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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찬휘 Mar 13. 2023

나의 '연진이'들아, 너희는 왜 안 망하니?

서찬휘입니다.


저는 학폭, 다시 말해 학교 폭력 피해자입니다.


이 말을 하는 게 참 우습고 조심스러운 까닭이 몇 가지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학교폭력에 관해서 학창시절에 '있을 수 있는 일'이라며 관대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 뇌리에도 매우 만연해 있는 관념이 있거든요. 사회가 가르쳤고, 스스로들도 납득하고, 마치 경전처럼 받아들여지는 관념.


그건 바로 '때리지 못하면 당연히 맞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가 더 큰데, '당할 만 하니까'.


그래서 많은 경우 사회는 이렇게 가르칩니다.


"맞느니 때려라"

"공부라도 잘해라"

"나서지 말아라"


그래서 광고에서도 기껏 싸우고 왔다는 아들놈에게 훈계를 해놓고서는 "그래서 이겼냐?" 같은 소리나 하는 거지요.


그런데 이 말들은 교육 면에서 보자면 참 웃긴 이야기입니다. 이제서야 '아 그러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들이 드는 모양인데, 애초에 때리고 맞고가 성립하면 안 되는 거지 맞느니 때리면 안 되는 거죠. 잘 때릴 거 아니고 '학교 공부'를 잘할 거 아니면 당연히 밑에 깔리라는 사고도 웃긴 거고, 나서지 말라면서 어떻게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아이가 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학교 폭력의 문제는 다시 말해 가해자 개개인이 원래 개로 자랐다는 것과 더불어 총체적인 교육의 실패가 낳은 결과물입니다. 그걸 사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어요.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며 쉬쉬했을 뿐입니다. 모른 척 하지 마세요. 다 알고 있었답니다. 누구의 문제인지, 무엇의 문제인지, 그리고 누가 허용해준 폭력인지.


하긴 우리 때엔 선생들부터가 애들을 패 잡았잖아.

선생님들이 애를 못 패게 되니까 이제 반대가 되었을 뿐이지.

그러니까, 선생들이 사냥감에 추가되었을 뿐입니다.


이유가 뭘까요?

이럴 때에도 통하는 <송곳>의 명대사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래도 되니까"


그 결과가 이겁니다.

이제야 그나마 몇몇의 폭력 가해자가 유명해졌다가 나락으로 굴러떨어지고 있을 뿐이죠.

그것도 일부 유명세를 탄 사람에 한해서입니다. 떨어질 높이도 없는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 있습니다.

나의 연진이들은 망할 만한 인생조차 살지 않은 채 감히 살고 있는 것이지요.

심지어 망하지도 않고.


연진이들이 넘쳐나는 사회 속에서 언어는 딱 연진이만큼 더럽습니다. 연진이만큼 잘 사는 집안도 아닌 사람까지 포함해서 연진이가 되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자기처럼 되고 싶어하는 친구들을 수족처럼 부려가면서, 우리 연진이들은 학교에서 감히 살아 나온 후 사방을 연진이 천지로 만들고 삽니다.


학교에서 통용되던 언어는 사회에서도 고스란히 변용됩니다. 아수라장 같은 덧글을 보세요. 여러분. 제가 난임부부였는데요. 인터뷰를 했었답니다? 그 인터뷰 아래에 달린 덧글이 뭔지 아세요?


"지네 몸이 등신인데 국가더러 지원을 해달래고 지x이야?"


이제 이해가 되십니까?


이 아이들은 '정상성'을 설정했을 뿐이에요. 폭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자신을 놓고, 폭력을 받아 마땅한 '비정상'을 앞에 둔 거지요. 그래도 되는 대상이니 죄책감 하나 없이 저런 말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끊임없이 본인을 정상에 놓고 비정상을 설정하려고 합니다. 때론 종교, 때론 장애 여부, 때론 학력, 때론 부모의 재산과 사는 집. 끊임없이 그 분류를 계속하고, 징죄를 이어갑니다. 피해를 입지 않을 방법은 딱 둘인데요. 같이 패든지, 아닌 위치에 서서 묵인하든지. 그 외의 선택지는 없어요. 나는 안 당하니까 괜찮아 = 공범이니까. 요행히 서로가 다 안 그런 친구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지만, 그건 운인 것 같습니다. 저는 12년이라는 시간 전체가 다 지옥 같았거든요. 놀랍게도 초등학교에도 조폭은 있더이다. 고작 국민학생인데 상급생의 명령을 받는. 그런 애들이 있더군요. 그런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로 나와서 상대를 만나고 애를 까고 그 애가 자라서-를 대물림한다고 생각하시면 이 사회가 왜 이상하게 폭력을 못 참는 사회인가가 대충 짐작이 되실 겁니다.


이런 말을 굳이 늘어놓는 것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까닭은 이게 '일진 서사'에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입니다. 당장 웹툰들을 보시면 일진 서사에 푹 절어 있는 작품들이 왕왕 있습니다. 그걸 역으로 뒤집는 작품들도 종종 있지만 결국은 싸우란 이야기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죠. 조금 다르다고 하면 특수임무를 부여 받은 선생이 애를 조지는 거? 그것 말고는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일단 사람 취급을 안 하는 게 즐겁든지, 사람 취급을 못 받아야 조용해진다든지, 끼리가 아니면 선생이라도 나서서 사람 취급을 공히 안 하든지. 그런 속에서 학교 폭력을 경험했다고 이야기하면 많은 경우 사람들 머리에 무슨 생각이 떠오를 지도 뻔합니다.


"아~ 쟤 처맞았어?"


-따위 말이죠.


뭐 그런 겁니다. 재밌네요. 학창시절에 있었던 일들이 쭉 지나갑니다.

그런데 내가 뭘 잘못했을까요?

뭘 어쨌으면 폭력을 안 당했을까요?

아냐. 내가 나인 이상 뭘 해도 당했을 테지요.

나 같이 집단의 균질성을 채우지 못하는 부류는 어떻게 해도 되는 대상이니까.

그런데,

내가 뭘 잘못했을까요?

학교란 공간에 특화하지 못한 죄?


안타깝게도 나는 내 공부를 내가 찾아서 할 수 없는 공간과는 어울리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너무 좋았죠. 비로소 처음으로 공부를 만끽했거든요.

그런데 이런 사람도 있답니다. 많을 거예요.

자기가 부모와 학교와 급우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다고 생각할 뿐이지.


그럼에도 맞았으면 일단 맞은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죠?

연진이가 여기도 있습니다.


폭력은 가해자만 지극히 유리합니다. 어느 격투가였나가 한 말인데(기억은 안 납니다) 사람이 사람 패는 게 어렵답니다. 보통은 그러려는 마음 먹는 것 자체가 어렵대요. 그러니까 직업으로서 서로 존중하고 실행하는 스포츠가 아닌 이상은, 사람이 사람을 때리는 건 쉽사리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겁니다. 전쟁통이 아닌 이상은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마음 속이 전쟁통이 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거고, 그 시작은 학교라는 거죠. 가해자만 지극히 유리한 무대 위에서 먹이가 된 수많은 아이들의 삶은, 대체 어떻게 보듬을 수 있단 말인가요.


그 하나하나가 동은이처럼 할 수도 없는데.

동은이처럼 인생을 다 걸어 지옥을 만들기엔 살기에 급급한데 말이죠.


드라마 <더 글로리>가 그나마 '웰메이드'로 '성공'함으로써(감독의 학폭 전력까지 포함해) 경각심을 불어넣게 된 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그나마 조금이라도 아이들이 하겠죠. 음습한 친구들은 그 와중에도 나는 연진이 정도는 아니지만 너는 괴롭힘 당해도 되니까 일단 좀 숨어서 맞자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세상은 조금은 이런 계기로 조금은 나아지겠지요. 여전히 이런 세태 속에서도 반성이 안 되는 분들은 많겠고, 직접 안 때렸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폭력 앞에서는 침묵한 자들 모두가 동조자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미 몇은 여러분이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였어요.

축하해요. 살인자 여러분!

나이가 먹어서도 여전히 어떠한 형태로든 남을 괴롭히거나 동조하고 있겠지요!

사장으로든, 직장인으로든, 송사로 드잡이를 하든, 그도저도 아니면 덧글로 연예인이나 괴롭히든, 아무에게나 어디서 태어났다는 이유로 멸칭을 붙이거나 일베 출신 정치인을 지지하든!


피해자로서의 나는 구차하게, 겁먹고 자살을 못했는데,

복수조차 못했을 뿐이고. 아 슬퍼라.


졸업한 지 시간이 이렇게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학폭 이슈가 대두되는 걸 보면 형태만 달라졌지 속들은 비슷한 모양이지만. 연진이 급으로 잘 사는 집안이 아니라도 몹시도 평범한 악들이 많다는 것, 그리고 연진이쯤 되는 순수악만이 아니라 숱한 사람들은 끝없이 자기를 '정상'이라 규정하고 싶어하는 두려움의 역작용을 폭력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것. 연진이는 좀 그냥 커피가 아니라 TOP긴 하던데 말이죠. 어쨌든 많은 경우 겁쟁이들이 태반입니다. 그들의 폭력이, 피해자들을 계속해서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있어야 유지되는 사회죠.

피해자는 피해자스러워야 하고.

피해자가 목소리를 내려면 묻으려 하고.


그런 사람들 많~습니다.

다 연결돼 있습니다.

국가 구성원은 결국 학교를 나오거든요.

학교 폭력 문제는 결국 국가적 폭력 문제이고,

심지어는 정권의 질에 따라서 국가의 폭력이 되기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당시 국가는 책임을 안 지려 들고

일베 친구들은 쪼르르 달려와서 유족들을 모독했습니다.

작동 방식이 학교폭력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다 결국 하던 짓들이에요. 


그래서 이 문제는 결국 '이 꼴을 허락할 거냐'로 귀결됩니다.

사회 평균이 처참해지면 결국 사람이 죽습니다. 그리고 억울해할 권리도 허락 받지 못합니다.


우리 세대는 결국 거기에서 머물렀지만. 다음 세대에게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과거의 학교 폭력 피해자지만, 이제 폭력에 취한 친구들이 그러면 안 된다 / 그러다 너 인생 망한다는 메시지가 좀 명확해지길 바랍니다. 정부가 못하니 드라마가 그 역할을 해 주는구나 싶긴 한데, 그렇습니다. 그러나 폭력이 꼭 패고 지지고 하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면 좋겠네요.


그래도 요즘 같은 때엔 위안은 되네요. 김은숙 작가 딸도 그랬다죠. 죽도록 맞고 오는 것과 죽도록 패고 오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마음 아플 거냐고? 차라리 저는 제가 처맞고 살았던 게 다행이라는 생각은 듭니다. 사람인지라 누구 때릴 생각은 못했거든요.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때릴 생각이나, 행여나 누굴 때리기 위해서 뭘 해 봐야겠다는 생각은 못했거든요. 사람인지라 그렇습니다. 사람 아닌 것들이 좀 많았던 거죠. 네. 당할 만하니까가 어딨겠어요. 뭘 어떻게 하면 제가 안 맞았겠어요. 연진이도 그러죠. 쟤 없었으면 네가 맞았을 거라고.


"너 왜 맞고 사냐"라는 반응이 튀어나오시는 분들은 사람이시길 거부하신 거고요.

네. 이젠 그런 시대가 그나마 된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히.




***



재밌게도 저는 지금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강의 평가 막 깎일 거 그냥 감안하고 꼭 중간중간에 이야기해주는 게 사회적 차별이나 정치가 만드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이번 학기엔 대놓고 PC에 대한 관점과 일진 서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이런 걸 이야기해주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대학생쯤 되어 다시 돌아보시면, 고등학교 때 이래저래 까불던 여러분들의 삶이 아무 것도 아니란 걸 곧바로 체감하게 되는데 그래서 허겁지겁 다음 타겟을 찾으려 애쓰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게 사람의 길은 아니다. 남에게 선사하던 지옥을 확장하지 마라. 뭐 그런 이야기들을 해 줘요. 그걸 정당화하는 서사를 반복해 만드는 작가들 이야기도 해 주죠. 끔찍하다고.


그나저나 얼마 전 어머니와 대화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했죠. 12년에 유치원까지 포함해 저는 정말 학교가 싫었어요. 하란 대로 해야만 하는 그 공간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어머니가 뚝하니 물으십니다. 그런데 왜 선생을 해?


그러게요. 그런 놈이 선생질을 합니다. 재밌게도 제가 알고 느낀 걸 가르치는 행위는 참 좋아하더라고요. 여기까지 쌓는 게 쉽진 않았지만요. 그런데…… 문득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하나는, 학교란 공간에서 내가 받지 못했던 시선을 건네는 역할을 하고 싶지 않았나 하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 이게 좀 큰데. 적어도 대학교 선생은 안전합니다. 물론 강의 평가를 조질 가능성은 있지만요. 애들이 익명으로 별 소리를 다 하긴 하거든요. 그래도 뭐. 그 정도는 귀엽지. 어차피 그런 사람들이야 자기 인생 자기가 조지겠다는데.


참 신기하게도 선생 노릇이 체질이긴 하더군요. 그래도 저의 방식이 어떤 친구들에겐 위안이 되길 바랄 따름이에요. 폭력에 복무하면 안 된다고, 끊임없이 말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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