말이다.  '아오테아로아'.  3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단어는 나에게 묘한 기분을 준다.  마치 내가 뉴질랜드 사람인양 그리움과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된다.  그렇게 10시간을 날아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에 도착했다.  만 14세 그리고 11개월 의 나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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