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짱이아빠 Oct 24. 2022

까만 잠바와 블랙진

me and NZ (7)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될지 몰랐다.  정말 집중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런 일들이 일어날까 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뉴질랜드 생활을 시작한 지 100일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지나가던 자동차에서 깡통이 날아오는 일이 발생했다.  그 순간에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그냥 자전거를 멈추고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방금 '인종차별'을 당한 것 인가?


인종차별이라는 것은 사실 이 세상 어디에나 있다.  좁디좁은 우리나라에도 지역차별이 있지 않은가?  우리나라 사람들도 어두운 피부의 사람들을 무시하고, 개발도상국에서 온 사람들을 멸시하는 일 도 발생한다.  인종차별을 당했다는 것에 분노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여타 개발도상국에서 온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아 화가 났다.  연필도 변변히 만들지 못하는 곳인데, 자동차와 군함을 만드는 나라에서 온 사람을 무시하다니 몰라도 너무 모른다!  아무튼 기분이 많이 나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백인들 중에 머리카락도 다 밀고 하얗게 화장을 한 건지, 원래 그렇게 하얀 건지 한 피부색을 가진 까만 잠바와 블랙 진을 입은 애들이 가끔 무리 지어 시내를 돌아다니곤 했다.  '스킨헤드' 다.  유색인종에 대한 막연한 적개심을 가지고 다니는 '조폭' 느낌의 단체이다.  하지만 그 존재가 웃음을 유발했다.  이 도시에 인구가 몇 명이라고 '스킨헤드'라니..  마오리 갱단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할까?  (마오리 족 도 유색인종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몇 년 뒤 그냥 사라졌다.  동양 유학생들의 납치/폭행으로 가끔 뉴스에 나곤 했는데,  '스킨헤드' 생활을 하기엔 동양인들이 너무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면 뉴질랜드 생활 내내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주는 사람도 많았고, 순수하고 착한 사람들이 오히려 한국에서 보다 많았다.  오히려 저렇게 머리를 빡빡 깎고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더 상대하기 쉽다.  그냥 피하면 된다.  하지만 생활 속에 숨어있는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분별하기가 쉽지 않다.  체육시간에 뒤에서 내 피부색에 대해 얘기하며 원숭이라 부르던 학생들도 있었고, 다짜고짜 집에 가라며 가운데 손가락을 곱게 펴서 보여주던 아줌마도 있었다.  '스킨헤드'는 사라지고 지금은 추억 속에 남아 있지만, 우리 곁에 숨어있는 인종차별은 뉴질랜드 생활 내내 곁에 함께 했다.


드디어 시간이 지나, Community college 영어 교실에 입학을 했다.  뉴질랜드에 도착해서 처음으로 많은 한국 학생들을 만났다.  모두 이민자 가족의 학생들이었다.  


'한국 학생들과 중국 학생들이 이 조그만 도시에 이렇게나 많이 있다니!'


놀랍고 신기했다.  하지만 이곳에 있으면 영어는 배울 수 없겠구나라고 본능적으로 생각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뉴질랜드 영주권자 들은 이곳 community college에서 거의 무료로 배울 수 있다.  어느 정도 영어를 한다면 친구들도 많이 만들고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아쉽게도 난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한다.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한국에서 다니던 학교는 '자퇴'로 기록되어 있고, 이곳에서 고등학교도 못 들어가고 이곳저곳을 떠도는 내 모습이 눈에 스쳐갔다.  


"다시 원래 다니던 영어학원으로 돌아가겠습니다."


한국 학생이 거의 없는 그 영어학원으로 다시 돌아가겠다 했다.  훨씬 비싸지만, 영어실력이 어느 정도 만족스러울 때까지 이 영어학원에서 배우고 싶었다.  한국 집에서는 상황을 잘 알지 못한 채 무슨 일 인가 걱정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 왜 이렇게 영어가 안 들렸는지 모르겠다.  버스 탈 때 버스 아저씨에게 행선지를 말해야 하는데, 'horseshoe lake'는 왜 이렇게 발음하기가 어려운가.  말할 때마다 버스기사 아저씨가 웃었다.  영어 배우러 온 동양 학생이 힘들게 말하니 귀여워서 웃었을 수 도 있는데, 버스 탈 때마다 수치심을 느꼈다.  저녁을 밖에서 먹고 들어가면 홈스테이 아줌마한테 미리 전화로 얘기해야 하는데, 전화 통화를 정말 손을 덜덜 떨면서 했다.  어떤 학생들은 전화를 하지 못해 저녁을 두 번 먹다.  


영어학원을 다닌 지도 3달이 다 되어가고, 뉴질랜드 생활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여전히 잘 듣지도 잘 말하지도 못 하지만, 물건을 사고 음식을 먹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그래서 주말엔 시내를 돌아다녔는데, 어느 날 중고 물품 판매점을 발견했다.  유학생활 내내 같이 할 좋은 친구를 그곳에서 만났다.  


< 자네 한국에서 왔나? >


작가의 이전글 셜리의 피쉬 앤 칩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