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 회상해 보면 그 대추나무집의 주인 할머니는 어딘가 모르게 괴팍한 점들이 많았다. 일가붙이 없이 오랜 시간 홀로 살다보면 누구라도 어딘가 한 구석 이상해지지 않는게 오히려 비정상일지도 모른다. 날개 잘린 참새에 대한 건을 치우고라도 그녀의 이상했던 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마당에 있어 한쪽 담벼락과 면해 있었는데, 그 너머로는 너저분한 관목 숲과 회색의 공장지대가 펼쳐져 있었다.
볼 것이라곤 공장의 굴뚝에서 한숨처럼 흩어지는 흰 연기가 전부였건만, 주인 할머니는 날이 좋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계단에 앉아 멀거니 그렇게 담벼락 밖을 쳐다보았다. 그럴 때는 누가 말을 붙여도 도통 무시할 뿐이었다. 그 어떤 사색에 잠겨있는지, 혹은 날파리처럼 엉겨 붙는 인간들의 간섭이 귀찮아서 귀머거리 행세를 했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무의미한 하루는, 내 할머니가 오며가며 묻는 식사 안부에도, 어쩌다 이른 퇴근을 한 우리 어머니의 살가운 알은 체에도 흔들림 없이 조용하게 가라앉는 일몰과 함께 사라지곤 했다.
주인할머니에게 정 말을 붙여야 할 용건이 있다면 직접 그 면전에 바짝 다가가 어깨라도 두드려 주어야 눈을 끔뻑하며 마치 네가 대관절 무언데 여기 있느냐는 얼굴로 사납게 상대방을 노려보았고, 인내심을 가진 상대가 재차 용건을 얘기하여 이해시켜 주어야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는 무겁게 현실로 돌아오곤 하였다. 마치 내키지 않는 장소로 끌어내려지듯이.
그러한 성격이니 친구조차 없는 것이 당연했다. 동네 아주머니들과 할머니들이 아침과 점심 사이에 골목길 귀퉁이에 장판을 덮어놓은 넓은 평상에 앉아 채소 등속을 다듬으며 하릴없이 무의미한 잡담을 나누며 하루를 소일하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주인 할머니가 누구와 더불어 남의 집 며느리 험담이나 어느 연예인이 어느 회장의 애를 가졌더라고 이야기하는 모습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주인할머니를 동네의 주민들은 조금 이상한, 정신이 살짝 돌은 늙은이 정도로 치부하였다. 그러나 워낙 조용하고 단출하게 사는 모양새 덕에 한 번 주요한 화제거리에 올라가 본 적도 없이, 동네어귀에 삐딱하게 서있던 번개 맞은 죽은 나무만큼의 관심도 사지 못하였다.
송림동이란 동네에서 고립이란 단어는 가깝고도 먼 단어였다. 각자의 십자가는 사람들을 단절시키고, 타인을 돌아볼 수 없게 하는 짐이었지만, 우리는 쌍둥이처럼 닮은 고통을 거울처럼 마주하며 서로를 혐오하거나 위안을 나눌 수 있었다.
주인할머니의 그 기이한 행동들은 단호한 거절이었다. 나는 너희들과 나의 고통을 나누지 않겠다 하는 그런 거절.
드물게 주인할머니에게 우편물이 도착하곤 했는데 그것이 내가 그동안 보통 보았던 황색이나 흰색의 단조로운 색의 것이 아니었다. 우편물들은 이발소의 돌아가는 막대처럼 붉은 빗금이 죽죽 그어진 생소한 것이었다. 내 눈에는 그것이 꼭 사탕의 껍질처럼 화려하고 예쁘게만 보여서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고 어디에서 온 것인지 한참을 들여다 보곤 하였다.
그러나 한글을 모두 깨우쳤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봉투의 글씨를 한자도 읽을 수 없었다. 의미 없는 기호처럼 나열된 그 사탕 포장지 같은 우편물이 주인 할머니의 것임을 안 것은 항시 그것이 도착하였을 때마다 내 손에 쥐어주며 이층으로 올려 보내던 어머니 으로 그러한 심부름 덕택에 그나마 나는 동네에서 주인 할머니와 가장 제대로 된 대화를 많이 나눠 본 사람이 될 수 있었다.
대화라고 해보았자 별 것은 없었다.
“오냐. 밖에서 그러지 말고 들어와 앉아라.”
“계집애가 얼굴에 무슨 코를 그리 묻히고 다니냐, 흉하게스리.”
“네 엄마한테 세가 밀렸다고 말해주련?”
“참새 새끼 좀 만져볼테여?”
이러한 심심한 말들일 때도 있었고 혹은 남과 말을 섞어야 하는 지극히 싫은 상황에서 나를 이용할 때도 많았다.
“옆집 감나무 가지 좀 어떻게 해놓으라 전해라. 우리집 고추장 독 다 깨놓기 전에.”
“반장아줌마한테 이 돈 좀 대추나뭇집 할매꺼요, 하고 전해주어라. 전해주면 알게다.”
그렇게 내가 남들보다 좀 더 많이 드나들어 알 수 있는 것은 주인할머니의 집은 늘 열려 있다는 것과, 그녀가 하루의 태반을 낮잠 아니면 담벼락에 붙어 지내며 보낸다는 것이고, 특히 고 알록달록한 모양의 편지가 도착한 날이면 늘 안방 문을 굳게 닫고 죽은 듯이 잠에 빠져 지냈다는 것이다.
침묵으로 꽁꽁 싸맨 것 같은 주인할머니의 낮잠은 때론 하루 꼬박 넘게 걸리기도 하였고, 가끔 그 시간이 길어질 때면 나는 같은 집안에 있으면서도 점점 옅어져 가는 그녀라는 존재에 대해 어떠한 두려움이 생기곤 했다.
그녀가 아직 이 세상에, 구차하고 뻔뻔하며 내 손에 결코 잡혀주지 않는 참새처럼 매정한 세상에서 떠나지 못하고 발을 붙이고 있다는 증거가 필요하여, 언젠가는 그 닫힌 방문에 바싹 귀를 대고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필사적이었던 적도 있었다.
내 생각에 그녀가 사라질 때는 아마 어떤 증인도 없이, 예의상 남겨놓을 형체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연기처럼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누구하고도 관계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린 내게 그것은 한 밤중에 느닷없이 홀로 깨어나 어둠속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는 나를 발견하는 것 만큼의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이때만큼은, 내가 참새를 필요로 하고 주인할머니의 참새를 도둑질 해야 했던 그 때만큼은 주인할머니의 저 괴벽이 내게 아주 필요한 것이 되어주었다. 나의 도둑질에는 몇 가지 운이 따라야만 했다.
첫 번째로는 편지가 필요했다. 사탕껍질 같은 편지는 자주 오는 것이 아니었고, 주기도 일정치 못했다. 때로는 몇 개월이나 편지가 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또 하나는 편지가 도착하여 주인할머니가 방으로 들어갈 때 참새가 안방이 아닌 다른 곳에 있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 두가지의 행운이 따라 준다면 내게 참새사냥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늙은 노파의 선의와 믿음을 이용한 비열한 도둑질을 하게될 지언정 나의 친구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과 기쁨을 선사할 수 있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