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와 유럽에서 제작한 몇몇 영화를 제외하고 나면 국내에 개봉되는 외국 영화는 적습니다. 특히 제3세계라 부르는 나라에서 제작된 영화는 한 해에 수백 편에 달하지만 우리 시야에 들어오는 작품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지요. 거리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먼 러시아 영화 역시 마찬가집니다. 사정이 이럴진대,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옛 소련 영화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거의 전무하다고 봐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의 <전함 포템킨>이나 타르코프스키의 <안드레이 루블료프> 같은 작품은 각종 영화제나 서적에서 자주 언급되는 덕분에 우리에게 낯설지 않습니다만, 소비에트 시대 일반 서민들을 울리고 웃겼던 대중 영화라고 해서 볼만한 가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 어디서도 들어보지 못한 환상적인 영화음악은 덤이라고 하기엔 무척 아름답지요. 소련 영화하면 으레 떠올리게 될 정치적 색채와 선입견을 지우고 당신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줄 소비에트 시대의 숨은 영화음악 10편을 모아봤습니다.
소비에트 시대의 대표적인 국영 영화사 모스필름에서 제작한 <귀여운 짐승을 쏘았다>는 개봉은 물론 비디오테이프로도 국내에 출시된 적이 있는 제법 유명한 작품입니다. 메가폰을 잡은 에밀 로티아누 Emil Loteanu는 동구권의 작은 나라 몰도바 태생의 감독이지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도 연락이 끊어져 거리를 전전해야 했습니다만, 어려움 속에서도 영화를 배워 60년대 감독으로 데뷔했고 <집시 캠프(Табор Уходит В Небо)>와 이 영화 <귀여운 짐승을 쏘았다>를 통해 70년대 소련 감독으로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됩니다.
이 영화의 원작은 안톤 체호프의 중편 『사냥터의 드라마(Драма На Охоте)』를 각색한 것입니다. 요양차 시골 저택에서 하루하루를 소일하는 카르녜프 백작, 그를 찾아온 검사 카미셰프 그리고 대부호 우르베닌은 한 아리따운 시골 아가씨에게 매료됩니다. 산림 관리인의 딸 올가였죠. 천사 같은 미소를 가졌지만, 사실 그녀의 내면은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과 허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올가에게 반한 세 중년 남자의 눈에 그녀의 흠결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지요. 그러나 돈 많은 우르베닌을 선택해 결혼식을 올린 올가는 카르녜프 백작과 바람을 피우고, 냉철한 카미셰프까지 유혹하지만 결국 사냥터에서 목숨을 잃고 맙니다. 평소 그녀가 원하던 대로 세상에서 가장 사치스럽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죽길 바랬던 것처럼요. 살인에 연루된 두 사내는 카미셰프의 재판을 받고 결국 파국을 맞습니다. 몹시 어두운 내용입니다만, 추리 소설을 연상시키는 영화는 마지막 순간까지 누가 그녀를 살해했는지 밝히길 주저하지요. 그러나 카미셰프의 우울하고 쓸쓸한 독백에서 범인의 정체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 자체도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만, <귀여운 짐승을 쏘았다>에서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것은 유젠 도가 Eugen Doga의 왈츠입니다. 예브게니 도가라는 러시아식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만, 그는 몰도바 태생의 작곡가로 발레와 오페라를 비롯해 약 200편이 넘는 영화음악을 작곡한 거장입니다. 음악적인 스펙트럼도 무척 넓어서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을 구사했는데, 그의 작품들이 콘서트 레퍼토리로도 꾸준히 사랑받았기에 '가장 자주 연주되는 20세기 작곡가 20인'에 선정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지요. 특히 70여 편에 달하는 그의 왈츠곡들은 하나같이 빼어난데, 이 영화에 등장하는 왈츠 역시 보석처럼 빛납니다. 돈 때문에 늙은 우르베닌과 내키지 않는 결혼식을 올리게 된 올가가 피로연에서 춤을 출 때 흐르던 곡이지요. 다른 나라의 감독과 작곡가들처럼 같은 몰도바 태생인 에밀 로티아누와 유진 도가 역시 콤비를 이뤘습니다. 그리고 이 서글픈 왈츠곡은 그들의 파트너십에 정점을 찍었지요. 낭만과 비극을 동시에 아로새긴 선율은 후반쯤 등장하는 집시 여인의 서러운 보컬리제로 가공할 힘을 얻습니다.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과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개회식 행사에서도 사용됐을 정도로 이 왈츠곡에 대한 러시아인의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어 보입니다.
소비에트 시대 우크라이나에서 만들어진 <사총사>는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아동 영화입니다. 러닝 타임도 40분 남짓할 정도로 짧지요. 드네프르 강변 마을에 사는 아이들의 여름날을 그리는데, 바로 이 네 명의 소년소녀들이 사총사입니다. 여름 방학을 맞아 친척 집에 놀러 온 유라라는 소년이 등장하면서 아이들 사이에 작은 해프닝이 일어나지요. 으스대는 도시 소년을 바라보는 시골 아이들의 시선이 고울 리 없습니다. 남몰래 유라를 흠모하는 올랴라는 귀여운 소녀만 빼고요.
<사총사>는 그리 대단한 이야깃거리도, 흥미로운 볼거리도 사실 없습니다. 다만 70년대 우크라이나 시골 마을의 소소한 일상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지요. 그러나 음악이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영화보다 음악이 더 뛰어났던 6-70년대 이탈리아 영화음악처럼 <사총사>도 멜로디가 좋으니까요. 스코어를 작곡한 음악가는 알렉세이 리브니코프(Алексей Рыбников).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러시아의 영화음악 작곡가입니다. 이미 8살 무렵부터 작곡에 비범한 재능을 보인 리브니코프는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 세계적인 음악가인 아람 하차투리안(Арам Хачатурян)에게서 작곡을 사사합니다. 음악원을 졸업한 뒤에도 하차투리안을 도와 음악원에서 작곡을 가르쳤습니다만, 아직 학생이었던 66년부터 영화음악을 작곡하기 시작했고 그의 탁월한 실력이 방송과 영화 관계자 사이에 알려지면서 본격적으로 작곡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지요. 1974년부터 현재까지 40년 가까이 전파를 타고 있는 아동용 프로그램 <에를라슈(Ералаш)>의 익숙한 테마곡 역시 그의 솜씨입니다.
리브니코프의 초기작이랄 수 있는 <사총사>는 소비에트 시대의 음악이라면 반영되어야 할 사회주의 색채나 그가 전공한 고전음악과도 상당한 거리감이 느껴집니다. 서방의 재즈 혹은 경음악적인 스타일이 강하죠. 특히 트럼펫으로 끌고 가는 따스한 멜로디 라인과 은근히 감도는 보사노바 리듬은 비슷한 시기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아르만도 트로바이올리나 피에로 피초니의 영화음악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오래전 국내에 알려졌다면, 라디오 프로그램의 시그널 뮤직으로 각광받았을 법한 곡이지요.
이미 20여 년 전에 작고한 레오니드 가이다이(Леонид Гайдай)는 아직도 러시아권 바깥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미지의 감독 중 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과거 소련을 구성했던 동구권 국가들은 물론 유럽과 미국에서도 그의 이름은 꽤 유명하지요. <카프카즈의 포로(또는 슈릭의 새로운 모험)>는 약 7천6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소비에트 시대 박스 오피스 4위에 오른 코미디 영화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거칠게 비유하자면, 찰리 채플린의 소비에트 버전 혹은 그보다 좀 더 현대적인 인물이랄 수 있는 슈릭이라는 이름의 흥미로운 캐릭터가 등장하지요. 원래 이 영화는 가이다이 감독이 65년 세 편의 단편을 묶어 제작한 옴니버스 영화 <오퍼레이션 "Y"와 슈릭의 다른 모험들(Операция «Ы» и другие приключения Шурика)>이 크게 흥행하면서 속편으로 내놓은 작품입니다.
유성 영화지만 <오퍼레이션 "Y">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러시아어를 몰라도 즐길 수 있을만합니다. 채플린의 영화처럼 익살스러운 소동이 주가 되는 슬랩스틱 코미디이기 때문이지요. <카프카즈의 포로> 역시 같은 슬랩스틱이긴 합니다만 대사의 분량이 다소 늘어났는데, 전편보다 이야기를 좀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기 위함이었겠지요. 내용은 주인공 슈릭이 카프카즈 지역의 민속과 풍습을 조사하기 위해 그곳에 방문하면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다룹니다. 카프카즈로 가는 길목에서 니나라는 아가씨를 만난 슈릭은 첫눈에 반하죠. 그러나 니나의 삼촌은 젊은 아가씨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공산당 간부이자 지역 유지인 사호프에게 스무 마리의 양와 냉장고를 받고 그녀를 팔아버립니다. 그야말로 카프카즈의 구습이었지요. 그리고 쉽지 않은 결혼을 성사시키기 위해 악당을 고용해 자신의 조카를 납치할 계획을 세웁니다. 사사건건 납치에 방해가 되는 슈릭을 역이용해 지방의 오래된 결혼 풍습이라며 니나를 보쌈하게 했던 거죠. 뒤늦게 사태를 파악한 슈릭이 니나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집니다. 물론 영화의 끝은 해피엔딩이지요.
소비에트 시대는 엄격한 사회주의 생활방식을 요구하긴 했습니다만, 그렇다고 폐쇄적인 북한처럼 서방의 문화가 전혀 유통되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청바지도, 로큰롤도, 재즈도 있었지요. 비슷한 시기 다른 나라의 청년들처럼 소련에도 젊은이들은 댄스홀에 모여 트위스트를 즐겼습니다. <카프카즈의 포로>에도 트위스트를 추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 곡들은 알렉산드르 자쩨핀(Александр Зацепин)의 솜씨였지요. 자쩨핀은 소련에 처음으로 전자악기인 멜로트론을 도입한 작곡가이자 7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의 국민 가수인 알라 푸가초바와 콤비를 이뤄 수많은 히트곡을 탄생시킨 장본인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알렉산드르 자쩨핀이 정식적으로 음악 교육을 받은 작곡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철도 학교를 다니던 그는 스스로 악기의 연주법을 터득했고 이후 군악대에 복무하면서 자신의 음악성을 발전시켰던 것이죠. 그리고 제대 후 교사에 뜻을 두었으나 출중한 실력을 인정받아 음악원 입학을 권유받고 알마아타 음악원에서 피아노와 작곡을 전공합니다. 이를 계기로 카자흐스탄 영화 스튜디오와 인연을 맺으면서 1956년부터 영화음악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운드트랙 앨범이 따로 발매되진 않았습니다만, <카프카즈의 포로>는 영화음악도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가이다이 감독은 스코어와 함께 영화 중간중간에 인상적인 주제가를 곧잘 삽입했는데, 이 영화도 다르지 않습니다. 여주인공인 니나를 연기한 나탈리아 바를레이가 부르는 'Песня про медведей(곰에 관한 노래)'나 앞서 언급한 'Твист на танцплощадке(댄스홀의 트위스트)' 같은 곡들은 소비에트 영화음악에 대한 편견을 살짝 지워내기에 충분하지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카프카즈의 포로>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은 메인 테마 격인 'Дорога(길)'입니다. 발랄한 리듬과 경쾌한 휘파람으로 장단을 맞추는 이 코미디의 매력이 고스란히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귀엽고 이쁜 곡입니다.
러시아권 바깥에 알려지지 않은 소비에트 시대의 감독은 레오니드 가이다이뿐만이 아닙니다. 엘다르 리아자노프(Эльдар Рязанов)도 있지요. 불과 두 달 전 작고한 리아자노프 감독은 영화제와는 거리가 멀지만 대중에게는 더없이 친근한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문학을 좋아하고 선원이 되어 세계를 여행하기 꿈꿨던 그는 게라시모프 국립 영화대학에 입학하면서 비로소 영화에 뜻을 둡니다. 졸업 후 주로 기록 영화를 제작한 리아자노프에게 찾아온 첫 번째 성공은 56년에 만든 <카니발의 밤(Карнавальная ночь)>. 뮤지컬 영화의 전통이 거의 없는 소비에트 영화로서는 드문 코믹 뮤지컬 영화입니다. 스탈린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서방 국가와 평화로운 공존을 내세웠던 흐루시초프 시대에 어울리는 작품이었지요. 이후 그는 <경기병의 발라드(Гусарская баллада, 1962)>, <차를 조심하세요(Берегись автомобиля, 1966)>, <운명의 아이러니, 혹은 시원하시겠습니다!(Ирония судьбы, или С лёгким паром!, 1975)> 같은 걸작들을 꾸준히 선보입니다.
<사내연애>는 삭막한 소비에트 시대에 자유분방한 사무실 모습과 소시민의 삶을 보여줍니다. 두 아들을 키우는 홀아비 아나톨리 노보셀체프, 그의 직장 상사이자 깐깐한 노처녀 류드밀라 깔루기나, 노보셀체프의 동료인 올가 그리고 노보셀체프의 학교 동기이자 새로 부임한 부책임자 사모흐발로프 이렇게 네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꾸며지죠. 소비에트 시대에 사내연애가 가당키나 할까 싶은 생각이 들지만, 여느 나라와 다를 바 없는 출근 풍경이 담긴 오프닝을 보고 있으면 슬그머니 미소를 짓게 되지요. 만원 버스와 전철에 시달리는 직장인, 출근 후 가장 먼저 화장을 고치는 여직원들, 해외출장을 다녀온 직원이 건넨 말보로를 피우며 잡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 보면 과연 이 영화가 소비에트 영화일까 싶은 생각마저 들기도 합니다.
이 영화의 음악은 엘다르 리아자노프와 짝을 이뤄 활동했던 안드레이 페트로프(Андрей Петров)가 작곡했지요. 리아자노프 감독처럼 독서를 좋아했던 페트로프는 15살이 되던 해, 줄리앙 뒤비비에르의 뮤지컬 영화 <그레이트 왈츠 The Great Waltz>에 흐르는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곡에 반해 음악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레닌그라드 음악원에 입학하면서 이루어졌죠. 교향곡이나 오페라 같은 순수음악과 가요나 영화음악 같은 실용음악 양쪽에서 골고루 활약한 페트로프의 음악은 무엇보다 선율이 아름답습니다. 또한 섬세한 노랫말과 정교한 편곡으로 사랑받았죠. <사내연애>도 마찬가지입니다. 러시아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이 영화의 주제가 '내 마음에 평온은 없어라(Моей Душе Покоя Нет)'는 이제 국민가요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은 곡이니까요. 프란시스 레이처럼 로맨틱한 선율을 도처에 흩뿌려놓은 듯한 다양한 편곡 버전도 귀를 즐겁게 합니다. 주제가가 워낙 유명해 다른 곡에 대한 관심도는 떨어집니다만, 페트로프의 출중한 솜씨는 스코어라고 해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로 이 영화의 숨겨진 음악으로 소개하고 싶은 곡은 'Утро(아침)'. 사무실에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경쾌한 재즈 스타일로 풀어낸 선율은 활기가 넘칩니다만, 페트로프의 빼어난 편곡은 소시민들의 애환과 사무실에 감도는 로맨스의 향기도 놓치지 않지요.
'장차 어른이 될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언젠가 아이였음을 잊지 않는 어른들을 위해'
자연에 관한 글을 많이 썼던 러시아 작가 가브릴 트레폴스키(Гавриил Троепольский)가 자신의 소설 『하얀 빔 검은 귀』에 남긴 글귀입니다. 스타니슬라브 로스토츠키(Станислав Ростоцкий)가 연출한 <하얀 빔 검은 귀>는 그의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지요. 국내에는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품입니다만, 미국에서는 78년에 소설이 번역되어 출판됐고, 영화는 79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도 올랐지요. 특이한 점이라면 소비에트 영화로서는 드물게 개가 주인공인 동물 영화라는 점입니다.
대조국 전쟁에 참전했다가 부상을 당한 이반 이바노비치는 전직 기자입니다. 아내와 아들을 모두 잃고 쓸쓸하게 살아가는 노인의 즐거움은 글을 쓰거나 사냥을 하러 가끔씩 시골을 방문하는 것이었죠. 지인에게 강아지를 얻으러 간 이반은 흰색에 검은 귀를 가진 고든 세터 한 마리를 만납니다. 어두운 색깔이 매력인 고든 세터 종에서는 나올 수 없는 하얀색. 덕분에 믹스견으로 오해받기 십상인 강아지에게 연민을 느낀 노인은 강아지를 거두고 빔이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이반의 사랑을 듬뿍 받은 빔은 영민한 사냥개로 성장하죠. 그러나 전쟁 중 심장에 박힌 파편이 문제를 일으키면서 노인은 모스크바의 큰 병원으로 이송되고, 홀로 남은 빔은 주인을 찾아 거리로 나섭니다. 하지만 거리에는 주인을 잃은 개에게 호의적인 사람도, 또 개를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주인을 찾아 파란만장한 모험을 하게 된 빔은 노인과 재회하기 전 안타깝게 숨을 거두고 맙니다.
이 가슴 뭉클한 동물 영화의 음악 역시 안드레이 페트로프가 맡았습니다. 앞서 언급한 <사내연애>와 같은 해에 만들어졌지요. 영화음악 말고도 다양한 방면에서 두루 활동했기 때문에 페트로프의 필모그래피는 그의 활동 기간에 비해 다소 적은 편입니다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러시아인에게 사랑받는 명 테마곡이 많습니다. 이 영화에서도 가슴 아픈 장면 중에 하나인 'Поезд(열차)'도 그런 곡으로 꼽히죠. 자신을 도와준 친절한 아가씨가 탄 열차를 좇아 달려가는 빔. 그러나 아무리 재빠른 사냥개라도 쏜살같은 열차를 따라갈 수는 없죠. 지쳐버린 빔은 그만 철로에 주저앉습니다. 페트로프의 이 테마곡은 그 순간을 절묘한 리듬감으로 포착합니다. 질주하는 열차 소리를 긴장스러운 리듬으로 삼고, 희망에 부풀어 달려가는 개의 모습을 금관악기의 힘찬 선율로 묘사하면서요.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순간을 음악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그치지 않은 페트로프는 그 장면을 눈앞에 그려내듯 훌륭하게 시각화시킵니다.
가까운 미래. 소볼레프는 심해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고에 대비해 훈련 중인 잠수사입니다. 로타라는 과학자와 결혼을 앞둔 그는 오토바이 사고로 약혼녀가 죽으면서 실의에 빠집니다. 그럼에도 구조 업무를 중단할 수는 없죠. 원자력 발전소에 사용할 중수를 채취하는 심해 기지 듀테륨 1010호에 사고가 생기자 소볼레프는 스웨덴 잠수사 스벤과 함께 인도양에 급파됩니다. 기지에 홀로 남은 윌리엄의 종적이 묘연한 가운데 죽은 약혼녀의 이름이 바닷속에서 발견되고, 그들 앞에는 이상 행동을 보이는 거대한 귀가오리 한 마리가 나타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이한 사건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미스터리를 좇던 소볼레프는 로타의 아버지 케롬 박사가 연구하던 인간의 기억을 저장하고 전송하는 크리스털을 기억해내고, 사고로 추락한 비행기에 실려있던 크리스털 장치의 기억이 가오리에게 옮겨졌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의 주변을 맴돌던 신비로운 가오리는 바로 로타였던 것이죠.
이고르 보즈네센스키(Игорь Вознесенский)가 메가폰을 잡은 <잠수사들>은 공상과학 영화입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가 살짝 허무맹랑하게 들리는 까닭은 아마도 그 때문이겠지요. 지금도 개발 중인 인공 아가미나 이미 상용화된 컴퓨터, 수심 1000미터에 지어진 해저 기지 등 70년대 말 소비에트 SF 영화의 상상력을 살펴보는 재미가 만만치 않습니다. 게다가 당시 소련의 기술력을 가늠케 하는 첨단 해양 장비들도 간간이 등장하지요. 컴퓨터 그래픽 대신 크림 반도에 제작한 세트장에서 촬영한 수중씬들도 제법 볼만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마음을 뺏긴 것은 예브게니 크릴라토프(Евгений Крылатов)의 테마곡들입니다. 러시안 그루브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은 영화음악이지요.
올해 여든한 살인 예브게니 크릴라토프는 알프레드 슈니트케와 알렘다르 카라마노프 같은 쟁쟁한 음악가들과 모스크바 음악원에서 동문수학한 작곡가입니다. 졸업 후 드라마 극장에서 일하게 된 크릴라토프는 초반 연극용 극음악을 많이 작곡했습니다만, 점차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활동반경을 넓혔고 70년대로 접어들면서 영화 쪽에서도 두각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어떤 한 작품으로 단숨에 인지도를 얻은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작곡가로 활동하면서 지금과 같은 명성을 쌓았던 겁니다. 사실 크릴라토프에 대한 제 개인적인 느낌은 아동 영화를 위한 음악에 대부분 걸쳐있습니다. 크릴라토프의 존재를 대중에게 알린 애니메이션 <움카(Умка)>의 자장가, 삼바와 러시아 가요의 절묘한 조합이 돋보이는 <오 맙소사 나스챠(Ох Уж Эта Настя!)> 그리고 연구소에서 탈출한 로봇의 해프닝을 그린 <일레트로닉의 모험(Приключения Электроника)>에 흐르던 어린이들의 합창이 모두 그의 솜씨였기 때문이죠. 크릴라토프의 음악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고전음악에 뿌리를 둡니다만, 비슷한 시기 서방에서 유행했던 전자음악이나 펑키한 스타일도 주저하지 않았고, 어린이를 위한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효과음처럼 사용되는 독특한 사운드 그리고 민요나 민속 음악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쩌면 크릴라토프의 <잠수사들>은 아동 영화음악에서 활동하던 그런 밑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할리우드 B급 영화의 제왕 오비디오 아소니티스와 짝을 이뤘던 프랑코 미칼리찌의 스타일과 무척 닮았거든요. 이 영화의 메인 테마인 'Акванавты(잠수사들)'이 특히 그렇지요. 짧지만 강렬한 팡파르로 시작해 감각적인 비트, 날렵한 멜로디 라인 그리고 몽환적인 코러스로 진행되는 스코어는 7-80년대 사이 미칼리찌가 작곡한 이탈리아 액션 영화음악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살짝 에로틱한 느낌마저 감도는 여성 허밍이 무척 매력적인데, 크릴라토프는 이 아이디어를 좀 더 발전시켜 남녀 주인공의 안타까운 사랑을 그리는 러브 테마 'Пообещайте Мне Любовь(내게 사랑을 약속해줘요)'로 활용합니다. 비슷한 시기 유럽 영화음악처럼 이 러브 테마의 멜랑콜리한 선율은 중독성도 강한 편이죠.
▶ Пообещайте Мне Любовь(내게 사랑을 약속해줘요)
테리 길리엄이 만든 <바론의 대모험 The Adventures Of Baron Munchausen>을 알고 있다면, 뮌하우젠이라는 이름이 낯설진 않을 겁니다. 18세기 독일에 실존했던 인물로, 그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어낸 『허풍선이 남작의 모험』은 전 세계에서 꾸준히 출판되고 있으니까요. 연출가로 활약했던 마르크 자하로프(Марк Захаров)의 <바로 그 뮌하우젠>의 주인공 역시 우리가 아는 그 뮌하우젠 남작이 맞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생소하실 겁니다. 원작을 모티브로 그리고리 고린(Григорий Горин)이라는 극작가가 새로운 시나리오를 썼기 때문입니다. 테리 길리엄의 작품보다 10년 전에 만들어진 영화임에도 탄탄한 시나리오와 뮌하우젠 역을 맡은 알렉 얀코프스키의 명연기가 어우러져 IMDB에서 지금도 높은 평점을 유지하고 있지요. 뿐만 아니라 이 영화의 주옥같은 대사들은 현재까지도 러시아인에게 자주 회자되고 있습니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하면서도 뮌하우젠 남작은 진지한 표정으로 거짓을 말한 적 없다고 늘 주장합니다. 아리따운 마르사와 결혼하기 위해 목사를 초대한 남작은 결혼식을 올리려면 법률에 따라 아내인 야코비나와 먼저 이혼해야 한다는 충고를 듣습니다. 법정에서 이혼 서류에 서명하는 날. 뮌하우젠 남작은 서류 작성일을 5월 32일로 기입합니다. 천문학의 정확한 계산법 따라 올해 달력에는 하루를 추가해야 한다면서요. 그러나 누구도 남작의 말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마르사도, 충직한 하인 마저도요.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생전 처음 자신의 말을 부정해야 했던 그에게 마을 시장과 사람들은 모든 이야기가 거짓이라는 각서를 쓰라고 강요합니다. 상심한 뮌하우젠은 그동안 쓴 글들을 모두 태워버리고, 어둠 속에서 방아쇠를 당깁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전처 야코비나는 사별한 남작의 이야기를 한층 과장하고 꾸며낸 이야기 책을 출판해 인기를 끌고, 사람들은 뮌하우젠을 위대한 인물로 칭송합니다. 하지만 뮌하우젠은 죽지 않았습니다. 자살도, 장례식도 모두 가까운 지인들만 아는 모의처형(Mock execution)이었던 거죠. 3년 동안 정원사로 숨어 지낸 남작은 냉소주의자로 변모하고 맙니다. 차갑게 변한 그에게 실망한 마르사도 곁을 떠났죠.
영화는 79년에 제작됐습니다만, 원래 <바로 그 뮌하우젠>은 희곡에서 출발했습니다. 74년 무대에 올려졌죠. 그 당시 연극을 보고 몹시 마음에 들어했던 자하로프가 영화로 옮겼고, 알렉세이 리브니코프가 작곡한 극음악도 거의 그대로 다시 사용됐습니다. 해외 로케이션이 쉽지 않았던 소비에트 시절, 동독의 베르니게로데에서 촬영했을 만큼 제법 공을 들였음에도 음악의 규모가 의외로 크지 않은 것은 그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영화와 음악의 어울림이 좋습니다. 애초 극음악을 작곡할 때 대사의 감정선을 하나하나 고려했고, 영화로 옮기면서 변주와 즉흥 연주로 흐름과 리듬을 한 번 더 조절했으니까요. 음악영화가 아니지만 작곡가 스스로 이 작품을 음악영화에 버금가는 작품으로 꼽았던 것은 이 영화와 음악의 끈끈한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겠지요. 귀에 감기는 몇몇 테마곡들이 있습니다만, 이 영화음악의 백미는 뮌하우젠 남작이 달 여행을 떠나기 전 사람들에게 너무 진지하기 때문에 불행하다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웃으세요, 여러분. 웃으세요." 대포알로 쏘아 올린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오르는 남작. 리브니코프는 쓸쓸하고도 청명한 피아노 선율로 짙은 여운을 남깁니다.
차를 조심하라는 이 영화의 타이틀은 보행자를 위한 경고가 아니라 차량 소유주에게 하는 말입니다. 신출귀몰한 자동차 도둑 때문이죠. 사건을 맡은 수사관 막심은 범인의 행적을 좇기 시작하고, 미수에 그친 네 번째 차량 도난 신고가 들어옵니다. 거리엔 차고에 보관하지 않은 좋은 차들이 널려있는데도, 굳이 차고에 침입해 힘들게 차를 훔치는 범인의 의도가 석연치 않습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신고가 들어온 네 번째 자동차는 거듭 타깃이 되고, 결국엔 도난당하지요. 범인은 보험사 직원인 유리 제토츠킨. 내성적이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그는 불법으로 돈을 번 부자들의 차량을 골라 훔치고, 그 차를 팔아 고아원에 계속 기부해왔던 겁니다. 아마추어 극단에서 배우로도 활동하는 수사관과 도둑. 두 사람은 연극 [햄릿]을 준비하면서 가까워지고, 용의자의 뒤를 쫓던 막심은 자신의 연기 파트너인 제토츠킨을 의심하지요. 그러나 순순히 범행을 자백하며 그가 내놓은 기부금 영수증에 수사관은 아연실색하고 맙니다. 제토츠킨은 나쁜 범죄자일까요, 아니면 착한 기부왕일까요?
<차를 조심하세요>는 소비에트 시절 유행했던 도시 전설에서 출발한 영화입니다. 불법적으로 부를 축적한 자의 돈을 훔쳐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착한 도둑의 이야기. 얼핏 로빈 후드가 떠오릅니다. 어두운 포스터로만 보자면 이 영화가 코미디라는 것을 눈치채기 어려운데, 내용으로는 블랙 코미디, 비주얼은 프랑스 누아르 영화와 무척 닮아 보입니다. 게다가 엘다르 리아자노프 감독은 이 영화를 컬러가 아니라 흑백으로 제작했습니다. 누아르 스타일로 이 코미디 영화의 콘셉트에 혼선을 주려는 계산이었죠. 전지적 화자의 내레이션을 더해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더한 것도 이 영민한 감독의 의중을 짐작게 합니다.
다시 안드레이 페트로프입니다. 그리고 앞서 소개한 <사내연애>에 이어 또다시 엘다르 리아자노프입니다. 이 콤비의 작품을 한 번 더 소개하는 것은 소비에트 시대에 제작된 대중 영화에서 그들의 존재감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일 겁니다. 물론 리아자노프 감독은 중간중간 다른 작곡가들과도 호흡을 맞췄습니다만, 페트로프와는 13편의 작품을 함께 했습니다. <차를 조심하세요>는 두 사람의 첫 작품이었죠. 이 영화의 오프닝은 프랑스 누아르의 스타일을 빼다 박았는데, 그건 영상뿐만 아니라 음악도 마찬가집니다. 콘트라베이스와 심벌, 트럼펫으로 자아낸 아방가르드 재즈 스타일은 마일즈 데이비스가 스코어를 맡은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를 연상시킵니다. 상당히 모던하지요. 이윽고 도둑이 차고 문을 부수고 도주할 때 흘러나오는 왈츠 역시 원곡 대신 아방가르드 재즈 스타일로 멋지게 편곡되어 있습니다. 이 왈츠가 메인 테마이자 주인공 제토츠킨의 테마인 셈인데 아코디언의 연주가 일품입니다. 아코디언은 프랑스 샹송에서도 자주 사용되지만, 러시아 음악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악기거든요. 스타일리시한 흑백 화면이 프랑스 누아르와 이 소비에트 코미디 영화를 연결 짓기 위한 감독의 의도였다면, 작곡가가 선택한 이 아코디언 왈츠는 그의 의도를 정확히 간파한 음악적인 결과일 겁니다. 포복절도할 웃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슬그머니 미소 짓게 하는 훈훈한 결말의 힘이 거기에 있지요.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Москва Слезам Не Верит)>는 8천4백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소비에트 영화 중 역대 흥행 2위에 오른 작품입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영화지요. 하지만 1년 뒤에 만들어진 <카니발>을 아시는 분은 많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모스크바는 눈물을 믿지 않는다>에서 류드밀라 역을 맡은 국민 배우 이리나 무라비요바가 주인공인 니나로 열연해 호평을 받았죠. 내용도 살짝 비슷한데, <카니발>은 소련의 여류 감독 타치야나 리오즈노바(Татьяна Лиознова)>가 만든 여성영화이자 성장영화 그리고 자전적인 영화이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니나는 언제나 유쾌합니다. 홀어머니와 함께 시골 마을에 사는 이 말괄량이 아가씨는 배우의 꿈을 품고 있지요. 어머니와 이혼한 뒤 새가정을 꾸린 아버지를 찾아서 니나가 모스크바로 상경한 이유도 연극학교에 입학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즐겁고 화려한 카니발처럼 보였던 대도시 생활은 녹록지 않죠. 연기자가 되기에 니나의 재능은 턱없이 부족했고, 달콤한 첫사랑도 실패합니다. 그렇다고 아버지에게 언제까지 손을 벌릴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집세를 내지 못해 거리로 좇겨난 니나는 생계를 꾸리기 위해 청소부부터 가사 도우미까지 허드렛일을 전전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깨닫죠. 동화와 현실은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것을 말입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별일수록 더욱 차갑다는 아버지의 말은 그저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라 가슴 아픈 현실이었던 겁니다. 결국 니나는 모스크바 생활을 정리하고 어머니가 있는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평범하다 못해 다소 뻔해 보이는 줄거리를 읽고 나면 이 멜로드라마에 깔린 정서를 짐작하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카니발>은 뜻밖에도 첫 장면부터 엔딩에 이르기까지 시종 유쾌함과 따스함을 잃지 않습니다. 니나의 현실과 그녀가 꿈꾸는 화려한 연예계 사이의 갭을 시끌벅적한 쇼무대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죠. 아프리카 민속춤과 플라멩코,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서커스단의 무용수들까지 중간중간 등장하는 춤과 노래들도 다양합니다. 그 곡들은 모두 막심 두나예프스키(Максим Дунаевский)의 솜씨였지요. 그는 이미 1930년대부터 영화음악을 작곡한 소련의 위대한 음악가 이삭 두나예프스키(Исаак Дунаевский)의 아들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의 아버지가 소비에트 음악계에 일찍이 재즈를 도입한 선구자였다면, 막심 두나예프스키는 록을 영화음악에 끌어들인 작곡가라는 것이죠. 클래식 음악밖에 모르던 그가 대중음악에 서서히 눈을 뜨게 된 것은 모스크바 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극단에서 음악 감독으로 활동하면서부터입니다. 극음악을 시작으로 가요와 팝, 로큰롤까지 섭렵하게 됐지요. <카니발>에 글로리아 게이너의 댄스곡 'Never Can Say Goodbye'가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게다가 77년에 결성한 록 그룹에 오랫동안 몸담았으니 록을 향한 그의 사랑은 상당히 깊다고 할 수 있죠. 이 영화의 삽입곡 'Позвони Мне, Позвони(전화해, 내게 전화해)'는 이 무렵 두나예프스키를 사로잡은 서구적인 음악 스타일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사랑했던 연인과 헤어지고, 몇 달째 집세까지 밀려 거리로 나앉게 된 니나. 당장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그녀는 청소부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대도시의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봐주지도, 또 찾아주지도 않는 처량한 신세. 물끄러미 공중전화 부스를 바라보던 니나는 돌연 뮤지컬의 여주인공으로 등장하지요. 지극히 80년대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깁니다만, 뮤지컬 영화의 전통이 없는 소비에트 영화에서 이 장면과 노래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신선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카니발>엔 관객이 몰렸고, 잔나 로제스트벤스카야가 부른 이 노래는 그해 최고의 히트곡이 됐죠. 클래시컬한 음악과 애틋한 로망스가 주를 이루던 소련 영화음악계에 강렬한 드럼 비트와 일렉 기타로 짜릿한 쾌감을 선사한 두나예프스키는 이후 록 뮤지컬 스타일의 노래들을 공공연하게 선보입니다.
▶ Позвони Мне Позвони(전화해, 내게 전화해)
베라 할로드나야(Вера Холодная)는 제정 러시아 시대에 실존했던 무성 영화 배우입니다. 스페인 독감으로 1919년 스물다섯 꽃다운 나이에 숨을 거두었지요. 요절한 스타들이 그렇듯 이 젊은 여배우의 죽음을 둘러싸고도 숱한 루머가 돌았습니다. 그녀가 혁명을 주도한 볼셰비키와 연관됐기에 살해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었지요. 니키타 미할코프(Никита Михалков)의 <사랑의 노예>는 이 여배우를 모델로 했습니다만, 거기에 작가적인 상상력이 더해진 영화입니다. 배우의 실명 대신 올가 보즈녜센스카야라는 가공의 여배우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건 그 때문이겠지요.
모스크바에 혁명을 주도하는 볼셰비키와 반혁명 세력인 백군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자 제작자는 배우와 스탭을 이끌고 남부 오데사로 피신해 영화를 계속 촬영합니다. <사랑의 노예>라는 무성 영화로 이미 스타가 된 여배우 올가는 데려왔지만, 매 작품마다 그녀와 연기했던 막사코프는 함께 오지 않았죠. 그없이 연기할 수 없다는 깐깐한 여배우의 불평에 영화 촬영은 지지부진합니다. 그리고 막사코프가 모스크바에 계속 남아있겠다는 소식이 전해지죠. 마음이 쓸쓸해진 올가는 카메라 기사인 파토츠키에게 호감을 품습니다만, 그는 백군의 만행을 몰래 촬영해 유럽에 알리려 합니다. 볼셰비키였던 거죠. 정치적으로 무지에 가까운 여배우는 몇 번의 위기로부터 그를 구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한 날 안타깝게도 파토츠키는 그녀의 눈 앞에서 백군에게 무참히 살해당하고 맙니다.
국내에도 제법 인지도를 가진 니키타 미할코프는 부지런한 영화인입니다. 배우와 감독뿐 아니라 작가와 제작자로도 활동하는 그는 1959년 단역으로 영화에 출연했을 때부터 현재까지 거의 쉰 적이 없지요. 감독으로 데뷔한 작품은 74년에 연출한 웨스턴 <이방인 중의 친구, 친구들 중의 이방인>인데, 이 감독 데뷔작부터 음악가 에두아르드 아르테미예프(Эдуард Артемьев)와 호흡을 맞췄습니다. <사랑의 노예>는 두 사람이 감독과 작곡가로 만난 두 번째 작품이었지요.
거의 같은 시기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Андрей Тарковский) 감독과도 작업하기 시작했던 아르테미예프는 소련에 신시사이저를 처음 소개한 뮤지션이자, [탠저린 드림]에 몸담았던 클라우스 슐체 Klaus Schulze, 베르너 헤어조크 감독의 음악적 페르소나인 그룹 [포폴 부]의 리더 플로리안 프리케 Florian Fricke와 함께 전자음악 분야를 개척한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이들 모두 영화음악에 한 획을 그은 뮤지션이라는 점도 비슷하죠. 전자 사운드는 누구보다 새롭고 실험적인 영화를 모색했던 젊은 감독들을 매료시켰으니까요.
무성 영화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 전자음악이 과연 어울릴까 싶지만, <사랑의 노예>는 그런 걱정이 기우임을 보여줍니다. 실험 영화는 아니지만 플롯보다 인물의 심리, 심리보다 인물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가 무척 돋보이기 때문이죠. 제정 러시아가 몰락하고 혁명의 물결이 밀려드는 시대. 결코 정치적인 인물로 보기 어려운 여배우는 격동에 휘말려 자신도 모르는 미래로 달려갑니다. 커다란 잿빛 눈에 창백한 화장을 한 올가가 전차를 타고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마지막 순간은 이 영화의 심장 같은 장면이죠. 아르테미예프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시대의 공기를 몽환적인 전자 사운드로 그려냅니다. 사랑, 슬픔, 격변, 상실 그리고 아연함. 배우로서 그녀를 숭배했던 이들과 여자로서 그녀가 숭배했던 이들이 그 선율과 함께 안갯속으로 모조리 사라집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여배우의 짧은 인생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