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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맹 Jan 29. 2017

그림자 #1

목적은 내가 아니었다.

*

차가운 어둠만 삭막하게 들어찬 가난한 원룸 안, 이따금 지나는 요란한 오토바이와 자동차만이 어둠을 옅게 만드는 그 시간, 부푼 솜이불을 덮은 채 겨우 잠을 청하고 있었다.

‘드디어 첫 출근이다.’

내일을 기대하며 부푼 마음을 다잡느라 깊은 새벽이 되도록 몸을 뒤척이기 바쁘다.

‘또각, 또각, 또각.’

차갑게 식은 밤공기가 도시의 소음을 덮어서 그럴까, 현관문 밖, 복도에서 울리는 구두 소리는 날카롭고 선명하게 귓바퀴를 찌르고 들어왔다. 하지만, 한기를 막고, 온기를 지키는 따스한 솜이불 속에서 별거 없을 소풍을 기대하는 어린아이의 관심을 끌 수는 없었다.



*

어둡던 밤이 걷히자 덮여 있던 분주한 소리가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한다. 설렘에 퉁퉁 부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리곤, 아침의 그 분주함에 동참했다.

급히 상경하며 가져온 홀쭉한 치약부터 반도 남지 않은 샴푸를 지나쳐 허약한 스티커 옷걸이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잘 다려진 정장에 안착했다. 오래된 책상 위에서 나를 기다리는 작은 열쇠를 손에 꼭 쥐고 쉽게 반짝일, 아주 잘 닦인 구두를 조심히 신은 채, 낡은 현관문을 힘차게 밀었다.

‘끼익’ 거리는 낡은 쇳소리마저도 잘 다녀오라는 인사 같다. 기분 좋게 돌아서 문을 닫고, 황동색의 둥그런 열쇠 구멍을 지나쳐 손잡이에 나 있는 얇은 구멍으로 얇은 열쇠를 찔러 넣었다. 가볍게 손잡이와 악수를 나누고 몸을 돌려 바라본 복도는 첫 출근을 축하하는 레드 카펫이 깔린 것 같다.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문들의 인사를 받으며 앞으로 걸었다.



*

이른 시간이지만, 이미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기 위해 지하철역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 사람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선 깨끗하게 잘 닦인 스크린 도어를 바라본다. 결혼식의 하객이라도 된 듯, 빽빽한 사람들 사이에서 빼꼼, 내밀고 있는 내 얼굴이 보인다. 괜히 씽긋 웃어 본다.



*

“안녕하세요. 이번에 입사한…….”

어색한 건물 속으로 들어온 뒤로, 오전이 다 지나도록 입속에 녹음된 짧은 말들을 뱉었다. 건물 구석구석, 다시 올 일 없을 것 같은 공간까지 찾아다니며, 사돈의 팔촌쯤 될 것 같은 사람들까지 만나고 나서야 겨우 내 자리를 알 수 있었다. 털썩, 무너지듯 의자에 앉자, 주변 사람들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다.

“밥 먹으러 갑시다.”

점심시간이 되자 다시 지하철역으로 온 것 같다. 가득 찬 엘리베이터가 눈앞에서 내려가고, 다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쭈뼛거리고 있으니 함께 인사 다닌 팀장님이 누군가를 데려와 소개한다.

“여기는 자네 선임. 옆자리니까 모르는 거, 궁금한 거 있으면 다 물어보고. 친하게 잘 지내.”

툭, 말을 던진 팀장님은 돌아서 사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선임과 단둘이 남자 부담스러운 어색함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 같다. 무슨 말을 꺼내야 할까, 고민하는 사이 선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지방에서 올라오셨다면서요? 집은 구했어요?”

“예, 다행히.”

“시간이 빠듯했을 텐데, 다행이네요. 혹시 자취하세요?”

“예. 서울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요. 갑자기 혼자 살려니 좀 막막하네요.”

“아~ 자취는 처음이신가 봐요? 조금 외롭긴 해도, 혼자 지내는 게 편할 거예요.”

“예…….”

겨우 물꼬를 텄지만, 어색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엘리베이터 주변으로 모여드는 다른 직원들만큼, 어색함은 더 쌓여갔다.



*

식당으로 들어서 아침부터 텅 비어있던 속을 조금이라도 달래보려 수저를 들었지만, 너무 긴장한 탓일까, 아무리 꼭꼭 씹어 삼켜도 목구멍에 걸릴 것만 같다. 식사 사이사이 툭툭, 날아오는 질문들을 겨우겨우 삼켜내며 식사를 마치자, 사람들은 다시 분주히 움직인다.

사무실로 돌아와 지정석에 털썩, 주저앉자 그제야 숨이 좀 트인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니 언제 왔는지 모를 선임이 나타났다. 허둥지둥 자세를 고쳐 앉으며 선임의 눈치를 살핀다.

“앞으로 할 일 들이랑 지켜야 할 것들, 연락처랑 뭐 그런 거 모아서 간단히 적어 봤어요. 부담 갖지 말고 찬찬히 읽어봐요.”

미리 프린트해 뒀는지 서른 장 남짓한 종이를 꺼내 건넨다. 씽긋 웃으며 얘기한 선임은 다시 어디론 가로 걸어가 버렸다. 덩그러니 혼자 남아 종이를 훑어보니 밀려있던 답답함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여태 거의 입어 본 적 없어 불편한 정장에, 딱딱한 구두, 넥타이까지 꽉 졸라매고 앉아 있으니 숨 쉬는 것마저 갑갑하다. 조여 오는 뒷목을 슬쩍슬쩍 풀어가며 한 다발의 종이 뭉치를 읽다 보니 어느새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

아침보단 덜 붐비는, 그래도 사람들이 가득 들어차 있는 지하철역에 도착했다. 목을 꽉 조르던 넥타이에 검지를 집어넣어 만든 딱, 그만큼의 여유가 늘어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열차에서 내려 밖으로 걸어 나오니 화사하게 피어있는 간판들이 즐비하다. 꽃구경하듯 번화가를 거니는 사람들 사이에 스며들어 다른 목적지를 향해 걸었다. 몇 번의 갈림길을 돌고 돌아 들어가니 조금 전 걷던 번화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주택가가 나타났다.

조용하고 어둑한 골목길엔 듬성듬성 거리를 두고 서 있는 전봇대와 겨우 매달린 가로등 불빛만 빛나고 있다. 몇 개의 전봇대를 지나쳐 조금 더 걸어 들어가자, 오늘 아침 나섰던 낡은 건물이 보인다. 

역에서 내려 10여 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 '휴-.' 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복도를 걸어 쭈욱 서 있는 문 중에서 '103'이란 이름표를 달고 있는 현관문 앞에 섰다.


‘철컥’

경쾌한 소리와 함께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가볍게 넥타이를 풀어헤치니, 봉긋하게 부풀어 있는 이불이 눈에 들어온다. 저녁이라기엔 조금 늦은, 밤이라기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넥타이와 함께 풀어진 긴장은 자연스럽게 몸을 눕혔다. 풀썩, 무너지듯 이불 위로 쓰러지니 이제는 눈꺼풀이 무겁다.

‘아, 옷 갈아입어야 하는데…….’

흐려지는 머릿속으로 한줄기의 생각이 흘러간다. 그 생각은 몸을 일으키진 못했지만, 가만히 잠들게 내버려 두지도 않았다. 휙, 몸을 뒤집은 채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쉰다. 어디선가 퀴퀴한 냄새가 스멀스멀 흘러와 콧구멍을 막았다.


합격 통보를 받은 뒤, 회사와 가깝고 싼 집을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들다는 주변의 얘기에 잔뜩 긴장한 채 급히 집을 찾고 있었다. 참 다행스럽게도 걱정했던 것보다 꽤 괜찮은 집을 구하긴 했는데, 외관도 내부도 한참 낡아 있었다. 다급하기도 했고, 이전에 살던 사람이 며칠 전에 이사를 갔는지 깨끗하게 청소된 집을 봤을 땐 큰 문제는 없을 거로 생각했다.


역시, 오래된 집이라 그럴까 어디서 나는지 모를 퀴퀴한 냄새에 결국 몸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급한 상경으로 당장 필요한 것만 챙겨왔기에 흔한 방향제 하나 없다. 주말에나 택배가 올 텐데, 그때까지 기다리기도 그렇고 간단히 청소할 도구도 없다. 넥타이만 풀어 놓은 채 잡화점을 찾기 위해 현관을 나섰다.

끼익 거리는 문소리 아래로 누군가의 급한 발소리가 들린다. 무심결에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위층으로 연결된 계단이 보였다. 빠른 걸음 소리는 계단을 다 올라 복도를 걷는 듯싶더니 뚝, 끊어졌다. 문을 잠그고 건물 현관을 나설 즈음, ‘철컥.’ 아주 조심히 현관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

크고 넓은 잡화점엔 당장 필요한 것들과 있으면 좋을 것들이 잔뜩 진열돼 있었다. 한참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물건을 고르다 보니 어느새 들고 있던 바구니가 무거워진다. 함께 살 때만 해도 부모님이 채워주시던 생필품들을 이제는 하나부터 열까지, 내가 다 챙겨야 하는구나. 괜스레 무거워진 바구니만큼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

작은 유리컵 안에서 밝게 빛나는 촛불은 살랑살랑, 부드럽게 몸을 흔들며 옅은 향기를 흘리고 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청소로 몸을 데우고, 따끈한 물로 샤워까지 마치고 나니 노곤노곤한 게 침대에 눕기만 하면 곧바로 잠들 것 같다. 미리 켜둔 향초 덕분에 퀴퀴한 냄새도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얼른 불을 끄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곧게 누운 채, 곧 꺼져버릴 정신을 겨우 붙잡고 전화기를 들었다. 알림이 제대로 맞춰진 걸 확인하고 베개 옆에 흐릿한 정신과 함께 전화기를 조심히 내려놨다.

‘똑, 똑, 똑.’

고요한 방 안으로 아주 작은 노크 소리가 울린 것 같았지만, 눈을 뜨진 않았다. 이 시간에 누군가 나를 찾아올 리 없었기에.



*

아직은 어색하기만 한 이른 아침이 반복될수록 피로는 점점 두터워졌다. 힘겹게 현관문 손잡이와 악수를 나누곤 몸을 돌려 복도를 걷는다.

‘끼익-, 쿵. 철컥, 철컥.’

‘또각, 또각, 또각.’

또 다른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구두 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웠다. 잠시 발걸음을 멈춰 뒤돌아보니 고개를 푹 숙인 여자가 무언가 바쁜 일이 있는 듯,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옆집 사람이라는 생각에 반갑게 고개를 숙였지만, 그 사람은 오히려 더 빠른 걸음으로 지나쳐 간다. 그 사람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건물 현관으로 걸어간다. 몇 걸음 걸었을까, 바닥에 떨어진 작은 형광 종이가 시선을 끌었다.

‘이게 뭘까?’ 아주 가벼운 호기심으로 반쯤 구겨진 종이를 집어 들었다.


‘저, 부담스러우실까 봐 쪽지 남겨요. 며칠 지나가시는 걸 뵀는데, 너무 예쁘셔서. 잠시 커피 되시면 시간이나 한잔할 수 있을까요? 괜찮으시면 연락해주세요. 010-XXXX-XXXX’


삐뚤빼뚤한 글자를 다 읽고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골목길엔 듬성듬성 걸어가는 사람들이 보이지만, 이 쪽지의 주인은 없는 것 같다. 도서관에서나 볼 수 있을까 했던 쪽지가 왜 여기에 떨어져 있을까?



*

“며칠 지내보니 어때요? 분위기는 괜찮은 거 같아요?”

“아,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처음이다 보니…….”

바짝 긴장한 채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말을 걸어온 선임의 목소리에 움찔, 놀라 어색하게 대답했다. 눈이 마주치자 사람 좋은 웃음으로 화답하더니 몇 장의 서류를 건넨다.

“어서 적응해야 편하죠. 크흠. 이제 이것도 해봅시다. 지금 하는 일의…….”

며칠 동안 같은 일을 반복적으로 해도, 쉽게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조금 더 복잡한 일거리가 주어진다. 당황한 탓에 숨기지 못한 표정을 읽었는지 선임은 말을 덧붙였다.

“내일이면 주말인데, 야근은 하지 말고요. 신입 야근시키면 혼나거든요.”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얘기한 선임은 또 어디를 가는지 의자에서 엉덩이를 뗐다. 건네받은 서류를 살펴볼수록 가슴만 답답하다.



*

‘이틀은 쉴 수 있구나.’

조금은 느슨해진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 평소에도 많던 사람이 오늘따라 더 많아 보이는 번화가를 걸어간다. 흥이 난 듯, 가벼워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껴 있으니, 오늘 밤은 그냥 보내선 안 될 것만 같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겨 편의점을 들렀다.



*

책상 위로 까만 비닐봉지를 올려둔 채 화장실로 향했다. 맥주를 마시고 씻을까, 씻고 마실까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따끈한 물로 몸을 데우는 게 먼저인 것 같다.


따뜻한 물로 몸을 적시며 두 손을 바삐 움직여 하얀 거품을 만들고 있을 때였다.

‘똑, 똑, 똑.’

세찬 물소리를 가르며 낮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잘못 들었나 싶어 물을 잠그고 잠시 기다렸지만, 노크 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았다.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찾아올 사람이 없는 걸 잘 알기에 옆집 소리거나 잘못 들은 거로 단정 짓곤 다시 물을 틀었다.



*

샤워를 끝내고 상쾌한 마음으로 맥주 캔 하나를 꺼내 들었다. ‘딸각, 치이익-’ 침대에 걸터앉아 맥주 캔을 따자,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하얀 거품이 흘러나온다. 얼른 넘치는 거품과 맥주를 함께 호로록 소리 내어 마시고는 시원하게 숨을 틔웠다.

맥주가 목구멍으로 넘어가고 잠시간의 소란이 끝나자 다시 집안은 조용해졌다. 반대로 창밖은 오늘따라 더 시끌시끌하다. 얇은 벽이 만든 온도 차는 생각보다 넓다. 괜히 쓸쓸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향초에 불을 붙여 살랑이는 촛불을 바라보며 맥주만 홀짝이고 있으니 점점 머릿속으로 그림자가 드리운다.

‘언제까지 혼자 지내야 할까?’

뜬금없이 시작된 생각을 멍하니 따라간다. 한 걸음, 한 걸음 생각을 따라 걷다 보니 점점 기분은 아래로 가라앉았다. 갑작스러운 생각에 예상치 못한 막막함이 밀려오자 한숨이 튀어나왔다. 밖으로 나간 숨만큼 빈속에 맥주를 부어 넣었다.

“텅-”

맥주를 목구멍으로 넘기던 중 갑작스레 철판 울리는 큰 소리가 들렸다. 뿜어낼 뻔한 맥주를 겨우 삼키며 창문으로 향했다. 얼른 창밖을 살폈지만, 딱히 보이는 거라곤 건너편 건물의 빨간 벽돌이 전부다. 얼른 방충망까지 열어 가로로 놓인 좁은 골목을 훑어봤지만, 좁고 어두운 시야 안엔 딱히 뭔가 들어오는 게 없고, 아주 작은 소리만 들렸다.

“아이 씨…….”

‘텁, 쓰윽-, 텁, 쓰윽-’

넘어져 다리를 다친 듯, 발 끄는 소리가 작게 들린다. 무슨 일일까. 호기심과 두려움을 앉고 얼른 건물 밖으로 나갔다.



*

건물 현관 앞에서 골목길을 둘러보지만, 드문드문 서 있는 전봇대만 보일 뿐 걸어가는 사람조차 없다. 조심히 건물 사이에 난 골목을 살펴보기 위해 걸어갔다. 모퉁이를 돌아 가로등 불빛마저 제대로 들지 않는 좁은 입구에 서서 고개를 기웃거린다. 다른 집들은 비어 있는지 우리 집 창문만 밝게 빛나고 있다. 바짝 긴장한 채 안쪽으로 걸어갔다.

방 안에선 보이지 않았지만, 각 집의 창문 옆으로 조그마한 에어컨 실외기가 달려있었고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 골목의 끝, 막다른 벽까지 걸어가도 딱히 눈에 띄는 게 없다. 바닥도 깨끗하기에, 들고 있던 호기심과 두려움을 내려두고 몸을 돌렸다.

밖으로 걸어 나오다 아무 생각 없이 우리 집 창문 옆에서 방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방 안이 너무 잘 보여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조금 더 둘러본다. 조금 높이 달린 창문이었지만, 꽤 큰 편이었기에 웬만한 성인이라면 아주 쉽게 방 안을 살펴볼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고개를 돌리다가 멈칫, 시선을 에어컨 실외기에 고정했다. 잔뜩 쌓여 있는 먼지 위로 발자국과 미끄러지듯 길게 닦인 흔적이 보인다. 그리 밝지 않은 골목이지만, 실외기 윗부분에 난 흔적은 선명했다. 손을 뻗어 먼지가 닦인 부분을 만져보지만, 손가락 끝은 깨끗하다. 설마 하는 생각으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겨 실외기를 툭툭 쳐 본다.

“텅-, 텅-” 

얇은 철판이 울리는 소리는 방 안에서 들었던 소리와 비슷하다. 똑같다는 확신이 들진 않았지만, 흔적도 그렇고 뭔가 꺼림칙하다.

‘여긴 왜 올라간 거지?’

의심이 들자 자연스럽게 고개가 들린다. 우리 집 실외기 위로 가로 놓인 가스 배관과 2층의 창문 그리고 또 다른 실외기가 보인다. 쉬워 보이진 않지만, 체력이 좋은 남자라면 2층 창문으로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도둑이구나.’ 짧은 생각이 머릿속에서 번뜩였다. 하지만, 내 생각만큼 윗집 창문도 밝게 빛나고 있다.

‘보통 도둑이라면 불이 꺼진 집을 노리지 않나?’

조금 이상하긴 하지만, 지금 상황을 윗집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자는 3회로 나뉘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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