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은 내가 아니었다.
*
‘똑, 똑, 똑.’
한달음에 203호 현관문 앞에 도착해 노크했다. 문 옆엔 현관 벨이 달려 있었지만, 고장이 난 건지 누르지 못하게 버튼 위로 몇 겹의 테이프가 붙어있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버튼을 눌러봤다. 탈칵거리는 소리마저도 들리지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조심히 노크하고 기다렸지만,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똑, 똑, 똑, 똑’
다시 문을 두드려도 조용하다. 분명 창문으로 집안이 밝은 걸 확인했는데, 조용하니 신경이 쓰인다. 벌써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딱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만 된다. 잠시 복도를 두리번거리며 머리를 긁적여도 마땅한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찝찝함만 안고 집으로 내려왔다.
*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와 손잡이에 달린 잠금장치를 돌렸다.
‘철컥’ 소리를 내며 문은 잠겼지만, 이것만으론 좀 불안하다. 손잡이 위에 달린 황동색의 커다란 보조키가 보인다. 집주인이 따로 열쇠를 주진 않았지만, 안에서 잠그는 거라 괜찮을 거로 생각하고 잠금장치를 돌렸다.
‘털컥, 털컥.’
뭔가 안에서 걸렸는지 둔탁한 소리만 날 뿐 잠금장치는 채워지지 않았다. 한밤중이니 내일 열쇠 수리공을 부를까 싶지만, 이미 가득 불안한 마음은 기다릴 여유를 주지 않았다.
*
“무슨 일이 있었나 봐요?”
“네?”
“여기 기존의 보조키를 보시면.”
급히 열쇠 수리공을 부르니 10분도 채 되지 않아 커다란 가방을 들고 나타났다. 수리공은 도착하자마자 현관문부터 살피더니 먼저 달려 있던 보조키를 만지작거리며 얘기했다.
“여기, 안에 잠기는 부분이 휘었죠? 이게 엄청 센 충격을 받아서 휘어버린 거예요. 어떻게 열긴 했는데, 계속 사용할 순 없을 것 같네요. 교체해야겠습니다.”
“아, 네.”
“여기서 계속 사신 겁니까?”
“아니요. 이사 온 지 며칠 안 됐습니다.”
“아, 혼자 사시는 것 같은데, 이번에 안전 고리도 같이 다시죠?”
“예?”
“여기 찌그러진 구멍 보이죠? 이전에 달려 있었던 것 같은데, 뜯긴 것 같네요.”
보조키를 교체하려던 수리공이 건넨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이전에 살던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수리비는 얼마나 들지.
수리공을 부르기 전, 혹시나 하는 생각으로 집주인에게 먼저 연락했지만, 잘 잠기는 문을 두고 굳이 안전장치를 더 다는 것이니 자비로 알아서 하라는 말만 되돌아 왔다.
너무하단 생각이 들어도 아쉬운 건 나였기에 아직 첫 월급도 받지 않은 상황에서 꽤 부담스러운 지출을 결정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쳐봐야 사람들은 소도둑을 욕하지 않는다. 소 잃은 사람의 무능함만 탓할 뿐.
“요즘 혼자 사는 게 더 위험하다는데, 조심해요. 문 꼭 잘 잠그고, 고장 나면 언제라도 바로 연락해주시고요.”
잠깐 생각하는 사이 수리공은 능숙한 솜씨로 보조키와 안전 고리를 달고는 명함을 건넸다.
*
수리공이 떠나고도 현관 앞에 서서 잘 잠기는지 몇 번이나 확인한 후에야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멍하니 서선 이미 다 식어 미지근한 맥주를 한 모금 마신다. 때마침 창밖으로 경찰차가 지나가는지 붉은빛과 파란빛이 번갈아 보인다. 그 빛을 신호 삼았는지, 멍하던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날뛰기 시작했다.
‘조금 전, 창밖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전에 살던 사람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보조키는 왜 고장이 났고, 안전 고리는 왜 뜯겼을까? 혼자 살면 더 위험한 이유는 뭘까?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는 말보다, 조심하라는 말을 들어야 할까?’
열쇠 수리공의 마지막 말이 생각나자 복잡하던 머릿속으로 불안함이 끼어든다.
‘내가 도둑을 맞든 강도를 만나든, 무슨 일이 생겼을 때, 나를 도와줄 사람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곧장 달려올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내가 직접 경찰에게 신고하지 않는 한. 깊어가는 밤은 어느새 버겁게 무거워진다. 고개를 돌려 굳게 잠겨 있는 잠금장치들을 보자 조금은 안심되면서도 여전히 불안하다.
‘오랫동안 가족과 함께 살아서 몰랐던 걸까? 혼자 사는 게 이렇게 불안한 걸까? 다들 이런 거라면 나도 곧 익숙해질까?’
답 없는 고민은 점점 더 깊어 갔다.
*
“쾅! 쾅! 쾅!”
현관문을 두드리는 큰 소리에 언제 잠들었는지 모를 정신을 차렸다. 힘겹게 몸을 일으켜 멍하니 주변을 살펴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 있다.
“쾅쾅쾅.”
“예. 누구세요?”
다시 들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얼른 현관문으로 향해 달려간다.
“택배요.”
현관문 너머에서 들리는 건조한 목소리에 허둥지둥 안전 고리와 보조키를 풀고 문을 열었다. 조금 전까지 문을 두드리던 택배 배달원은 보이질 않고, 커다란 종이 상자 두 개만 덩그러니 바닥에 놓여 있다.
얼른 상자를 집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으려다 멈칫,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문 옆에 분명 현관 벨이 붙어 있는데, 왜 손 아프게 문을 세게 두드렸을까. 멀쩡해 보이는 현관 벨 버튼을 눌렀다. 탈칵거리는 플라스틱 소리만 들릴 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몇 번을 더 눌러봐도 여전히 조용하다.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집 안으로 들어와 현관문을 닫자 창문으로 자동차의 시동 소리가 들렸다.
‘언제 잠들었지?’
늦은 시각까지 고민을 이어가다 답을 찾지 못해 침대에 누워 버렸다. 일단 누우면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는데, 한껏 예민해진 정신은 쉬이 잠들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방음이 거의 되지 않는 집 안으로 드문드문 들리는 창밖의 소음과 이따금 울리는 발소리에 몸을 뒤척이다가 지쳐 잠든 것 같다.
상자를 방 안으로 옮겨 놓고 멍하니 주변을 둘러본다. 조금은 익숙해진 것 같으면서도 아직은 낯선 묘한 느낌이다. 천천히 방 안을 훑던 시선은 창문에 닿자 그대로 멈췄다. 문득, 어젯밤의 일이 떠오른다. 얼른 창문을 열어 골목을 살폈지만, 딱히 어제와 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
‘휴-.’ 부풀었던 가슴을 툭, 터트린 듯 한숨이 흘러나온다. 창틀에서 손을 떼고 두어 걸음 뒷걸음질 치다 잠시 멈췄다. 창틀의 위쪽 모서리 끝에 굵은 구멍이 보인다. 얇은 볼펜 한 자루는 족히 들어갈 것 같은 구멍은 나란히 두 개가 뚫려 있다. 자연스레 반대편 모서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니 조그마한 천 조각을 매단 굵은 대못이 박혀 있다.
‘저게 뭘까?’
가볍게 든 호기심에 천 조각을 자세히 살펴보니 흔한 면으로 된 검은 천인 것 같다. 이전에 살던 사람은 얼마나 급히 이사 갔기에 저런 흔적을 남기고 갔을까. 멍하니 생각에 잠길 뻔했지만, 지금 나와는 상관없기도 하고, 알 수도 없기에 얼른 정신을 차렸다. 딱히 거슬릴 것 없는 위치에 박혀 있는 대못에서 시선을 거두고 택배 온 상자를 열었다.
*
정리와 청소를 다 끝내고 현관문 근처로 빈 택배 상자와 쓰레기들을 모아 놓고 나니 슬슬 배가 고프다. 일단 상자와 쓰레기를 버린 뒤 생각하기로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복도로 나서자 누군가 걸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돌리니 헬멧을 쓰고 네모난 철가방을 든 사람이 당당한 걸음으로 들어오고 있다.
‘배달시켜 먹을까?’
가볍게 생각하며 걸어오는 배달원을 지나쳐 건물 밖으로 향했다. 배달원은 102호의 현관 벨을 눌렸고 곧,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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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현관 옆엔 아직 수거하지 않았는지, 작은 종이 상자들과 쓰레기 봉지가 모여 있었다. 그 옆으로 들고나온 쓰레기와 상자를 잘 세워놓고 몸을 돌리려는데, 먼저 버려져 있던 상자에 시선이 꽂혔다. 작은 종이 상자는 택배 서비스를 거쳤는지, 열린 부분에 찢어진 커다란 송장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시선을 붙잡은 건 그 송장 스티커에 이름과 주소가 적혀 있었을 부분이었다. 뭐라고 적혀 있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새까만 볼펜으로 심하게 긁어 놨다. 어떤 강박증 같은 걸까, 왜 이렇게 해놨는지 모르겠다. 다른 상자들을 살펴보니 아예 송장 스티커를 뜯어냈는지 지저분한 상자도 보인다. 원래 이렇게 내놔야 하는 건지 고민하며 잔뜩 긁은 불안감을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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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복도로 돌아오자 어슬렁거리는 배달원이 보인다. 이미 배달을 마친 듯 102호가 아닌 복도 끝, 104호의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다. 그 모습에 ‘전단을 붙이려고 하나 보다’ 가볍게 생각했지만,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뭔가 조금 이상하다. 현관문 안을 보기 위해 기웃거리듯 계속 서성이고 있다. 우리 집 현관에 가까이 가자, 인기척을 느꼈는지 배달원은 허둥지둥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배달원이 건물을 나가는 걸 끝까지 지켜보고 현관문에 붙은 전단을 뜯었다. ‘24시간 배달 전문 음식점. 한 그릇도 배달됩니다.’라는 문구가 커다랗게 보인다. 배가 고프긴 한데, 조금 전 수상한 배달원의 행동 때문에 주문하기가 꺼려졌다.
*
“입사한 지 벌써 좀 지났는데, 조금씩 적응되죠?”
등 뒤로 나타난 선임이 씽긋 웃으며 커피와 말을 건넨다.
“아, 아직……. 잘 적응이 안 되네요. 저만 이런 건지…….”
“천천히 하다 보면 익숙해질 거예요. 그런데 무슨 일 있어요? 눈이 퀭하네.”
“아니요.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잠을 잘 못 자서요.”
“그것도 곧 적응될 거니까, 맘 편히 지내요.”
선임은 이미 다 겪어본 것처럼, 아주 가볍게 말하기에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싶다. 가벼운 문제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 내가 유별난 건가.
*
‘똑, 똑, 똑.’
‘똑, 똑, 똑.’
“누구세요?”
반복되는 노크 소리에 홀짝이며 마시던 맥주 캔을 내려놓고 현관문을 벌컥, 열었다. 아무도 없다.
벌써 며칠째, 어둑한 밤이 되면 뜬금없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딱히 다른 일은 없었지만, 간헐적으로 들리는 노크 소리 때문에 신경이 예민해졌다. 아닌가, 문을 열어도 아무도 없으니 심각한 일인가. 정해진 시간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문을 두드리기에 단순히 장난으로 치부하기는 힘들었다. 범인을 붙잡기로 작정하고 기다리는 날에는 또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조용했다.
반복되는 노크 소리에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신경은 흐린 상상의 조각을 선명하고 자세한 가짜 기억으로 만들었다. 어느새 실제로 겪었던, 혹은 전해 들었던 이야기로 착각할 만큼 생생해진 상상은 불안함을 만들었고 그 속에서 점차 더 크고, 더 무서운 존재가 되어 나를 괴롭혔다.
‘이러다 어떤 사고라도 나는 게 아닐까? 누군가 나를 노리는 건 아닐까?’
퇴근길에 자주 편의점을 들렸다. 간단히 끼니를 때울 먹거리와 맥주를 꼭 챙겨 집으로 돌아왔다. 예민한 불안함으로 날카로워진 신경을 그나마 뭉툭하게 연마하는 건 약간의 알코올이었기에.
한 차례의 노크를 견뎌 내고 맥주의 힘을 빌려 겨우 잠자리에 들었지만, 얼마 가지 못해 일어나야 했다. 이번엔 층간 소음이다. 쿵쿵거리는 윗집의 발소리는 오늘따라 더 길고, 웅장하다. 참지 못하고 현관문을 나섰다.
*
‘똑, 똑, 똑.’
203호의 현관문을 두드렸다. 잠시 기다렸지만, 대답은커녕 인기척도 없다. 분명 조금 전까지 쿵쿵거리며 발소리를 잔뜩 울렸는데 노크를 하니 조용하다.
‘쿵, 쿵, 쿵.’
“저기요. 아래층에 사는 사람인데요.”
조금 더 세게 힘줘 문을 두드렸다. 귀신이 곡할 노릇인가, 분명 천장에서 발소리가 울렸는데, 왜 불러도 대답이 없는 걸까. 스멀스멀 쌓인 짜증을 담아 다시 문을 두드리려 손을 들었다. 꽉 닫힌 문에서 조그마한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세요?”
경계하는 듯, 아주 작고 가는 여자의 목소리였다.
“아랫집 사람인데요. 새벽인데 발소리가 너무…….”
‘철컥, 철컥’
현관문에 바싹 붙어 짜증 섞인 말을 뱉으니 말을 자르는 쇳소리가 들린다. 잠시 심호흡을 하며 기다리니 닫혔던 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안전 고리 때문인지 5cm 남짓한 틈이 생기고, 그 틈으로 빼꼼 얼굴을 내보인다.
“죄송합니다. 조심하도록 할게요.”
살짝 고개를 끄덕인 여자는 문틈으로 사과를 건넨다. 그런 여자에게 딱히 더 할 말은 없었기에 한숨과 함께 고개만 끄덕였다.
몸을 돌리려다 좁은 문틈으로 방안이 살짝 보인다. 슬쩍 움직인 시선의 끝엔 아주 커다란 운동화와 넘어져 있는 새까만 하이힐이 보였다.
*
계단을 내려와 집으로 들어가기 위해 복도를 걸어간다. 등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아, 슬쩍 뒤돌아보니 건물 밖, 전봇대 아래에서 한 남자가 붉은 담뱃불을 물고 있다. 누구를 기다리는 건지, 그냥 담배를 피우러 나온 건지 모를 그 남자를 슬쩍 훑어보고는 다시 몸을 돌렸다.
‘또각, 또각.'
저 멀리서 바삐 걸어오는 구두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커지고 가까워졌다. 잠시 멈춰 다시 뒤돌아서자 며칠 전, 아침에 봤던 104호의 여자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철컥, 철컥’
여자는 무언가 쫓기는 듯 곧장 자신의 현관문을 열고 빠르게 사라졌다.
*
'똑, 똑, 똑.'
갑자기 고요한 방안으로 작은 노크 소리가 찾아왔다. 눈은 번쩍 뜨이고 귀는 예민해진다.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로 작은 소리였기에 귀에 신경을 집중했지만, 다시 들리지 않았다. 가만히 누워있자니 불안하기도 하고 나가서 확인해볼까 싶어 현관문 앞으로 걸어갔다. 잠시 심호흡을 하고 손잡이를 잡으려는 순간.
‘철컥, 철컥, 철컥.’
잠긴 손잡이를 거칠게 돌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눈앞의 손잡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 집은 아니고, 옆집일까. 기왕 일어난 김에 확인하기로 마음먹고 현관문을 열었다.
문틈으로 보이는 길게 뻗은 복도는 어둡게 텅 비어 있고, 발소리만 꼬리를 남긴 채 멀어지고 있었다. 복도로 걸어 나와 주변을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
또다시 아침은 밝아 왔고, 몽롱한 정신으로 굳게 닫혀있는 현관문을 힘겹게 밀었다.
‘툭.’
문이 열리자 뭔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연스레 아래로 향한 시선은 엎어져 있는 편지 봉투를 발견했다. 누군가의 손편지를 담고 있는 듯, 알록달록한 봉투를 이리저리 살펴봐도, 글자 하나 없이 깨끗하다. ‘뭘까?’ 싶은 호기심과 ‘주인을 알아야 찾아주지.’하는 얕은 정당성으로 봉투를 뜯었다.
‘To. 경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도 안 보고 그러면 어떡해. 너무 보고 싶어. 내가 다 잘할 게. 그러니까…….’
누군가를 애타게 찾는 장문의 편지가 들어 있다. 이게 왜 우리 집 현관에 떨어져 있었을까. 잠시 생각하며 현관문을 닫았다.
‘쿵.’ 현관문을 닫자 문득, 옆집 여자가 떠올랐다. 편지 상단에 적힌 이름이 여성스러웠기에 가볍게 생각하며 104호 현관문 앞으로 걸어갔다.
현관문 앞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르고 현관 벨을 울리려 손가락을 들었다가 짧은 한숨만 뱉었다. 역시 오래된 집이라 그런 걸까. 현관 벨 자체가 아예 박살이 나 있다.
‘똑, 똑, 똑.’
이른 아침이긴 하지만, 어서 건네주고 출근하고 싶은 마음에 얼른 문을 두드렸다. 잠시 기다려도 아무런 대답이 없다. 다시 노크를 해보지만, 역시. 나중에 전해주기로 하고 몸을 돌렸다.
*
어느새 익숙해져 더는 기억에도 남지 않을 풍경 속을 걷는다. 언제나 가득한 사람들로 북적이는 지하철역으로 들어가, 항상 깨끗하게 닦여 있는 스크린 도어 앞에 섰다. 나만 빼고 모두가 바뀌는, 혹은 같아도 기억하지 못하는 어두운 액자 속 그림을 바라본다. 어둡기 때문일까, 나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있다. 모두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
늦은 퇴근 후, 집으로 이어진 번화가를 걸어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무실의 분위기에 익숙해질수록 점점 퇴근 시간은 늦어졌고, 그만큼 미뤄진 저녁을 먹기 위해 번화가를 기웃거리는 시간도 늘어났다.
비닐봉지를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내며 익숙한 건물로 들어서자 긴 복도에서 서성이는 한 남자가 보였다. 발소리를 내며 몇 걸음 걸어가자, 인기척을 느낀 그 남자는 어색하게 주변을 둘러보더니 건물 밖으로 나갔다. 의심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계속 그 남자가 나간 현관 밖을 주시하며 우리 집 문을 열었다.
‘똑, 똑, 똑’
집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던 중, 아침에 주웠던 편지 봉투를 발견했다. 아차 싶어 얼른 봉투를 들고 104호의 문을 두드렸다. 괜히 남의 편지를 오래 들고 있어 봐야 좋을 건 없기에 얼른 건네주고 싶었다. 두어 번 더 노크하고 기다려도 아무런 인기척이 없다. 늘 노크를 하면, 바로 나오는 사람이 없다. 답답한 마음에 몸을 돌리니 102호의 현관문이 보였다.
‘아, 저 집일 수도 있겠다.’
문득 든 생각에 곧장, 102호의 현관 벨을 눌렀다. 탈칵거리는 플라스틱 소리와 함께 경쾌한 새소리가 들린다.
“누구세요?”
벨 소리가 들리고, 곧바로 굵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옆집 103호에 사는 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벌컥, 문이 열린다. 활짝 열린 문으로 편안한 옷차림의 남자가 멀뚱멀뚱 쳐다보고 서 있다.
“네?”
“여기 바닥에 편지가 떨어져 있던데, 확인 한 번 해보시라고요.”
102호의 남자는 봉투를 받자마자 거침없이 편지를 꺼내 읽는다. 활짝 열린 문으로 집안이 훤히 보이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아주 잠시 편지를 훑어본 남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 건 아닌데요?”
“아, 예…….”
편지와 봉투를 되돌려 주곤 고개를 까딱이더니 현관문을 닫았다. 어색하게 꾸벅 인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고개를 돌렸다. 104호의 문이 조금 열려있고 그 틈으로 밖을 살피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림자는 3회로 나뉘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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