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자. 밥 안 먹어?
지난한 해고 소송에서 패소를 하고 함께 투쟁하던 동료들은 우리라고 못 떠날 게 있냐며 각자의 휴가를 떠난다. 주인공 재복은 고등학생, 중학생 두 딸만 있는 집으로 돌아 소소한 고장들을 처리하고 집을 정리하고 밥을 짓는다. 익숙한 듯 라면과 인스턴트만 먹는 아이들뿐 아니라 오랜만에 만나 술잔을 기울이는 친구들조차도 아직도 시위를 하느냐 묻는다. 딸의 대학 입학 예치금을 위해 친구의 가구공장에 일하는 재복은 좀처럼 가닿지 않는 직장동료와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나눈다.
실제 투쟁현장에서 살갑게 사람들의 밥을 챙기는 분을 모티브로 제작된 이 영화를 보며 투쟁을 하던 분들의 자살사고가 끊이지 않던 쌍용차 대량해고사태가 떠올랐다. 일을 하기 위해 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끝날 날은 보이지 않고, 힘과 지위를 가진 회사의 전방위 압박에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개인들의 필연적 희생들이 이어졌다. 그 시간이 길어지자 투쟁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 가족들 또한 말할 수 없는 고통, 혹은 방치되고 가정이 와해되고 붕괴되기도 한다. 이혼율이나 자살률에 대한 기사도 적지 않게 봤던 것 같다. 재복 또한 중학생과 초등학생이던 두 딸을 두고 투쟁을 떠났다 돌아오니 큰 아이가 벌써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으니 말이다. 생존을 위해 어떻게 보면 가정을 지키기 위해 더불어 노동자로서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싸웠던 시간들이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남은 일상은 파도에 쓸려가는 모래알처럼 파편만 남았다. 친구도 가족도 이름만 남아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가치가 그랬듯 황망히 멀어져 있었다.
그래도 재복은 밥을 짓는다. 반찬을 만들고 같이 먹자 손을 내민다. 재복이 건네는 따뜻한 밥 한 그릇에 마음이 동하는 다양한 사람들에 마음이 데워지는 만큼 착잡하기만 한 뉴스들이 머리를 스쳤다. 지독한 사람들은 안정된 사회적 지위를 얻고 부끄러움도 없이 살아가는데 왜 다정하고 따뜻한 사람들은 서로를 위해 희생하고 살아가야 되나 마음이 서글퍼졌다. 어려움에 공감하고, 고통에 아파할 줄 아는 사람들의 막연한 희생으로 이 사회가 굴러간다는 게 영화만이 아니라 더 그랬다.
영화를 보고 출퇴근길에 만나는 다양한 시위들을 마주할 때마다 재복이 떠오르긴 했지만, 더 어려운 상황 속에서 스스로를 키워내던 아이들에 더 마음이 쓰렸다. 라면으로 가득한 아이들의 식사에 따뜻한 밥과 맛있는 김치 한 조각 얹어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
https://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1452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