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밥도 이렇게는 안 차려 먹는데
돌이켜보면, 살면서 이렇게 무언가를 미룬 적이 있었나 싶다. 취업 준비 시절, 지원서 마감시간이 임박할 때까지 쓰지 못하고 머뭇거리던 그 자소서처럼. 결국은 써야 했지만, 막상 책상에 앉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던 그 마음. 이유식을 준비하던 내 마음이 딱 그랬다. 해야 하는 일인 건 알지만, 도무지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엄마들이 요즘 가장 많이 본다는 이유식 책 두 권을 5개월 무렵부터 사두고, 책상 위에 고이 모셔만 두었다. 곁눈질로 표지만 살짝 들춰봐도 방대한 글과 사진에 괜히 한숨이 나왔다. '세상 쉽고 맛있는 레시피'라 적힌 책 한 줄의 문장과는 달리, 이유식 만들기 공정은 꽤나 빼곡했다. 회사원이라는 세상 단단한 핑계를 방패막 삼아, 살면서 내 밥도 이렇게 챙겨 먹은 적이 없거니와, 남편 밥도 가끔 해주는 정도였는데, 이제 아기의 첫 식사, 아니 평생의 식사를 책임져야 한다니. 모유와 분유만 먹이는 단순한 루틴에 '이유식'이라는 새로운 단계를 더할 생각을 하니, 그 순간부터 이미 지쳐버린 기분이었다.
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179일째 되는 날. 결국 새로 산 냄비를 꺼내 들었다. 책에 적힌 대로 찬물 320ml에 1단계 쌀가루 20g을 풀어 살살 저어가며 끓였다. 그저 죽을 끓이는 일인데도 내가 하고 있는 과정이 제대로 된 건지, 스스로를 믿지 못해 '쌀죽(쌀가루 16배 죽)'이라고 적힌 페이지가 쭈글쭈글해질 때까지 물 묻은 손으로 같은 문장과 그림을 반복해 들여다봤다.
이유식을 만든다는 건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아기의 성장에 직접 관여하는 일, 그 삶의 첫 식사를 내가 준비하고 있다는 부담감이 어깨를 눌렀다.
드디어 180일이 되던 날. 아기는 쌀죽 단 한 입을 삼키고는 표정을 일그렸다. 혀끝으로 삐쭉 죽을 밀어내더니, 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나는 그 한 입을 보는 동안 묘하게 울컥했다. 아기에게 이 쌀죽이 얼마나 낯설지 알면서도 '한 번만 더 먹어보자' 하며 떠먹이던 나 자신이 더 낯설었다. 억지로라도 삼키게 해야 한다는 마음과, 괜찮다고 웃어야 한다는 마음이 부딪쳤다. 육아는 늘 이런 식이 었다. 잘해주고 싶은 마음과, 괜찮다고 다독이는 마음이 동시에 존재했다.
며칠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아졌다. 아기는 조금 더 먹었고, 나는 조금 덜 긴장했다. 이유식은 조금씩 다채로워졌다. 소고기, 단호박, 브로콜리, 양배추.. 냄비 위로 피어오르는 김 속에 내 하루의 대부분이 녹아 있었다. 날이 갈수록 아기가 한 숟가락이라도 더 삼켜주면 괜히 뿌듯했다. 우리 아기는 약간의 적응기를 거친 후부터는 너무나도 잘 먹는 아기라 그런지 가끔 잘 먹지 않으면 이유를 찾아내려 애썼다. 식감이 싫었나, 먹다가 온도가 안 맞았나. 정답이 없는 일인데, 늘 정답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다 갔다. 아기가 잠든 밤, 주방의 후드 불만 살짝 켜둔 채 조용히 냄비를 올렸다. 정해진 근무표도 없는데 이유식 공장은 매일 돌아갔다. 냉장고에서 고기와 야채를 꺼내 손질하고, 삶고, 곱게 간 뒤 저울에 올려 큐브틀에 눌러 담았다. 냉동실엔 어느새 알록달록한 이유식 큐브들이 채워졌다.
매일 밤이 야근이었다. 책은 이미 너덜너덜해졌지만, 손때가 묻은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마음이 놓였다. (아마도 믿는 구석(책)이 있어서 이유식 만드는 법을 외우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어차피 아기는 기억도 못 할 텐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다음 날 아기가 그걸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 모든 게 보상처럼 느껴졌다.
'내 밥도 이렇게는 안 차려 먹는데'
'엄마한테도, 남편한테도 이렇게 정성 들인 적이 없는데'
이유식을 만들 때마다 들었던 생각이었다. 나를 위해선 대충 냉장고에 있는 반찬으로 끼니를 때우던 내가, 요리에는 정말 흥미도 소질도 없던 내가, 아기 밥은 저울에 잰 유기농 쌀에 채수까지 부어가며 짓고, 채소도 예쁜 걸로만 골라 삶았다. 믹서기는 열이 날 때까지 돌아갔고, 시간은 내 하루를 다 태워버렸다. 그게 사랑의 모양인 건 분명한데, 이상하게 나는 자꾸만 나 자신을 건너뛰었다. '지금은 육아 중이니까' 라며 합리화했지만, 그 정성의 일부라도 나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늘 '나중에'의 몫으로 미뤄졌다.
유아식을 하고 있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이유식은 미리 만들어 큐브로 얼려두면 며칠은 편했지만, 유아식은 그 자리에서 뚝딱 만들어야 해서 그런지, 나는 유아식이 훨씬 버겁다. 아기를 의자에 앉혀놓고, 도마 위의 잘게 썬 야채와 번갈아보며 한 그릇을 정신없이 만든다. 다 된 밥을 그릇에 옮겨 아기에게 건네는 그 짧은 걸음에서조차 아기는 빨리 달라며 '압(밥), 빠빠' 소리를 낸다.
그래도 이제는 나 자신이 제법 느긋해짐을 느낀다. 다 먹이지 않아도 괜찮고, 흘리면 닦으면 되고, 덜 먹는 날은 그냥 그날의 기분이 그런가 보다 싶다. 조금씩 '먹이는 일'이 '함께 먹는 일'이 되어간다.
어쩌면 육아의 본질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잘하게 만드는 일 보다, 어설프게라도 함께 해나가는 일. 매일 힘든 것 같아도, 결국에는 괜찮다고 말하게 되는 일. 이유식을 만들며 나는 그걸 조금씩 배워갔다.
'오늘도 잘 먹여야지. 그리고 나도 잘 먹어야지'
아기를 위해 준비한 식탁 위에서, 나도 한 숟가락쯤은 내 몫의 밥을 꼭 떠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