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 Collins 콘서트를 보기 위해 미국으로

California, USA, 2018

by 자민

미국 여행의 목적은 필 콜린스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콘서트 때문이었다.


콘서트 이름도 ‘Not Dead Yet.’

나는 옛날 팝송을 좋아한다. 올드 팝과 클래식 영화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절친이 하나 있는데, 그 친구의 권유로 콘서트 티켓을 끊고 미국에 가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LA 농구경기장에서 열린 그의 콘서트. 부모님 나이정도되어 보이는 중년의 어른들이 농구장을 가득 채웠다.


올드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콘서트는 미지의 세계 같았다. 좋아하는 가수들의 공연은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 속에 있었다. 그래서 나는 콘서트에 가본 적도 없고, 가볼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처음으로, 내돈내산 생애 첫 콘서트를 가게 된 것이다.

지팡이를 짚고 나와 의자에 앉는 필 콜린스.

무대에 뛰어오르거나 깜짝 등장으로 하는 콘서트와 달리 지팡이를 짚으며 천천히 걸어 나와 무대의 빈 의자에 앉는 인트로.

짧지만 뮤지션이 무대 위를 걸어 나오는 시간은 가장 긴 역사를 담은 순간일지도 모른다. 무대를 걸어 나오는 뮤지션과 좌석에 앉아있는 팬들도 모두 같은 감정이지 않았을까.


무대 위 짧은 걸음에는 지나온 세월이 있고, 수없이 불러온 노래가 있고, 젊음과 영광과 상실까지 함께 스며 있었다. 필 콜린스가 걸어 나오는 모습을 보며, 나는 한 사람이 자신의 과거 전체를 천천히 끌고 무대 위로 들어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관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객석에 앉은 사람들도 그의 음악과 함께 지나온 자기 인생의 어떤 장면들과 함께 했을 것이다. 그의 노래를 처음 들었던 날, 사랑하던 사람, 외로웠던 밤, 견뎌냈던 계절들. 그가 천천히 걸어 나오는 동안 관객들 역시 마음속에서 각자의 시간을 모두 꺼냈을 것이다.


필 콜린스가 의자에 앉기까지의 그 몇 걸음은 단순한 입장이 아니라, 음악과 삶이 다시 만나는 아주 조용하고도 긴 도입부였다.




지팡이를 짚을 때까지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건 어떤 감정일까. 내 꿈이 바로 그건데…

정년 걱정 없이 내 몸이 다할 때까지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내겐 성공의 기준이었다.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그의 무대는 꾸밈이 없었고 과장도 없었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에 어떤 아쉬움이나 특별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았다. 흘러가는 하루 중 오늘이라는 순간에 충분히 젖어 있을 뿐.


아, 시간의 흐름을 보여준 건 지팡이 말고도 하나가 더 있었다. 아들 닉 콜린스와의 합주. 아들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멋진 드러머가 되었다. 힘찬 아들의 드러밍이 아버지의 지난 시절을 응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버지의 끝나지 않을 음악여정을 응원하는 거 같기도 했다. 분명히 아버지와 아들의 드럼은 다른 결이었겠지만 전해지는 감동은 온전했다.


Against All Odds, 이 노래는 첫음절부터 가슴이 떨린다. 지나간 사람을 그리워하며 그 부재를 힘겹게 견디는 마음이 담겨 있다. 필 콜린스가 첫 이혼 시기의 경험과 맞닿아 쓴 곡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이 노래의 애잔함에 한층 감정이입이 된다.


그리고 그날, 내게 가장 깊게 남은 것은 노래의 마지막 가사였다. 노래의 마지막 가사는 이렇다.

You’re the only one who really knew me at all.


우리는 나를 알아봐 준 존재를 쉽게 잊지 못한다. 그게 헤어진 연인이라면 그 그리움은 오래갈지도 모른다. 그 대상이 꼭 사람이 아니어도 그렇다. 내가 나로서 존재하게 한 시간, 공간, 나를 발견하게 해 준 그 무엇이든지.

그것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는 단순히 애틋해서가 아니다. 이전에는 몰랐던 나를 보게 만든 경험은 기억 속에서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그것은 기억을 넘어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움은 대상 자체를 향한 감정이라기보다, 그 관계를 통해 내 안에 형성된 감정의 흔적이다.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사랑받는 법을 배우고, 상실을 견디는 법을 배우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발견했다. 그러나 관계가 끝난 뒤 표면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성장의 흔적이 아니라 상실의 감각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에만 집중한 채, 그 경험이 내게 남긴 변화와 확장을 늦게야 알아차리게 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것들의 존재의 이유는 결국 나 자신을 발견하기 위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걸 깨닫는 순간 나는 외로움이라는 감정에서 자유로워졌다. 누군가가 있어야만 내가 완성된다는 생각, 사람에 의존하여 이 사람이 없으면 안 된다는 논리가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삶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경험의 의미도 조금 다르게 보였다. 우리는 누군가를 붙잡기 위해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만남과 상실을 통해 결국 자신을 더 깊이 발견해 가는 것이다.







LA에서 시작하여 Monument Valley까지 로드트립을 하면서 돌아오는 길에 라스베이거스에 들렀다. 크고 작은 공연들이 항상 있는 곳이라 현장 예매로 보기로 했다.


그렇게 보게 된 공연은 Back Street Boys!

LA다저스 시절의 류현진, 야구 경기도 중계중이었다.

라스베이거스에는 흥이 나는 것들이 많았다. 화려한 네온사인은 콘서트를 기다리는 우리의 마음에 애피타이저가 되어주었다.

알코올이 들어간 슬러시.

거리에서 알코올 섭취가 가능한 주라고 해서 딱히 마실 생각도 없는데 특권을 누려야 한다는 희소가치가 불필요한 소비를 부추겼다.


백스트리트보이즈 관객은 내 나이 또래였다. 나이듦이 아름다워지는 순간이었다. 누가 앞서고 뒤서고 할거 없이 같은 속도로 함께 세상을 살고 있었다.


살짝 배가 나온 멤버들도, 머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한 팬들도.

변해버린 외형은 나이듦의 서글픔이 아니라 돈 주고도 쉽게 살 수 없는 인연의 가치를 보여주는 하나의 징표 같았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시간을 견디며 살아왔고, 그 시간은 몸에 흔적을 남겼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흔적들은 슬픔보다 다정함에 가까워 보였다. 같은 노래를 기억한다는 것, 같은 시절을 지나왔다는 것,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문화를 여전히 마음에 품고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깊은 연결감을 만들어냈다. 그날 공연장에서 보인 것은 늙어버린 몸이 아니라, 오랜 시간 끝에도 사라지지 않은 감정의 연속성이었다. 각자의 지난 시간을 꺼낼 용기를 줬고, 서로를 위로해 주는 에너지로 가득한 공연이었다.


문화라는 건 그 시대의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간 흔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나를 이해하고 위로하고 깨닫게 했는지.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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