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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민정 Feb 27. 2020

소중한 일상이 늦지 않게 돌아와준다면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 (16)

마스크로 얼굴들을 가렸지만, 눈만 봐도 알 수 있다. 분위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공항 출국장. 예의 공항에서 묻어나는 설렘이나 기대보다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소독통을 맨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며 약을 뿌렸다. 무표정한 사람들 속에는 곧 뉴욕으로 신혼여행을 떠날 나도 섞여 있었다. 마스크를 쓴 채 수속을 위해 차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부칠 짐에도, 들고 탈 가방에도 여분의 마스크가 들어 있었다.      


2015년 6월의 일이다. 메르스의 공포가 세계를 덮쳤을 때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인턴을 하던 동생은 겨우 외출을 허락받았고 몇몇 하객들은 난감한 목소리로 불참을 알려왔다. 메르스가 너무 큰 일이어서 내 결혼식이 작게 느껴졌다(그래서 스몰웨딩은 아니었는데). 괜찮다고, 건강하게 지내다 다시 보자며 사뭇 비장했다. 우리의 인사, 공항의 풍경…흡사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불현듯 5년 전의 기억을 퍼 올린 데에는 내가 잃어버린 어떤 것을 최근 찾았기 때문이다. 그날 이륙한 비행기가 뉴욕을 향해 가던 길, 나는 생각했더랬다. 우리가 마음껏 숨 쉬고 사람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당연한 일상이 우연한 기적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범사의 감사가 몰려왔다. 마침 갓 결혼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하는 참이었다. 매 순간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야지, 다짐했다.    

 

하지만 많은 다짐이 그렇듯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상황이 진정되자 시들해졌고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마음껏 숨 쉬고(미세먼지로 힘든 날도 있었지만) 사람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을 권리처럼 누리면서. 몇몇 사람을 미워하기도 하고 차가 밀리면 불평하기도 하면서. 세상이 다시 어수선해지기 전까지.     


코로나19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하루에도 수십 명, 수백 명의 확진 환자가 나온다. 학교 개학과 입학이 연기되고 각종 행사가 취소된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거리를 활보하면 무언의 압박이 달려들고 습관처럼 악수를 청하면 개념 없는 사람 취급받기 쉽다. 바이러스가 우리 삶의 양식과 방식을 바꿔놓았다. 당연한 일상이 당연하지 않게 된 것이다.     


당연한 일상이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것, 그것은 여행의 속성이기도 하다. 언어도 문화도 낯선 곳에서 며칠을 보내다 보면 보잘것없는 내 집도 늘 먹던 집밥도 지루한 일과도 새삼 좋아지는 경험을 한다. 아무리 근사한 곳에 다녀왔을지라도 ‘집이 최고!’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 않던가. 드라마 명대사도 있다. “모든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가진 것을 더 사랑하기 위해 떠나는 것”.     


예측불허의 전개가 이어지고 있지만, 이 사태도 분명 끝이 있다. 전 세계가 한마음 한뜻으로 종식을 앞당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그리하여 소중한 일상이 너무 늦지 않게 돌아와 준다면 이번에는 잊지 말아야지. 내가 가진 것들을 더 사랑하며 매 순간을 감사히 여기며 사는 것을. 물론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불만이 생길 테지만 맥락을 잃지는 않겠노라고.     


제주에 목련꽃이 활짝 피었다. 봄날은 온다.


[김민정의 제주산책 walk&talk]는 동명의 제목으로 제주도의회에 연재 중인 칼럼을 묶은 매거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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