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심이 흔들리던 날들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전히 육아만 한 1년이었다.
돌이켜보면 딱히 설명할 만한 성과도, 외부에 내놓을 만한 결과물도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은 크게 들지 않았다. '육아'라는 말이 커다란 방패처럼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안에 있으면,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잘 살았는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묻지 않아도 되는 1년이었다.
그 거대한 방패 뒤에서 나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았다. 운동도, 다이어트도, 부지런한 자기 관리도, 어느 정도는 깔끔했던 집안도, 괜찮게 차려먹던 집밥도, 취미 같은 것들도, 인간관계도. 육아 앞에서는 하나씩 밀려났다. 육아로 하루를 통과만 하는데 필요한 에너지는 늘 빠듯했고, 그나마 남은 자투리 힘도 다시 아기에게로 기울어 있었다. 우선순위가 너무나도 분명한 날들이었다. 어쩌면 '육아 중'이라는 말 하나로 나는 한동안 세상의 평가에서 비켜나 있다고 그렇게 합리화했는지도 모르겠다.
아기보다 먼저 깬 적은 거의 없었다. 늘 먼저 깨는 아기의 인기척에 손부터 뻗어 아기를 쓰다듬었다. 아기를 토닥이다 잠들면 나도 같이 쓰러지듯 잠드는 매일이었다. 그 사이사이에 밥을 만들고, 먹이고, 씻기고, 놀아주고, 달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몇 달째 밤 열 시가 넘어도 잠들지 않는 아기가 요즘은 내 체력과 정신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날들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대신 '오늘을 버텼다'는 감각들만 유난히 선명하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예전의 나는 한 해를 돌아볼 때 늘 무언가를 세어 보곤 했다. 얼마나 일했는지, 무엇을 해냈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성취와 결과가 말이 되는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그 기준이라면 올해는 셀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회사와는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육아에는 성과도, 피드백도, 잘하고 있다는 사인도 없었다. 아기의 대부분을 기다려 주는 법, 설명하기엔 어려운 수고가 하루를 채우는 시간을 받아들이는 법,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계속 가는 법. 회사에서는 한 번도 배운 적 없는 방법과 감각들이었다.
나는 그렇게 사회에서 한 발 비켜나, 아주 작고 반복적인 세계 안에서 1년 반을 살고 있는 중이었다.
한 달 전쯤이었나, 바닥이 휘청이는 느낌이 있었다. 처음엔 그냥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다. 잠을 못 자서, 체력이 바닥이라서, 아니면 급체인가 싶기도 했다. 늘 그렇듯 육아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만히 서 있어도 중심이 자꾸 어긋났다. 아기와 둘이 있는데 시야가 핑핑 도니, 이유를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들었다. 증상이 심해지던 날, 결국 일이 몰아치던 남편에게 아기를 맡기고 신경과로 달려가 이석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놀라기보다는 ‘아, 올 게 왔구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몸이 고장 나자 마음도 함께 흔들렸다.
어지러운 와중에도 육아는 멈춰질 리 없었고, 멈출 수도 없었다. 아기는 17개월로 진입하며 더욱더 나에게 떨어지지 않으려 했다. 안아달라고 울었고, 밥을 먹다 던지고, 잠투정을 했다. 어지러움으로 아기를 안고 서 있다 보면, 내가 지금 제대로 서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쓰러지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는 건지 헷갈렸다.
그 무렵이었을까. 더 강하게 같은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남들도 다 하는 육아인데 난 왜 이렇게 버거울까. 사실 내 마음 어딘가에는 오래된 관념이 하나 있었다. '육아는 힘든 것이 아니다'는 생각이었다.
육아는 머리를 쥐어짜 기획안을 짜거나, 초스피드로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수십 명 앞에서 임원 보고를 하는 것도 아니고, 밤새 엑셀을 붙잡고 숫자를 맞추는 일도 아니었다. 회사에 다닐 때의 나는 늘 바쁘다고, 힘들다고 불평하면서도 그래도 어쨌든 해냈다. 싫어도 했고, '못하겠다, 다니기 싫다, 로또나 돼라' 속으로 몇 번을 말하면서도 결국엔 또 출근했다. 휘발되어 버릴 종이 한 두장의 결과물을 위해 심장을 몇 번씩 조였고, '잘 썼다. 잘했다'라는 한 마디면 하루가 괜히 괜찮아지기도 했다.
그래서였을까. 육아를 하면서도 나는 자꾸 회사 일을 기준으로 삼았다.
'육아는 그렇게까지 머리를 써야 하는 일도 아니고, 그냥 단순하게 하면 되는 일 같은데. 밥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이 단순한 일을 나는 왜 이렇게 힘들어하지? 이 정도도 못 버티나?' 이런 생각들이 육아를 하는 내내 나를 몰아붙였다.
어쩌면 내 무의식은 돈을 벌고, 기록이 남고, 남의 인정을 받는 회사 일이 더 ‘대단한 일’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 같다. 회사 일에는 평가가 있었다. 잘하면 칭찬이 있었고, 못하면 피드백이 있었고, 최소한 내가 뭘 하고 있는지는 분명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그 결과가 눈에 보였다. 반면 육아는 다른 종류의 일이었다. 누가 잘했다고 말해주지도 않고, 어디까지 잘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 같은데, 이게 잘 되고 있는 건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아이가 잘 크고 있다는 사실 말고는, 내 노력을 증명해 주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육아는 내가 나를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분명히 몸이 힘든데 힘들다고 말하기 애매했고, 버거운데 어디에도 설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힘들지 않아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내가 ‘덜 대단한 일’이라고 여겼던 일을, 온몸으로 버티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는 이제 육아를 더 이상 ‘버텨야 하는 일’이나 ‘잘 해내야 하는 일’로만 보지 않으려 한다. 잘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점검하지도, 회사에서 쏟아지는 업무를 쳐내던 것 마냥 육아를 재단하지도 않으려고 한다. 오늘 하루 아이를 안고 넘어지지 않은 것, 울음을 조금 덜 키운 것, 마음을 단단히 한 것, 나도 같이 무너지지 않고 저녁까지 왔다는 것. 그런 것들이면 충분한 하루라고 생각해보려 한다.
아마도 육아는 성과로 남지 않는 대신, 사람 안에 남는 일일 것이다. 나를 조금 느리게 만들고, 조금 무르게 만들고, 이전보다 덜 단정한 사람이 되게 하는 일. 그 변화가 지금은 버겁고 두렵지만, 언젠가는 이 시간들이 내 삶의 중심을 아주 다른 방식으로 단단하게 만들어줄지도 모른다.
올해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사실은 매일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았다. 그걸로 충분했던 한 해였다. 내년에는 육아가 힘들다고 느끼는 나를 조금 덜 의심해보려 한다. 부디 조금 덜 다그치고, 조금 더 자주 나를 인정하면서 이 시간을 지나가고 싶다. 육아가 여전히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힘들어하면 안 되는 일’은 아니라는 사실만은 잊지 않으면서. 이리저리 중심이 또 흔들리더라도, 그건 내가 약해서가 아니라 하루를 제대로 살아냈다는 증거라고 말해주면서.
다만, 육아에서 구하소서.
완벽한 엄마 말고, 다시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는 엄마로.
그리고, 내일도 내년도 앞으로도 다시 해보는 걸로.
너무 오랜만에 찾아뵈었네요. 몸과 마음이 여전히 여유롭지는 못하지만 올해가 가기 전에 꼭 남겨두고 싶은 글이었습니다. 들쭉날쭉 연재되는 글임에도 찾아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모든 분들, 연말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