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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김민정 Jul 17. 2020

내가 약속한 사람

사람들과 밥을 먹다가 발리 이야기가 나왔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이야기가 여행 이야기, 먹는 이야기, 여행가서 먹는 이야기라 반색하며 듣고 있었다. 수다는 자연스레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로 흘렀다. 그 영화가 발리에 대한 로망에 불을 지핀 경우가 여럿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먹고 인도 가서 기도하고 발리에서 사랑하며 진정한 자아를 발견하고 행복을 느낀다는 줄거리. 그때, 누군가 말했다.   


“근데 리즈(줄리아로버츠 역)처럼 여행하려면 이혼해야 해! 리즈도 이혼하고 갔잖아. 하하하”     


웃음소리가 하도 호탕해서 나도 모르게 따라 웃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아니 잠깐만, 이혼 안 하면 못 가나? 결혼 후에 서울로 광주로 부산으로 취재 다니는 나를 두고 친구들은 ‘자유부인’이라 불렀다. 그게, 내 생업인데, 밥벌이인데, 식 올리고 신혼여행 다녀와 다니던 회사 출근하듯이 나도 결혼 전에 하던 일을 쭉 할 뿐인데. 별 생각 없던 그 단어까지 새삼 곱씹어보게 되었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결혼은 싱글일 때 누리던 많은 자유와 자율을 포기해야 가능한 일임을 부정할 수 없음이다. 그래서 어렵다. 선택도 어렵고, 어렵게 선택하고 나서는 괴롭다. 사랑해서 결혼해놓고, 결혼 생활이 삐그덕 거리면 내가 맞바꾼 기회비용이 생각나 미치도록 억울하다. 나도 그랬다. 남들이 보면 자유로워 보였을지 모르지만, 나는 마냥 자유롭지 못했다. 내 일보다 시가 일을 우선해야 하는 순간이 꽤 많았다.      


그래서 부단히 다퉜다. 남편을 붙잡고 다투고, 내 마음을 붙들고 다투고, 결국 두 개의 일을 병행하기 위해 시간을 다퉜다. 그러는 사이 남편도 나도 지쳐갔다. 비혼주의자였던 나는 ‘결혼하고 싶다면 이렇게 자문해보라. 나는 이 사람과 늙어서도 대화를 즐길 수 있는가? 결혼 생활의 다른 모든 것은 순간적이지만, 함께 있는 시간의 대부분은 대화를 하게 된다’는 니체의 말에 결혼을 결심했더랬다. 밤 새워 대화를 나누던 우리였다. 그런데 대화가 사라졌다. 위기였다.     


사랑해서 결혼했는데, 행복하려고 결혼했는데, 어째서 서로를 갉아먹고 있는 걸까? 이대로 헤어지는 게 옳을까? 결혼이란 대체 뭐고, 부부란 무얼까? 우린 다시 마주보고 웃을 수 있을까? 고심했다. 그 끝에 내가 내린 결정은 ‘분리’였다. 부부라는 이유로 모든 걸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시가 일에도 내가 갈 것과 안 가도 될 것을 분리했고 행여 겹치더라도 죄책감 없이(이게 가장 어려웠다!) 거절하는 연습을 했다. 


배우자 SPOUSE란 말은 ‘약속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라틴어 SPONNUS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비단 평생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언약뿐일까. 행복한 결혼 생활을 일궈 나가기 위해 서로 노력하겠다는 맹세, 그러므로 네가 무얼 하든 그건 옳은 일일 거라는 지지적인 믿음, 내가 네 편이 되어주겠다는 다짐 일체가 포함된 게 아닐까? 남편과 이런 얘기를 나누진 않았지만 그는 묵묵히 지켜봐주었고 덕분에 우리는 다시 마주보고 웃을 수 있었다. 처음엔 서운한 기색을 내비쳤던 시아버지도 이제는 그러려니 하시는 눈치다.     


칼릴 지브란은 말했다.      


서로의 잔을 채우되 한 잔으로 같이 마시지는 마십시오. 

서로에게 자신의 빵을 주되 한 덩어리를 같이 먹지는 마십시오. 

함께 노래하고 춤추며 기뻐하되 서로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십시오. 

서로에게 마음을 주되 서로의 마음을 가지려 하지 마십시오.  - <예언자> 中

      

부부 관계도 그러면 좋겠다. 같이 있을 땐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되 떨어져 있는 순간에는 나에게 최선을 다하고(대개 거꾸로다. 같이 있을 땐 내 생각하고, 떨어져 있는 땐 네 생각한다), 마음껏 사랑하되 그 마음을 담보로 무언가 기대하지 않고(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는다. 기대도 실망도 결국엔 내 마음이 일방적으로 만든 거라, 생각해보면 부부 관계를 비롯한 모든 관계에서 유익한 기능을 한 적이 별로 없다) 말이다.      


하루의 끝. 옆자리에 누워있는 남편에게 꼬물꼬물 기어가 그의 팔을 내 어깨에 둘러맨다. “심슨이 그랬어. 팔은 마누라 안아주라고 있는 거라고.” 하지만 내내 부둥켜안고 잘 수는 없다. 그랬다간 다음 날 온몸이 쑤시고 생활이 곤란하다. 각자 꿈나라에 들면 팔을 풀고 멀찍이 떨어져 각자 밤을 보내야 한다. 그러고 아침에 다시 만나야 개운하다. 이 또한 관계의 은유리라. 부부가 잠자리에서 알게 되는 것들은 이렇게나 많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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