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배운 엄마가 되는 법
나는 잔소리라는 것을 모르고 살았다. 살아오는 동안, 그 흔한 공부하란 잔소리도 한 번 한적 없는 엄마, 내 선택과 결정을 항상 지지해 주었던 엄마. 지금 돌이켜보면 자식을 위해 해준 것이 많지 않은 엄마라고 본인을 낮추며, 잔소리를 할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판단하셨던 것 같다. 엄마의 그런 판단은 슬프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엄마가 나를 믿기에 잔소리를 하지 않는 거라고.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나는 삶의 어떤 순간이든 어떤 일이든 늘 열심히, 야무지게 해내려고 했다.
그런 엄마에게 들었던 첫 잔소리가 바로 '그래도 애는 있어야 해'였다. 결혼한 지 3~4년쯤 되었을 때, 엄마는 내가 딩크로 살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는지, 안부전화를 걸 때마다 오래된 배경음처럼 늘 똑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나는 그 '애는 있어야 해'라는 말이 조금 지겹기도 했고, 솔직히는 답답하기도 했다. 꼭 정답이 하나밖에 없는 것처럼 들렸으니까. 세상에 살아가는 모습이 이렇게 다양한데, 왜 엄마의 결론은 늘 같을까-하고 말이다.
아빠가 엄마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내가 얼마나 힘든 시절을 보냈는지, 제일 잘 아는 엄마가 내게 애를 낳으라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기 전까지도 엄마의 얼굴엔 늘 근심이 가득했다. 나는 그 곁에서 불안을 배웠고, 가정이라는 것은 대부분 그렇게 일그러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엄마가 내게 건넨 말이 '그래도 애는 있어야 해' 라니, 아이러니하고 모순적이었다. 이해되지 않으면 쉽게 납득하지 않는 성격인 나는, 정말로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아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도 충분히 살 수 있어' 라며 여러 날을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그러나 또 어떤 날에는, 그 말이 어깨에 얹히는 무거움으로 느껴졌다.
아기를 낳고, 병실에 누워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부산에 있는 엄마는 '아기 낳은 날 친정엄마 얼굴을 봐야 해-' 라며 내가 있는 서울로 오겠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65세의 나이에도 아직 일을 하는 엄마가 당일치기로 바삐 오가실 것이 눈에 선해, 보호자 한 명만 면회가 되어 엄마는 못 온다고 눈치껏 거짓말을 했다. 그렇게라도 엄마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
아기가 태어난 지 40일. 조리원도, 산후도우미도, 남편도 출장으로 없던 날, 엄마는 3일간의 연차를 쓰고 우리 집에 와 주었다. 3일간 단 한 번도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나만 챙기던 엄마, 엄마에게 서울은 구경할 곳도, 대단한 곳도 아닌 그저 내가 사는 곳일 뿐이었다. 아기 얼굴부터 볼 줄 알았던 엄마는 내 얼굴부터 보며 '얼굴이 까칠하네, 잘 챙겨 먹어야지' 하며 내 밥부터 부랴부랴 챙겼다. 손녀보다 딸이 먼저인 엄마였다. 나는 잠깐 멍하니 분주한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아기를 낳고 처음으로 온전한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꼈다.
아기를 잘 돌보는 법 보다, 내 얼굴과 내 기분을 먼저 챙기는 엄마. 그게 바로 엄마였다. 엄마가 도와주는 작은 손길 하나하나가, 다가오는 책임감과 피로 속에서 숨통을 틔워주었다. 엄마가 3일간 내 밥을 챙기고, 새벽수유를 돕고, 집안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엄마 옆에 앉아 숨을 고르며 있었다.
"애 키우는 게 힘들지? 그래도 애는 있어야 해"
하- 또 저 소리네. 피곤해서 머리가 띵한 와중에도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이번엔 그 말이 조금 다르게 들렸다.
엄마가 했던 말은 사실 강요라기보다 일종의 '고백' 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빠와의 결혼 생활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순간에도, 인생이 본인의 뜻대로 풀리지 않았던 순간에도, 엄마를 끝내 붙들고 있던 것이 바로 나와 동생들이었다는 고백. 엄마의 말은 결국 '낳고 키워보면 너도 알게 될 거야'라는, 경험에서 건져 올린 삶의 언어였다.
푸념도 잔소리도 아니었던 그 말로, 엄마는 내게 인생을 설명하려 했던 것 같다. 아기 없이는 몰랐을 기쁨, 포기하지 않고 버텨야 하는 하루하루, 본인의 존재보다 더 크게 살아가는 감정들. 엄마가 나에게 건네주고 싶었던, 삶의 가장 깊은 부분이었음을. 내 나이 마흔, 엄마가 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조금 달라졌다. 아기를 안고, 달래며 엄마의 말이 순간순간 떠오른다. 엄마의 잔소리인 줄만 알았던 말이 결국 삶의 안내였음을. 그리고 언젠가 나도 나의 방식으로, 나의 언어로, 나의 사랑으로, 아끼는 내 아기에게 그 말을 전하게 될 것을. 그때 나는 비로소, 엄마가 걸어온 길과 나의 길이 연결 되는 순간을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