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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란 Jul 09. 2016

송림동의 크리스마스 9

그 날, 어김없이 평범한 하루가 시작되었다.     

번들거리는 야생 족제비 같은 눈동자를 한 짝지는 그가 그어놓은 책상 위의 금에 내 팔꿈치가 넘어왔다고 내게 주먹을 휘둘렀고, 벌을 주겠다며 쉬는 시간 내내 나의 공책과 연필 등등을 바닥으로 쓸어내리고 의자에도 올라오지 못하게 하였다.

담임선생의 시선은 작은 독재자에게 징계 받는 아이의 초라함에 머물렀다가 무료한 하품과 함께 지나갔다. 

그냥 좀, 평소보다 얼마쯤은 가혹한 하루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이르게 학교를 파하고 나서도 나는 마음의 위안을 찾아 이리저리 남들이 모르는 어떤 골목길을 혼자 헤매이고 일몰이 낡고 추한 기와의 뾰족한 끝에 걸리고 나서야 집으로 갈 엄두를 내었다.

그 날, 맞벌이 하는 부모의 귀가가 늦어졌음인지, 초록색으로 칠한 철대문의 우편함에는 예의 그 사탕껍질 같은 편지의 네모난 귀퉁이가 불쑥 튀어나와 하루 종일 수거되지 않고 내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황색 가로등 전구의 빛을 받아 선명하게 내 시야를 채우는 빨갛고 하얀 줄무늬들. 죄책감으로의 초대장.     


뜬금없는 이야기이지만 나는 롤러코스터를 타 본 적이 없다.

어릴 때는 그러한 사치를 누릴 환경이 되지 못하였고, 나이가 들어서는 그러한 행위의 쓸모없음을 느껴서였다. 

인생에서 매순간 닥쳐오는 스릴, 심장을 잡아채어 끝도 없는 밑바닥으로 패대기치고, 머리를,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어 나에게 뜻도 모를 단어를 내뱉게 만들거나 돌이켜 보면 과연 그것이 나였던가 의심케 할 정도로 멍청한 짓을 저지르게 하는 그런 상황을 나는 얼마나 많이 겪었던가. 

그것은 놀이공원의 차가운 좌석에 앉아 안전띠를 매고나면 손 쓸 도리 없이 순식간에,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되고 통제 불능의 감정 상태를 만들어 내는 그런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고 확고한 흐름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그 후에는 아무리 이것이 옳지 못한 길임을 눈치 채더라도 관성의 힘에 이끌려 울며 겨자 먹는 격으로 그 처참한 최후를 예견하며 꾸역꾸역 달려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날개가 잘린 채, 타고난 욕망으로 날아오르는 것을 좌절당한 참새는 주인집의 마루 위를 종종 거리고 있을 것이다. 늙고 어딘가 살짝 돌아버린 것 같은 주인 할머니는 내가 주는 우편물을 받아들면 그것이 운명의 명령인 것처럼 거부할 수 없는 몸짓으로 문을 닫아걸고 거추장스러운 몸뚱이를 뉘이고 세계와 자신을 단절시킬 것이다. 어지간한 소란에도 그녀는 그 안에서 꿈쩍하지 않을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비참하고 교활한 어린아이는 그 틈을 보아 참새를 훔쳐내었다. 오래된 일이고 부끄러운 추억이었기에 그 과정을 정확히 기억해 내기는 어려우나 편지를 움켜 쥔 노인의 텅 빈 동공, 안방 문이 닫히면서 내는 경첩의 부대낌 소리는 생생하다.      


무겁게 흐르는 상황의 관성이 나의 팔목을 낚아채어 나는 인식하지도 못한 채 행동하였고, 나의 작은 두 손 안에는 팔딱거리는 가련한 생명이 놓여있었다. 그것은 끔찍하게도 살아있었다. 아주 먼 훗날, 내가 성인이 되고난 후, 어느 횟집에서 나는 같은 기분을 느낀 적이 있다. 동행이 별미라 주문시켜 준 살아있는 생새우 회는, 랩으로 싸여진 대접 안에서 미친 듯한 생명력을 팔딱거리고 있었다. 마주 앉은 사람들은 그것을 꺼내어 미끈한 몸뚱이를 잡고 무자비하게 분질러 껍질을 깠다. 하얗게 뽑아져 나온 그 속살. 

나 역시 그들과 같이 아무렇지도 않게 새우를 손아귀에 넣었으나, 아, 그 펄떡거림. 생을 주장하는 강한 몸짓. 나는 그만 온 몸에 소름이 돋아버렸다. 동행들은 그 것을 힘주어 분지르라고, 꺾어버리라고 재차 요구했고, 혼자만의 유난스러움을 티내고 싶지 않아 태연하게 그 짓을 저지르고, 그리고 나는 다시는 생새우를 먹지 못하게 되었다.     


미래를 예견하는 것처럼, 나는 참새의 비참한 말로를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집에서 그대로 사는 것이 그에게 더 나은 삶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내가 참새의 팔딱거리는 심장을 분지르는 당사자가 되길 바란 것은 아니었다.

다만, 떨어진 나뭇잎처럼 발에 채이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될 수 없었던 내가, 유일하게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더 큰 기쁨을 주고, 그로 인해 더 중요한 존재가 되길 갈망했을 뿐이다. 그를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해는 저물었고, 나의 친구에게 당장 달려가기는 너무 늦은 시각이었다. 나는 내일, 내일 학교를 파하고 오면 꼭 그 작은 놈을 친구에게 보여주리라, 그 온기를 전해주리라 결심하고 마당의 한 구석에 뒹구는 돌들을 세워 장독대 뒤에 작은 감옥을 만들었다. 그리고 한줌의 쌀을 가지고 나와 참새와 함께 가두어 놓았다. 

위태로운 만족감을 안고 나는 잠을 설쳤고, 다음 날은 차마 감옥 안을 확인할 사이도 없이 학교에 가게 되었다.


그 어느 날보다도 하교를 기다리는 시간이 지난하였다. 잔인한 학우들의 괴롭힘이나 선생의 무관심 때문이라기보다는 기다리기 어려운 설렘이 문제였다. 끈 떨어진 부표처럼 언제나 낯선 주변의 파도에 의미 없이 둥실거리던 내가 처음으로 어떤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모험의 중심, 지독한 악당이 되거나 능력 넘치는 구원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 모든 기다림의 절정으로 어서어서 치닫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 글을 쓰면서도 그 때의 그 장면이 눈에 선하여 괴로울 뿐이다. 나의 욕심이 낳은 끔찍한 그 현장을 다시 떠올린다는 것이 괴로울 뿐이다.      


하교 후 한달음에 달려간 집, 그리고 장독대 뒤의 작은 감옥을 열었을 때, 그 형상을 미처 한 눈에 파악하기도 전에 모골이 송연하며 심장이 잠시 멈추는 줄 알았다.

날개 잘린 참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었고 그 미동도 없는 보드라운 깃털들 위로 새까맣게 개미들이 줄을 지어 오르락 거리고 있었다. 그는 그 움쭉달싹할 수 없는 감옥 안에서 산채로 그렇게 개미들에게 뜯어 먹히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황급히 자리를 떠나 돌계단에 앉아 제정신을 잡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리고 얼마간 식은 심장을 움켜쥐고 다시 그 장소로 돌아와 긴 막대로 최대한 멀리 떨어져 참새의 시신을 대추나무의 바로 밑으로 밀어 넣고 흙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그 후 다시는 친구의 집에 방문하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유년기의 하나뿐인 친구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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