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으러 식당에 가면서 읽던 소설책을 가져갔다. 빨간치마를 입은 아이라니. 경망한 제목에 표지까지 빨간색이다. 주문을 하고 밥이 나오는 동안 책을 마저 읽는데 순대국밥을 내오던 아르바이트 학생이 표지를 힐끗 쳐다보는 것 같았다. 무언가 가벼운 농이라도 할까 하다가 더 민망해질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마침 식당은 한산했다. 꽤 오랜 걸음을 걸어 식당에 갔던 나는 다 먹지 못할 줄 알면서도 세트메뉴를 시켰다. 소주를 곁들여 순대와 부속고기를 먼저 먹은 후 뜨거운 국밥을 후후 불어가며 식사를 했다. 이어폰으로는 열시간짜리 빌 에반스의 피아노 연주가 계속 흘러나왔다. 의도치 않았지만 산책에 좋아 틀었던 음악이 의외로 순대국밥과도 잘 어울렸다. 혼밥을 할때 이어폰은 어색함을 반감시켜준다. 혼자라도 혼자가 아닌 기분이랄까.
이경란 작가가 엮어낸 아홉편의 단편소설엔 혼자인듯 혼자가 아닌 사람들이 나온다. 소외와 구원, 고립과 연대의 구도랄까. 작가는 순대처럼 꽉 막혀 출구를 찾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주기도 하고 건반위로 엇박의 리듬감을 만들어내는 재즈 연주자 같이 능숙하게 독자를 이끌기도 한다. 라면과 홍차의 간극만큼이나 서로 멀찍한 지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소설에도 그림과 같은 유파가 있다면 이경란의 작품은 표현주의로 볼수 있지 않을까.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고야 말 현실의 명암에 짙은 원색을 입혀놓아 잊혀지지 않는 뚜렷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거기에 다신 맡고 싶지 않은, 그러나 어디선가 한번쯤은 인상 찌푸리며 맡아보았음직한 냄새들이 후각을 자극한다.
시점도 자유롭다. 과거인지 현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한번 더 읽어야만 하는 문장들이 서로 어깨를 부딪히며 시간축을 넘나든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바라보고 위무한다. 담벼락위로 길게 그어진 붉은 립스틱의 흔적만큼이나 작가의 기억은 독자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각인된다.
아홉편의 단편들을 관통하는 시선은 보잘것 없는 사람, 흔히 '약자'라고 불리워지는 사람들의 삶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몇몇 작품에서 보여주는 경쾌한 리듬감마저 가볍게 느껴지지 않을만큼 주제의식이 묵직하다.
밥을 다 먹고 그만 책을 순대국밥집에 놓고 나왔다. 작품속에서 인용하고 싶은 문장들이 꽤 많았는데 원본이 없으니 인용할 수가 없다. 곧바로 찾으러 갈까 하다가 책표지를 힐끗 쳐다보던 아르바이트 학생이 읽을수도 있겠다 싶어 며칠후에 찾으러가겠다고 전화를 해두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책을 읽으며 라면 뚜껑으로 쓰다가 결국엔 순대국밥집에 놓고 나오는 불량한 독자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