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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민정 Jul 03. 2019

1.5인분의 여행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 ⑧

절친이 제주에 놀러 왔다. 여기 사는 친구의 본분으로 이것저것 챙겨주고 싶었는데 한사코 됐단다. 괜찮단다. 다분히 혼자 여행하고 싶어 그러는 거니 신경 쓰지 말라 한다. 나도 때때로 그런 마음이 드는 날이 있으므로 존중해주기로 했다. 잠자코 그녀의 여행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떠나기 직전 만났다.      


근데 그게 또 묘하게 좋았다. 친구의 제주 여행 후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못내 설렜다. 나는 누군가에게 어딜 갔고 무얼 먹었고 어떤 걸 느꼈고, 하는 얘길 듣는 게 무척이나 즐겁다. 언젠가 저녁 자리에서 지인의 지인으로 합류한 사람에게 장편소설 급의 기행문을 듣느라 밤이 깊어 버려 다음날 어지간히 고생한 적도 있다. 일상의 리듬을 깨고 탐미할 만한 일이다, 내겐.     


“그래서 이번 여행은 어땠어?”

“그게, 나는 내가 혼행 좋아하는 줄 알았다?! 근데 아닌 것 같아. 혼자 다니면 외롭고 중간에 친구 만나 비자림 걸었는데 ‘내가 수다 떨려고 멀리까지 왔나’ 싶은 거 있지.”     


혼자는 외롭고 둘은 괴롭다는 말, 비단 결혼이나 연애에만 해당하는 건 아닌가 보다. 여행에도 통하나 보다. 나 역시 혼자 다닐 땐 옆에 누가 있었으면 싶다가도, 정작 동행인이 있으면 눈앞의 풍경에 집중하지 못해 다시 와야지 할 때가 종종 있다. 아니 그게 무엇이든 관계가 얽히면 이쪽도 저쪽도 명쾌하지 않은 어중간한 상태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래도 제주도는 참 좋아.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 심지어 냄새도 특별해. 그래서 사람들이 찾는가 봐. 아예 짐 싸서 내려와 살기도 하고. 너처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잠시 슬퍼졌는데 친구가 말한 제주도의 ‘냄새’를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6년째 운영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 블로그에 초창기 제주 생활기를 써서 올리곤 했는데 그 토막글들에선 분명 내가 제주도의 ‘냄새’를 맡고 있음을, 하물며 좋아하고 있음이 느껴진다. 여행자에서 생활자로 옮겨가는 과정이리라.     


대화의 끝, 친구는 “그치만 당분간은 안 올 것 같아. 충분해!”라고 말했고, 나는 “아닐걸. 오늘 밤에 자려고 누우면 생각날걸. 그리고 머지않아 또 오게 될걸.”하고 답해주었다.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책 <보노보노의 인생상담>에서 보노보노와 친구들은 혼자 있는 것은 그냥 걷는 것에, 누구랑 이야기하는 것은 경치를 보며 걷는 것에 비유한다. 제주에서는 하늘이, 바람이, 숲이, 바다가 벗이 되어주기에 꼭 둘이 아니어도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감상에 젖어 들 수 있다. 말하자면 ‘1.5인분의 여행’이 가능한 것이다.     


최근 ‘뉴 어스 컬러(earth color)’가 트렌드라 한다. 나무색, 흙색 같은 자연의 색을 뜻하는데 옷부터 가방은 물론이고 인테리어에도 곧잘 쓰인다. 거칠게 말하면 잿빛 도시에 사는 현대인들이 일부러 자연의 색을 찾아서 곁에 둔다는 의미일 테다. 제주에서는 차 타고 5분만 나가면 지구 색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언제고 누릴 수 있음은 축복이자, 언제까지고 지켜야 함은 의무다. 얘기가 잠깐 새는 듯한데, 어쨌든 그게 바로 나의 ‘믿는 구석’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저녁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돌아온 날 밤 자려고 누웠더니 글쎄 제주도가 그립더란다. 그래서 찍어둔 사진을 어루만지다 잠들었단다.      


거봐, 제주도가 그런 곳이야! 괜히 뿌듯한 기분이 됐다. 생활자로 물들어 가고 있는 지금, 비록 여행자로서의 촉수는 잃어가지만 그 나름대로의 익숙한 행복감이 있다.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주도의회에 연재 중인 칼럼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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