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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윤 Apr 18. 2023

안경, 안녕-

휴직 6,7주 차 기록




"선생님, 잘 안 보여요-"

"시력 0.5! 다음"


초등학교 3학년 신체검사 날, 그날 이후부터 나의 길고 긴 안경잽이 인생이 시작되었다. 초등학교 때 반 친구가 안경을 쓰고 왔었는데, 나도 그 친구처럼 안경을 쓰고 싶다는 생각에 tv도 앞에서 보고 컴컴한 곳에서 책도 읽고 했더니, 정말 시력이 나빠졌다. 엄마는 안경을 벌써 쓰면 어떡하냐고 걱정했지만, 그때의 나는 사실 내심 안경을 쓴다는 게 좀 신났었다.


그렇게 어이없는 이유로 시작된 안경은 내 평생 달고 다니는 혹이 되어버렸다. 안경 거의 30년, 렌즈 20년 (서클렌즈 5년) 그동안 시력교정에 쓴 돈만 해도 얼마인지, 계산도 하기 싫어진다. 돈도 돈이지만, 0.5에서 시작했던 시력은 30년간 차곡차곡 나빠져 어느새 -5.0이 되어버렸다.


-5.0 이상의 중고도근시를 가진 안경잽이들은 반드시 겪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부득이하게 안경을 쓰고 나갔는데 구썸남이나 남친을 마주쳐 줄행랑을 친다거나, (나의 경우 안경을 쓰면 얼굴 라인이 안경 안으로 들어올 만큼 축소되고 눈 크기도 반으로 작아져 찐따 얼굴이 되기 때문에, 웬만하면 렌즈를 착용한다.) 공들여 화장해도 안경을 쓰고 회사에 가면 어디 아프냐, 오늘 기분 안 좋은 일 있냐.. 고 여쭤보신다. 도수 높은 안경잽이인 나에겐 쌩얼보다 못한 얼굴이 안경 쓴 얼굴이었다. 


휴직이 시작되고 나선  간 렌즈로 혹사시킨 눈을 쉬어줘야겠다는 생각에 계속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쌩얼에 도수 높은 뺑뺑이 안경까지 끼고 있으니 내 얼굴이 너무 쳐다보기가 싫었다. 15년 전쯤 시력교정술을 하려고 검사를 받았지만, 수술 당일 노쇼를 했을 만큼 눈에 손을 댄다는 것이 겁이  포기를 했었다. 그런데 이젠 시력교정술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더 무서워지는 지경에 이르니 용기가 생겼다.


15년 간의 긴 고민을 뒤로하고, 남아도는 시간으로 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갖는 것을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하는 시점에서 고려해야 할 것들부터 먼저 확인했다. 의사 선생님께선 출산을 하면 시력이 약간 떨어질 수는 있지만 그 현상도 일시적이고 다시 시력이 회복되기에 아이를 가지기 전에 미리 하는 것이 좋고, 요즘 시력교정술은 스테로이드 계열 안약을 1주일만 넣어주되어그 기간만 지나면 아이를 갖는 것도 크게 문제가 없다고 말씀 주셨다.


제일 불안했던 부분을 해소하고 나니 조금은 더 용기가 생겼다 (검안도 무난히 통과했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수술날짜를 잡으니 세상 이런 괴로움이 없었다. '잘못되면 어쩌지. 지금이라도 안 하겠다고 할까.' 그 간 방치했던 온갖 불안과 걱정이 밀려들어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프로 걱정러의 최악까지 생각하는 버릇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하지만, 불안은 말하거나 전할수록 더 큰 불안이 된다는 걸 수 차례 셀프임상을 통해 배웠기에 남편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마음을 다 잡았다. '걱정도 염려도 불안도 다 내 마음의 문제다. 나를 못 믿겠으면 의사 선생님이라도 믿자'라고-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의사 선생님의 차분한 목소리에 세상 안정감이 들었고, 호들갑을 떤 긴 시간이 민망할 만큼, 수술은 금방 끝났다. 회복 과정에서 약간의 통증과 불편함은 있었지만 (앞으로 노안이 오기 전까지는) 안경을 안 써도 된다는 편리함에 비하면 충분히 견딜만한 정도였다. 지금도 내가 예상하지 못한 눈의 변화가 느껴질 땐 불안하고 무섭고 걱정되는 마음이 스멀스멀 일어나기도 하지만, '의사 선생님께서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고, 내가 관리를 잘하고 있고 (잘할 거고), 전자기기 사용도 최소화하고 있으니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자' 되뇌고 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은 현재의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결정할 것인가로 조금은 컨트롤 할 수 있으니.


최근에 미간 주름이 살짝 생겼었는데, 그 주름이 확연히 옅어졌다. 무의식 중에 눈을 찡그리면서 생긴 주름이 조금씩 펴지게 되었나 보다. 안경과 렌즈의 도움 없이 눈으로 보는 하늘, 나무, 건물, 간판 그리고 내 얼굴도 생경하다. 더 하게 보이는 건 기분 탓이겠지.


진작 할 걸 - 이란 말은 의미가 없다. 용기가 생긴 지금에서야 할 수 있었던 것이니까 :)


안경, 진짜 안녕이다.  

다시는 널 만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 관리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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