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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맹 Jan 30. 2017

그림자 #3

목적은 내가 아니었다.

놀란 듯 얼른 문을 닫으려 했기에 빠르게 말부터 건넸다.

“안녕하세요? 저기, 103호에 사는 사람인데요.”

말을 건넸지만, 야속하게도 문은 빠르게 닫혔다. 일단 사람이 있으니 말이라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에 현관문에 대고 남은 말을 뱉었다.

“저 옆집에 사는 사람인데요. 바닥에 편지가 떨어져 있어서요. 한 번 확인해보시라고요.”

말을 끝내고 잠시 기다리니 조심스럽게 작은 틈이 다시 생겼다. 그 틈으로 보이는 여자는 눈을 크게 뜨고 나를 위아래로 슬쩍 훑어본다. 경계하는 듯한 모습에 얼른 편지를 들어 보였다. 편지를 건네받은 여자는 빠르게 봉투를 열어 내용을 확인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읽기 시작한 여자는 곧, 미간은 빠르게 찌푸렸다. 슬쩍 고개를 아래로 내렸더니 문틈으로 커다란 등산화가 보인다. 가만 자세히 보니 깨끗한 안전화 같기도 하다. 여자가 신기엔 너무 크고 투박해 보인다.

“여기요.”

잠시 안전화를 바라보고 있는 사이 편지를 다 읽었는지, 여자는 다시 편지와 봉투를 내밀었다.

“제 건 아니에요.”

여전히 미간을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말한 여자는 잠시 목을 쭉 빼고 현관 밖을 둘러본다. 주변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자 얼른 문을 닫았다.

‘철컥, 철컥, 철컥.’

현관문이 닫히자 곧바로 문을 잠그는지 요란한 쇳소리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렸다.



*

“어제 처리하던 건 다 끝냈어요?”

“네, 지금 거의 다 끝냈는데, 마지막이 좀 걸리네요. 이것 좀 봐주세요.”

선임의 목소리에 모니터를 가리키며 얘기하자 선임은 다가와 모니터를 훑어본다. 씽긋 웃으며 손을 뻗어 내 키보드와 마우스를 가로챘다.

“여기를 이렇게 바꾸고, 이런 식으로 마무리하면 돼요.”

별일 아니라는 듯, 아주 능숙하게 수정하고는 내 얼굴을 바라본다.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요?”

“네?”

툭, 가볍게 물어오는 선임에게 되물으니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피부도 푸석푸석해진 거 같고, 눈도 퀭하고, 무슨 일 있어요?”

“아……. 요즘 잠을 잘 못 자서요.”

어색하게 웃으며 얘기하니 선임은 표정을 굳혔다.

“큰일이 있는 건 아니죠?”

“예. 그게……. 이사한 뒤로 좀 이상한 일들이 있어서요. 늦은 밤만 되면 노크 소리도 들리고요. 손잡이를 붙잡고 흔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내겐 무거운 고민이었지만, 최대한 가볍게 뱉어냈다. 굳었던 선임의 표정이 살며시 풀린다.

“아, 지금 사는 데가 번화가 근처라고 했죠? 술 취한 사람들이 자주 지나다니나 보네요. 뭐, 남자가 사는 집에 별일 있겠어요? 문단속만 잘하면 되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요.”

“그렇겠죠?”

“그럼요. 이거 한 번 더 확인하고 프린트해서 가져다줘요.”

무슨 해결책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걱정을 나누면 조금은 가벼워질까 싶었다. 그러나 너무 가볍게 옆으로 치워진 느낌은 여전히 무거운 고민을 짊어져야 하는 나에게서 힘을 뺏어가기 충분했다.



*

피로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털썩 누웠다. 이불을 목 끝까지 덮고 차분히 잠에 들기를 바란다. 고요한 방안, '오늘도 노크 소리가 들릴까?' 짧은 시간 스쳐 간 생각에 졸리던 두 눈은 점점 또렷해지고, 귀는 예민해져 간다.

‘또각, 또각.’

고요해진 밤공기 아래로 예민해진 청각은 아주 작고 날카로운 구두 소리를 잡아냈다. 멀리서 들리던 발소리는 점차 커지더니 뚝 끊긴다. 갑작스러운 정적에 내쉬던 숨마저 참고 기다렸지만, 노크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가득 찬 숨을 내뱉으며 몸을 뒤척여 베개 옆에 누워있는 전화기를 들었다.

‘11시 46분.’

곧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 아직 노크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대충 이때쯤 들렸던 것 같은데, 확실히 모르겠다. 별일 아닐 거라 마음을 다독이며 편히 누워 조심스레 두 눈을 감았다.

“야, 뭐가 보이냐? 어?”

겨우 잠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즈음, 창밖이 어수선하다. 답답함에 조금 열어둔 창틈으로 골목길을 지나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어온 줄만 알았다.

“어두워서 잘 안 보여. 잠시만 있어 봐.”

작게 속삭이는 또렷한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 들린다. 찜찜한 기분에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보는 순간, 밝은 빛줄기가 두 눈을 가렸다.

“야, 뭐야. 남자잖아? 아씨.”

짜증 섞인 목소리가 들리고 불빛은 사라졌다. 잔뜩 얼굴을 구기며 부신 눈을 달래고 나니 창밖은 조용해졌다. 얼른 일어나 창문과 방충망을 활짝 열어 창밖을 살폈다. 좁은 골목을 막 벗어나던 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두 남자는 씽긋, 웃어 보이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왜?’ 머릿속으로 짧은 물음이 강하게 새겨졌다.



*

여유로운 퇴근길, 부스럭거리는 비닐봉지 소리를 내며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는 전봇대와 가로등 불빛을 따라 걷다 보니 마지막 전봇대가 저기 보인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전봇대 아래가 거슬린다. '뭘까?' 싶어 살펴보니 똑같은 종류의 담배꽁초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흩어져 있던 꽁초들을 모으니 반 갑은 족히 될 듯, 수북하게 쌓였다.

‘쓰레기통에 좀 버리지…….’

조금은 짜증이 나지만, 딱히 뭐라 할 사람도, 방법도 없기에 한숨을 푹 내쉬며 집으로 들어갔다.



*

자연스럽게 잠긴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서다 멈칫, 온몸이 굳었다. 불이 켜져 있다. 놀란 마음에 얼른 신발을 벗고 집안을 둘러본다. 딱히 훔쳐갈 것은 없었기에 크게 걱정은 안 됐지만,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들어왔다 나간 건 아닌지 신경 쓰였다.

다행히 이리저리 살펴봐도 방안엔 손 덴 흔적이 없었다. 한시름 놓은 마음으로 꽉 닫힌 창문을 열어 골목을 살핀다. 딱히 눈에 띄는 특별한 건 없다.


긴장이 풀려 침대에 털썩 주저앉아 한숨을 길게 내뱉는다. 집 밖에서 쌓인 피로를 집안에서도 풀지 못하니 점점 몸이 망가지는 것 같다. 다들 이렇게 불안하고 힘겹게 사는 걸까. 흐르지 못하고 쌓여가는 새까만 감정들에 가슴이 답답해질 즈음, 열어뒀던 창문으로 차가운 바람이 훅, 불어 들어왔다. 잠시나마 찬바람을 쐬니 조금은 속이 시원해지는 것도 같다. 

‘저벅, 저벅.’

잠깐의 평온은 어디선가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에 움츠러든다. 얼른 일어나 창문부터 꽉 닫았다.



*

‘쾅! 쾅! 쾅!’

샤워를 끝내고 옷을 다 입은 채,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고 있었다. 상쾌하게 마실 맥주를 생각하며 기분 좋게 방안으로 돌아오자 기다렸다는 듯, 현관문이 요란하게 울부짖었다. 깜짝 놀라 그대로 멈춰 서선 현관문을 바라만 본다.

‘쾅! 쾅! 쾅!’

“현경아……. 미안해. 문 좀 열어봐. 보고 싶어…….”

문을 부술 듯 두드리는 소리와 가득 울음을 머금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안타깝게도 애타게 찾는 사람은 내가 아니기에 큰 소리로 얘기했다.

“그런 사람, 여기 안 살아요.”

‘쾅! 쾅! 쾅!’

내 말을 듣긴 한 건지, 얘기해도 계속 부정하듯 문을 두드린다.

‘철컥, 철컥.’

잘못 찾아왔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문을 열었다. 이전에 달았던 안전 고리는 5cm 남짓한 틈을 만들었고, 그 틈새로 내 얼굴을 보였다. 문 앞에 바싹 붙어 서 있던 남자는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눈물이 글썽한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굉장히 놀란 듯, 굳은 얼굴로 두 눈만 뻐끔거리는 남자의 모습에 나도 당황스러워 뭐라고 말을 해야 할까. 잠시 고민된다.


“안에 현경이 있죠? 잠시만 보게 해주세요.”

물기를 머금은 얼굴은 점차 일그러졌고 애처롭게 말을 꺼냈다.

“아뇨. 그런 사람 여기 안 살아요. 잘못 찾아오셨어요.”

얼른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달래듯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아니……. 제가 남자친군데요. 아니 헤어지긴 했는데. 잠시만, 잠시만 보고 갈게요.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래요. 너무…….”

남자는 좁은 문틈을 붙잡고는 내가 건넨 말은 받지도 않고, 애처롭게 매달리기 바쁘다. 문틈으로 흘러들어오던 술 냄새에 슬슬 머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어떻게 달래서 보내야 할까.

“아니. 진짜 안 살아요. 저 혼자 산다고요.”

답답함을 조금 섞어 말했다. 이제야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남자의 울먹이며 일그러졌던 표정이 확, 변했다. 이제 됐겠지 싶어 얼른 문을 닫으려 하자 갑자기 언성을 높인다.

“아이, 씨X. 좀 보여 달라니까! 내가 뭐 어쩐대? 좀 보여 달라니까! 잠깐만 좀 보자고.”

자신의 요구가 묵살 됐다고 생각하는 걸까. 갑자기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문을 뜯고 들어오려는 듯, 문 틈새로 양손을 집어넣더니 힘을 쓴다. 그 모습에 놀란 나도 현관문 손잡이를 꽉 붙잡고 외쳤다.

“계속 이러시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아, 그래. 해! 해볼 수 있으면 하든지! 경찰에 신고하든 뭘 하든 좀 보자고. 현경이 좀 보여 달라고. 걔가 네 꺼냐고, 내 꺼라고!"

남자는 한동안 실랑이를 벌려도 마음먹은 대로 안 되니 씩씩거리며 문에서 떨어졌다. 더는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아 냉큼 문을 닫고 걸어 잠갔다.


‘쿵! 쿵! 쿵! 쿵!’ 문을 발로 차는 건지, 주먹으로 치는 건지 둔탁한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얼른 전화기를 찾아들어 112라는 숫자를 새겼다. 어디선가 지켜보고 있었는지, 그 순간 쿵쿵거리는 소리가 멈췄다.

‘갔나?’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이 개새끼들아! 니들이 얼마나 잘 사나 두고 보자. 이 새끼야!”

잠시 멈춰서 현관문을 바라보고 서 있자, 남자는 마지막으로 악다구니를 쓰고 사라졌는지 겨우 조용해졌다. 짜증은 솟구치는데, 어떻게 할 수 없다. 한숨을 내쉬며 곱씹을수록 짜증이 단물처럼 배어 나온다.


방안으로 돌아와 침대에 털썩 무너졌고 훅, 한숨이 새어 나온다. 무기력하게 고개를 들어 멍하니 앞을 바라본다. 책상 위엔 이미 다 식어버린 맥주 캔과 집 앞에서 주웠던 편지 봉투가 놓여 있었다.


“쾅! 쾅! 쾅!”

잠깐의 고요는 또다시 깨졌다. 다시 현관문은 괴성을 지르고, 복도에선 악다구니가 울려 퍼진다. 더는 어떻게 해볼 힘도,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내려뒀던 전화기를 들어 경찰서로 전화를 걸었다. 몇 번 울리는 통화 연결음이 왜 이렇게 긴지 모르겠다. 답답한 마음이 조급해지려는 생각하는 순간 아주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네. 112 경찰입니다.”



*

전화를 끊고도 문밖은 요란하다. 이러다 문이 부서지는 건 아닐까 걱정되기 시작할 즈음, 소리는 잦아들었다.

‘똑, 똑, 똑.’

“경찰입니다. 잠시 문 좀 열어주십시오.”

꽉 막힌 숨통을 틔워주는 목소리가 들렸다. 경찰은 생각보다 빨리 도착했고, 술 취한 남자를 문에서 떼어놓았다. 얼른 문을 활짝 열어 경찰을 반겼다. 현관 밖에는 경찰 한 분이 수첩을 꺼내 들고 있고, 건물 밖 전봇대 쪽엔 술 취한 남자와 두 명의 경찰이 서 있다. 

“저분 아는 사람이에요?”

“아뇨.”

“그럼 현경이란 분 아세요?”

“아뇨.”

“흠……. 술 취해서 잘못 찾아온 것 같은데, 그냥 봐주시죠?”

경찰에게 집안까지 보여주며 성실히 물음에 응했다. 대강의 얘기를 들은 경찰은 '어차피 훈방조치 말곤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취객의 실수로 대충 마무리하려는 것 같다. 어색하게 웃어 보이며 몇 가지를 더 물어본 경찰은 술 취한 남자를 데리고 돌아갔다.



*

소란한 시간이 지나고 다시 차분해지자 무언가 공허한 느낌만 든다. 그 느낌 사이로 뭉툭한 물음들이 솟아났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그 남자에게 집안을 보여줬으면, 그냥 조용히 돌아갔을까. 차라리 그럴 걸 그랬나. 괜히 내가 문을 닫아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

멍한 머릿속으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떠오른다. 정말 아무 일도 없었을까. 생각의 끝에 도달하자 두 개의 미안함만 남았다. 나 때문에 이웃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 미안함과 경찰서에 끌려간 그 남자에 대한 미안함. 그러다 불쑥, 다른 생각이 머릿속을 가로막았다.

‘아니. 그런데 내가 왜 미안하지? 내가 뭘 잘못했지?’



*

‘똑, 똑, 똑.’

퇴근하고 들어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그놈의 노크 소리다. 어젯밤의 일이 겹쳐 떠올라 신경이 곤두섰다.

“저기요. 어젯밤엔 죄송했습니다.”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날카롭게 날이 선 신경은 뭉툭해졌지만, 여전히 예민하다. 무겁게 심호흡을 하며 안전 고리를 건 채, 문을 열었다. 문틈으로 보이는 어제의 그 남자는 여전히 붉은 얼굴을 하고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어제 소란 피워서 죄송합니다. 술을 많이 마셔서…….” 

“네. 괜찮습니다.”

그리 반가운 사람도 아니기에 떨떠름한 표정을 숨기지 않고 대답했다. 대답을 던지고 얼른 문을 닫으려고 하니, 좁혀지는 문틈으로 남자의 손바닥이 비집고 들어왔다.

“저. 잠시만요.”

문을 닫던 손을 잠시 멈추고 남자를 바라봤다.

“혹시, 전에 살던 사람,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

“아니요. 몰라요.”

“아니. 저기 잠시만요. 제가 너무 그립고 보고 싶어서. 해코지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다급한 남자의 말이 점점 길어진다. 문틈에 껴있는 손바닥 때문에 문을 닫지도 못한 채 묻지도 않은, 믿기지도 않는 대답을 고스란히 다 듣고 있다.

“진짜 몰라요. 여기 집 보러 왔을 때도 비어있었어요.”

“그럼 혹시 언제 이사 오셨어요?”

“이제 3주쯤 됐어요.”

하나둘 대답하다 보니 문 앞에 서 있던 남자가 손바닥을 슬쩍 뺐다. 내가 왜 이 사람에게 이런 얘기를 해야 하는 건지. 마지막 대답을 하곤 곧바로 문을 닫아버렸다. 다행히도 더 이상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

여느 날과 다르지 않은 깊은 밤이 되자,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가 창문 밖에서 흘러들어온다. 점점 커지던 소리는 뚝, 끊어지듯 사라졌다. 곧 현관문 밖에서 조금씩 다시 커진다. 문 앞까지 걸어왔다.

‘노크할까?’ 바짝 긴장한 채로 기다린다. 구두 소리는 무심하게 문 앞을 스쳐 지나갔고 곧 다른 집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한숨을 푹, 내뱉으며 잠시 긴장을 풀자, 누군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발소리는 빠르게 커졌고, 잔뜩 커진 발소리는 그대로 뚝 끊겼다. 전화기를 들어 시계를 확인하니 12시가 넘었다. 피곤한 눈을 몇 번 깜빡이고는 몸을 뒤척여 조금 더 편한 자세로 침대에 몸을 눕혔다.

'똑, 똑, 똑' 

노크 소리에 반사적으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앉았다.

‘잘못 들은 건 아니겠지?’ 조심스러운 생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향해 걸어간다. 한 번 더 노크 소리가 들리면 아무 말 없이 문을 확 열어 버려야겠다고 생각을 꼭꼭 씹으며 현관문 앞에 섰다. 마치 문 앞에 선 걸 아는 듯 묵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들어가시는 거 봤어요. 잠시만 문 좀 열어주세요."

'뭐지?' 머릿속에서 물음표가 가득 생겼다. 

‘쿵, 쿵, 쿵’

“잠시만요. 며칠 전부터 뵀는데. 제 맘에 들어서 그래요. 잠시…….”

내 얘기가 아니라는 확신이 들자, 문을 벌컥 열어 말을 끊어 버렸다. 말쑥하게 차려입은 남자는 움찔, 뒷걸음질 치더니 불쾌한 듯 잔뜩 미간을 찌푸렸다.

“어? 여기 여자 안 살아요? 방금 들어가던데?”

남자는 무슨 마술이라도 본 듯, 신기한 눈으로 말을 하지만, 시선은 방안을 향해 기웃거렸다.

“안 살아요.”

이를 한 번 꽉 물어 짜증을 삼키며 대답하고는 문을 '쾅' 세게 닫아버렸다.

“씨X, 아니면 아니지 왜 짜증이야.”

큰소리로 중얼거리는 현관문을 등지고 돌아서 불을 껐지만, 쉽게 침대에 누울 수는 없었다.

하루의 피로를 풀고, 편히 쉬어야 할 공간마저 사라진 지금의 상황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어디로 가야 할까? 다른 집으로 이사한다면, 과연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림자는 3회로 나뉘어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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