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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윤 May 18. 2023

느리고 슴슴한 집밥생활

휴직 9,10주 차 기록




결혼 생활이 어느새 7년 차지만, 할 줄 아는 요리(요리라고도 말하기 민망)가 거의 없다. 정신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맞벌이 부부라는 타이틀은 배달어플을 열어 주문할 때의 죄책감을 덜게 했다. 간편한 배달과 외식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퇴근 후 집밥은 차릴 생각만으로도 번거롭고 피곤했다. 따지고 보면 크게 스트레스받지 않은 날도 떡볶이( 최애)를 포함한 자극적인 음식을 먹기 위한 합리화는 계속됐다.


생각해 보면 배달어플이나 외식이 정말 간편했는지는 모르겠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는 시간이 생각보다 길고, 배달의 경우는 음식이 도착하는 시간까지 더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에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해 먹는 게 훨씬 낫겠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하면서도 이 모든 것이 '아 오늘 회사에서 너무 힘들었어 다 귀찮아...'로 귀결되던 날들이었다.


엉망진창으로 식사를 하면서도 늘 건강은 염려하는 나였기에 '이래선 안 되겠다' 생각이 들 땐 다시 요란하게 식단을 정비했다. 가끔 회사에서 덜 시달리거나 여유가 있는 평일 저녁엔 집 앞 반찬가게에서 건강한 우엉조림, 멸치볶음, 샐러드 같은 반찬을 사다가 옮겨 담아 먹으며 그나마 건강한 반찬을 먹는다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주말엔 최소한의 양심으로 한 끼만이라도 남편을 위해 따뜻한 요리를 해주겠다는 일념아래 한 주는 새우를 듬뿍 넣은 볶음밥, 그 담주는 야채카레를 반복하며 만들었다. (할 줄 아는 요리 가짓 수가 몇 개 되지 않아 로테이션도 빠르다.) 정기검진을 하다 가슴이나 자궁에 혹이 생겼다거나, 건강상태가 별로임 확인될 때는 '더 나빠지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 게으름을 지배해 밀가루를 끊고 새벽 6시 반에 벌떡 일어나 채소, 과일, 삶은 달걀을 넣은 도시락을 준비해 출근하기도 했다.


그렇게 유난스러우면서도 늘 건강하게 잘 챙겨 먹는 것에는 자신이 없었다. 내가 동경하는 꾸준함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살찌면 어쩌지, 건강에 안 좋을 것 같아'를 계속 되뇌며 맛있게 먹지 못한다거나 (그러기엔 너무 잘 먹긴 한다..), 건강한 음식을 잘 챙겨 먹으면서도 '일단 지금 관리하고 다음 검진만 통과하면 떡볶이부터 먹어야지' 하며 자극적인 음식을 갈구했다.


휴직을 하면서는 이제 더 이상 '챙겨 먹을 시간이 없어서, 여유가 없어서, 피곤해서'라는 핑계는 댈 수 없었다. 이 모든 것들이 제거가 된 상황에서도 아무렇게나 먹는다면 게으른 나를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이. 남자분들이 많았던 우리 팀 최애음식 Best 3 국밥, 제육, 김치찌개의 반복이었던 점심메뉴와 합리화로 가득했던 저녁 배달음식들을 멀리하고 좋은 음식들을 먹기로 했다. 처음부터 각 잡고 제대로 잘 차려 먹으려고 나 스스로를 몰아붙이지 말자고, 어차피 할 줄 아는 요리도 없으니 욕심을 내려놓자고 다짐하며 시작한 것이 느리고 슴슴한 집밥 생활이다.


요리책이나 유튜브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간단하고 건강한 한 끼 식사 레시피가 정말 잘 소개되어 있었다. (알고리즘을 타고 가다 신세계를 봤다.) 몇 가지의 간단한 재료와 약간의 부지런함으로 밥을 내어낸다는 것. 아직 느리고 서툴고, 싱크대는 온갖 남은 재료와 그릇들로 전쟁이 나지만 그 시행착오도 귀찮음을 이겨냈기에 느낄 수 있다고 자부한다. 양념이나 소스는 정량의 2/3만 하려고 노력한다. 되도록 자극적이지 않고 슴슴하게 먹다 보면 그 맛도 나름 적응이 된다.


분주한 요리와 달리 식사는 묵언수행이다. 혼자 가지런히 음식을 놓고 멍 때리며 먹는 고요한 식사가 좋다. (물론 남편과 도란도란 먹는 식사도 좋다.) 늘 마음이 분주하지만, 혼자 밥 먹는 시간만큼은 차분해지려 노력한다.


건강한 몸과 편안한 마음을 유지하는데 바른 식생활이 중요하다는 것을 더욱 느끼는 요즘이지만, 지금까지 먹어오던 떡튀순, 빵, 찜닭을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 휴직 후 고작 몇 번 차려먹은 경험에 취해 집밥에 대한 글을 썼지만, 솔직히 배달음식을 아주 끊지는 못했다. 그래도 요리에 큰 소질이 없는 내가 집밥에 정성을 쏟는다는 것과 식습관을 교정하려는 노력을 (나름) 꾸준히 하고 있다는 것이 스스로에게 대견하다.


느리고 슴슴한 집밥 생활. 우삼겹 야채덮밥은 나의 1호 레시피다. 내 입맛엔 잘 맞으면 그만. 근데 맛있다 :)


* (TIP) 사진의 요리 : 나름 근사한 우삼겹 야채덮밥 1인분

1. 양파 1/2개를 채 썬다.

2. 데쳐 둔 브로콜리 중 5~6개 송이를 얇게 편으로 썬다.

3. 미니파프리카 2개를 동그란 모양이 나오도록 썬다.

4. 프라이팬에 올리브유를 휘휘 두르고 양파를 볶는다.

5. 양파가 말캉해지면, 브로콜리와 파프리카를 넣고 같이 2분 정도 볶는다.

6. 세 개의 야채가 볶아지는 동안 냉동 우삼겹 7~8조각을 꺼내 새 프라이팬에 올린다. (기름은 넣지 않는다. 우삼겹 자체에서 기름이 많이 나온다.)

7. 익힌 우삼겹을 야채를 볶고 있는 프라이팬으로 옮겨서 1분 정도 같이 볶아준다. (우삼겹을 옮길 때는 기름을 최소화하기 위해 젓가락으로 옮겨준다.)

7-1. 볶을 때는 소금+후추 약간 (또는 굴소스 1/2 스푼) 넣어준다.

8. 현미밥 위에 우삼겹+야채볶음을 올려준다.

9. 깨를 솔솔 뿌린다.

10. 맛있게 먹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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