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고 고운말
오래 전 내 친구가 붙여준 별명이 있다. 알보칠. 빨리 낫지만 바를 땐 따가워 죽는다고, 내 말은 틀린 게 없지만 그 순간은 맘이 아프다고 말이다. 나는 조카에게는 세상 다정함에도 불구하고, 한 번 무뚝뚝하게 말했다고 9살 조카에게 문자로 혼난 적도 있다. 말 이쁘게 안한단 말은 살면서 수도 없이 들었는지라 개선해야 할 필요성은 알았지만 그 말이 완벽하게 흡수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조카의 은혜로운 가르침 속에서 계속해서 좋아지고 있다는 평을 듣고는 있지만 아직도 말하고 나서 앗차하는 순간이 한번씩 있다.
나는 말 예쁘게 해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반감이 컸다. 이왕이면 이쁜 말을 써야하는 건 분명 알지만, 말의 의도는 생각하지 않고 말 담는 그릇만 평가하는 게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새벽에 명상을 하다가, 같은 말인데도 유독 말투에 민감하고 불편해 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이해가 되면서 말을 이쁘게 해야할 이유가 분명해졌다.
사실 온 마음이 자기 자신에게 쏠려있는 사람은 남들이 무슨 언어를 쓰는지 크게 관심이 없다. 누가 들어도 기분 나쁜 말도 있지만 사람에 따라 다른 경우도 태반이다. 말에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들은 남도 피곤하게 만들지만 정작 자기 자신이 제일 힘들 것이다. 그들은 타인 민감성이 높고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남의 말에 쉽게 동요되고 힘들어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자기에게 말을 이쁘게 해 줄 수 없냐고 말하는 사람을 자기 듣기 좋은 말만 들으려한다고 이기적이라 생각했다. 말은 편하게 해야하는데 말할 때마다 상대 눈치봐야한다는 것이 겁나 갑갑했다. 그런데 그들의 요구를 나 너무 힘들어로 해석했더라면 그들의 예민함을 덜 타박하고 살았을 것이다. 말 이쁘게 하는게 나에게 해가 되는 것도 아닌데 괜한 반항심을 일으켰음을 반성한다.
낯 간지러버서 쉽지는 않겠지만 이제는 말에 더 신경을 써야겠다. 그리고 상처받는 말을 들을지언정 상처주는 말은 하지말아야지. 그 순간은 시원할지 몰라도 결국 내가 뱉은 말 때문에 내가 더 괴로웠으니 말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고 이쁘고 고운 말을 써야겠다.
그랄라카면 사투리, 억양 다 뜯어 고치야되는데... 입 다물고 미소만 지어야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