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함처럼 보이지만 좋아함이 아닌 것들

언어는 인생의 이정표다

by 자민
좋아, 그렇게 하자.
좋아, 내가 해줄게.
나는 이게 좋아.
좋아, 그 정도 선에서 맞추자.
좋아, 문제없어.
오늘 컨디션 좋아.
나는 이 분위기가 좋아.
좋아, 그렇게 해도 돼.


승인, 수락, 평가, 선택, 허용, 결심.

우리는 이 많은 반응을 모두 “좋다”라는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영어에서는 서로 다른 말로 나뉠 상황들이 한국어에서는 하나의 단어로 묶인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 때문일까? 한국어의 “좋다”는 묘하다. 그래서 “좋다”는 단순한 감정어라기보다 동의와 승인, 수락과 평가가 함께 들어 있는 생활 언어에 가깝다. 특히 이 말은 취향을 고백하는 표현이라기보다, 관계를 어떻게 이어갈지에 대한 반응으로 더 자주 쓰인다. 나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기보다 관계를 무리 없이 끌고 가려는 태도까지 담고 있기 때문이다.








언어는 삶의 이정표 역할을 한다.

같은 일을 겪어도 그것을 어떤 단어로 정리하느냐에 따라 경험의 의미는 달라진다. 어떤 사람은 실패라고 부르는 것을 어떤 사람은 과정이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은 상처라고 말하는 것을 어떤 사람은 배움이라고 말한다. 경험 자체는 비슷한 결일 수 있지만 그것을 해석하는 언어가 달라지는 순간 삶의 방향도 함께 달라진다.


삶의 문제 역시 그렇다. 어떤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없어서 풀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잘못된 질문을 붙들고 있기 때문에 더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가 지금 겪는 감정은 정말 슬픔일까, 아니면 상실감일까. 내가 원하는 것은 정말 사랑일까, 아니면 인정일까. 내가 힘든 이유는 일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내가 나를 몰아붙이고 있기 때문일까. 질문이 정확하지 않으면 답도 정확해질 수 없다. 결국 삶을 이해하고 풀어 가는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현실을 어떤 언어로 바라보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언어를 제대로 사용하는 일은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는 모국어를 사전적 의미보다 생활 속 맥락으로 먼저 익힌다. 분위기와 반복되는 뉘앙스를 통해 뜻을 짐작하며 배우기 때문에, 익숙한 단어일수록 안다고 믿은 채 지나쳐 버리기 쉽다. 오히려 외국어를 배울 때 그 단어의 정확한 뜻과 쓰임을 더 또렷하게 구분하게 된다. 익숙한 모국어는 이미 알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오히려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쓰지만 한 번쯤 의미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단어를 분석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중 하나가 “좋아하다”라는 말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좋아한다고 쉽게 말한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아하다”라는 말은 생각보다 단순하지 않다. 내 마음이 가벼워지는 방향을 통틀어 “좋아한다”라고 표현하지만, 그 안에는 애정, 결핍, 안도감, 인정받고 싶은 욕구처럼 서로 다른 마음이 함께 들어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이것들을 구분하지 않을 때, 우리는 자기 마음을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는 점이다.


물론 언어는 언제나 현실을 단순화한다.

문제는 그 단순화가 자기 이해를 흐릴 때다. 내가 왜 그것에 끌리는지도 모른 채 좋아한다고 말하면, 우리는 선택의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인생의 중요한 방향을 정하게 된다. 그래서 “좋아하다”라는 단어는 가볍게 보이지만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삶의 선택을 설명하는 데 자주 등장하는 만큼, 더 면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첫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필요한 경우가 있다.

좋아함은 대상 그 자체를 향하지만, 필요는 내가 결핍된 것을 채워주는 기능을 향한다. 그래서 외로운 시기에는 다정한 사람에게, 미래가 불안할 때는 안정적인 직업에, 자신감이 없을 때는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에게 강하게 끌리기도 한다.


필요가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인간은 누구나 필요를 가진 존재이고, 필요는 관계를 만들고 삶을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힘이다. 다만 그것을 좋아함으로 오해하면, 대상 자체보다 그것이 내게 제공하는 감정적 기능에 더 의존하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 자체였을까, 아니면 그 사람이 채워 준 나의 결핍이었을까.


둘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안도감인 경우가 있다.

우리는 긴장이나 결핍이 해소될 때 느끼는 편안함을 종종 좋아함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안도감은 위협이 멈춘 상태에서 오는 평온이지, 반드시 애정이나 취향은 아니다.


힘든 시기에 만난 사람에게 깊이 끌렸지만 사실은 그 사람 앞에서 잠시 편해질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 바쁜 삶 속에서 아무 생각 안 하게 해 주는 일을 좋아하는 취미로 여겼지만, 사실은 회피의 통로였을 수도 있다. 불안한 시기 끝에 얻게 된 것을 지나치게 내가 원하던 것이라고 믿게 되는 일도 있다.


안도감은 삶에 꼭 필요한 감정이다. 그러나 그것을 좋아함과 같은 말로 부르면 우리는 평온을 애정이라 부르고, 해방감을 취향이라 부르며 살아가게 된다. 그래서 무엇을 좋아하는지보다, 무엇이 나를 불안하지 않게 만드는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셋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타인의 시선인 경우가 있다.

우리는 취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인정과 이미지가 깊게 개입된 경우가 많다. 내가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들은 종종 내가 어떤 세계에 속하고 싶고, 어떤 사람으로 보이길 원하는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남들이 세련됐다고 하는 것을 따라 좋아하게 되기도 하고, 어떤 사람 자체보다 그 사람과 함께 있을 때의 내 이미지를 좋아했던 적도 있다. 내가 좋아하는 직업, 장소, 브랜드 역시 내가 속하고 싶은 세계를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이 모두 거짓이라는 뜻은 아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다만 자기 취향을 더 정확히 알고 싶다면 한 번쯤은 물어봐야 한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나는 이것을 여전히 좋아할까.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것을 선택할까. 그 질문 앞에 남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조금 더 순도 높은 좋아함에 가깝다.


넷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익숙한 경우가 있다.

사람은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익숙한 것에 쉽게 끌린다. 하지만 익숙함이 곧 진짜 좋아함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늘 비슷한 유형의 관계를 반복한다. 상처받는 방식도, 끌리는 유형도 비슷하다. 그것을 취향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좋아서가 아니라 익숙해서일 수 있다. 익숙함은 예측 가능하다는 이유로 사람을 붙잡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낯설지만 건강한 관계보다, 익숙하지만 불편한 관계를 더 편하게 느끼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자꾸 끌리는 것이 정말 내 본성에 맞는 것인지, 아니면 오래 반복해 온 감정의 동선 때문인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다. 오래 겪어 왔다는 이유로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이,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섯째,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욕망인 경우가 있다.

좋아함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향하는 감정이지만, 욕망은 대상을 통해 내가 달라지고 싶어 하는 마음과 더 가깝다.


저 사람을 좋아한다기보다 저 사람과 함께하는 삶을 원할 수도 있다. 그 물건을 좋아하기보다 그것이 상징하는 정체성을 원할 수도 있고, 그 일을 좋아하기보다 그 일이 주는 인정과 성취를 원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렇듯 좋아함은 대상을 향하지만, 욕망은 대상을 통해 완성되고 싶어 하는 나를 향한다.


욕망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욕망은 인간을 전진하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다만 욕망을 좋아함이라고 부를 때 우리는 대상보다, 그것을 통해 달라지고 싶어 하는 자신을 붙들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내가 대상 그 자체를 향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것을 통해 달라질 나를 향하고 있는지 구분해 보는 일이다.





그렇다면 “좋아한다”는 감정은 무엇일까.

하나의 단정적인 정의로 내리기는 어렵다. 다만 진정성으로 다가갈 몇 가지 단서는 있다.

필요가 조금 줄어도 변하지 않는 마음,

타인의 시선이 사라져도 남아 있는 마음,

익숙하지 않아도 자꾸 향하게 되는 마음,

소유하지 못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마음.

좋아한다는 감정은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다. 극적이지도, 과장되어 있지도 않다. 오히려 조건이 사라져도 이상하게 남아 있고, 대가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향하는 마음에 더 가깝다.


나에게 이익이 되어 주기 때문도 아니고, 남들에게 멋있어 보이기 때문도 아니다. 아무런 보상이 없어도 내 마음이 채워지고,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해도 자꾸 그쪽으로 향하게 되는 마음.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오래 놓치고 살았던, 조금 더 순수한 의미의 좋아함일지도 모른다.








언어는 삶의 이정표다. 그래서 내가 자주 쓰는 단어를 다시 정리해 보는 일은 결국 내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과 같다. 자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감정을 화려하게 표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 더 정확한 이름을 붙일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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