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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근데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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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영 Apr 16. 2022

나는!!! 쓸 수 있어!!!



*이 글은 편지 형태로, 장보영 작가의 아래 글에 대한 답장입니다.

https://brunch.co.kr/@bo0/149




언니, 나도 미안. 편지가 늦었지.




확실히 집필 일을 시작하면서는 '글'에 대한 마음이 두 개로 나뉜 것 같아. 전엔 살고자 하는 마음 하나로 글을 적어 내려갔다면 그 마음이 딸깍 하고 반으로 쪼개진 느낌이랄까. 내 마음에 글쓰기 버튼이 두 개 있다면 하나는 -생계 위한 글쓰기- 라는 버튼이고, 다른 하나는 -쉼 위한 글쓰기- 라는 버튼일 거야. 근데 언니, (그 버튼에 먼지가 쌓이고 있어.)




'월요일엔 회의 준비하고 쉬어야지. 화요일엔 회의하고 쉬어야지. 수요일은 원고를 탈고했으니 쉬어야지. 목요일은 피드백을 반영했으니 쉬어야지.' 하며 글쓰기를 차일피일 미루는 거 있지. 나에게 이런 날도 오다니! 글 쓰지 않으면 숨이 꼴깍 넘어갈 것 같던 내가 웬일이지! 근데 살짝 이런 내가 싫지는 않아. 왜냐하면 세상에 작은 점 하나 찍는 일일 테지만, 글 쓰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게 스스로 기특하기도 하고. 글쓰기 자체가 일종의 회복의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하루 이틀 건너뛰어도 살 수 있겠는 거니까. 이런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언니다. 나를 문우로 여겨줘서 고마워!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 엉덩이 착 붙이고 앉을 수 있던 이유는, 주말이 곧 시작하기 때문이지. 언니도 이해하지? 아무리 프리랜서여도, 주말엔 열심히 쉰다는 걸. 가끔 프리랜서라고 주말에도 일할 거라 생각하고 기간 밭게 일 주려는 기운이 느껴지면 난 소스라쳐. 그리고 절대 주말엔 쉬지. 실은 주말이라 쓰고, 우리는 성도니까. 각양각색으로 교회 갈 준비를 하며, 쉬며, 놀며. 실은 나는 토요일 약속은 웬만해선 잡지 않아. 다음날 아무래도 교회에서 사모 모드로 지내기에, 토요일 외출은 피곤하거든. 근데 언니, 혹시, 언니가 토요일에 육지에 온다면? 그땐 나갈 수 있어. 으라차차!




금요일 밤, 일주일을 정리하며, 숨 고르기 위해 언니에게 편지를 쓰는 거야. 나에게 비빌 언덕은 언니와의 대화구나 싶어. 사실 아까 11시쯤 전화를 할까 하다가 너무 밤이다 싶어 관뒀어. 내가 요즘 너무 자주 전화하는 것 같더라고. 대신 언니에게 편지를 쓰려고 몇 자 적어놓았던 메모를 켜고 앉았어. 제일 먼저 하고 싶던 말은, 우리의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관해서야. 모임 후에 메모를 했는지 온통 고맙다는 내용의 말이 각각 다른 문장인 척 적혀 있네. 뭐 이렇게 길게 메모했나 싶어서 다 적진 않으려 해.




우선, 언니의 사적인 친구들을 소개해주어서 고마워. 다 너무 좋은 분들이잖아. 좀 더 깨방정 떨고 싶고 다들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데, 수평적 관계를 지향한다니 뭐, 계속 나도 '님'이 될게. 글쓰기 모임을 지속하는 한 내게 고정된 독자 3인이 있다는 건 되게 든든한 것 같아. 책임감도 생기고, 독자를 배려하며 글쓰기가 무엇인지 배우고 있다랄까. 물론 때로 내가 너무 캥거루* 같고, 살리에르 같긴 해. 누군가 글에 내어 보인 지극히 작은 부분을 놓고 그 사람을 상상하고 그의 단단한 내면을 부러워하는 내가 부끄러워져 걱정이기도 하고. 근데 나는 뭐 자주 이러니까. 이젠 대수롭지도 않아야 하는데.

(*<모두 예쁜데 나만 캥거루>, 에밀리 디킨슨 시집에서 차용)




모임 덕분에 이런 내 태도에 대해 고민해봤어. 글쓰기가 왜 자신 없지? 왜 비교하지? 결국엔 내가 지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마음이나 친구들과 서로의 사정을 부러워하고 비교하던 습관에서 기인한 거 같더라고. 아빠의 반응은 지금 생각해보면 당연한 거였어. 내 나이 열아홉, 지금처럼 문창과에 다닌다고 나름 줏대 있을 시절은 아니었으니까. "문창과? 평생 방구석에서 글이나 쓸 거냐?" 그때 "응"이라고 했음 되는데. 지금까지 아빠 눈엔 무용한 책을 만드는, 무용한 글을 쓰는 딸이겠지.




학창 시절 내가 결핵이 걸렸는데, 그때 한 친구가 아주 인상 깊은 말을 했어. "너는 모든 걸 다 가지고 행복한 줄 알았는데, 결핵이 걸렸다니 너무 놀랐어." 언니, 나 그때 저 말이 완전한 위로는 아닌 거 같아서 고개를 갸웃했던 거 같아. 절대적으로 애매한 저 말의 기원과 의미는 차차 깨닫게 되었지. 친구여서. 친구라서. 친구니까. 서로 비교하는구나. 안타깝게도 이후, 여중 - 여고 - 여대를 다니며 여성 사이의 눈칫밥은 더 개발됐어. 눈치 보기 시작하면, 일단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타버리고!   




그런데 글쓰기는 부끄러운 게 아니잖아. 평생 방에서 글을 쓸 정도라면 일이 많은 작가일 텐데. 부럽네. 일단 작가가 되는 건 하늘의 별따기잖아? (언니는 이미 땄네, 땄어.)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와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전혀 다른 거잖아? 글은 가닿는 그 누군가에게 맡겨진 선물 같은 거니까. 그러니 부끄러울 필요도, 자책할 필요도 없는 마음으로 지내고 있어, 지금은.




언니에게 운전이 나름 자연스러워지는 동안, 나는 온라인으로 일본어를 공부했어. 아장아장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부터 외우기 시작해서 얼마 전엔 40개가 넘는 온라인 강의를 완강하고 자축 세리머니로 반 이상 틀린 시험지를 사진 찍었어. 매 시간 마지막에 받아쓰기 시험을 보는데, 마지막 날까지 거의 다 틀렸거든. 그래도 좋은 거야. 그냥 새로운 언어의 'ㄱㄴㄷㄹ'부터 공부하는 건, 근데 이걸 서른 중반에 시작한다는 건 엄청난 도전 같은 기분이어서. 정말 안 외워지지만 계속 언어에 노출되니까 들리고, 떠오르더라고. 이제 읽을 수 있어서... 한국에 일본어 간판이 많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야. 신세계에 살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이렇게 삶을 환기하는 요소가 우리 둘 모두에게 하나 더 있는데, 그건 바로오- 글쓰기 모임인 거지. 매번 양질의 글을 정해진 독자에게 서로 전하는 일종의 "쌍방향 구독 서비스"랄까. 저 위에 분명 글쓰기 모임에 대해서 짧게 쓸 것처럼 말했는데 방금 단락 하나 빼고는 전부 글쓰기 모임에 관한, 모임에 의한 이야기 같아서 웃기다. 그지?




글쓰기 모임 통해 사적인 공간, 사적인 대화를 너머 언니를 보는 것도 내겐 큰 유익이고 기쁨이야. 예를 들면 언니의 감상에 혹은 제안에 공감이 될 때 속으로 반가워. 오랜 관계 속에서 서로 이미 잘 앎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글에 대해 우리가 서로 감상을 이야기할 때 더 깊고 새롭게 알아가는 기분이랄까. 아, 언니가 밤 열 시에 컵라면을 먹으며 모임 할 때는 정말 제주에서부터 우리 집 거실까지 라면 냄새가 지독했어. 시간도 시간인데, 난 컵라면 자체를 1년에 두 번 정도 먹을 수 있거든. 백퍼센트 배가 아파서. 어쩜 이렇게 여러 면에선 상극인 우리가, 글을 대하는 결은 비슷할까! 신기하네!




언니가 준 책, <시와 산책>은 한때 시인을 꿈꾸던 나를 만나게 해줬어. 과거의 나와 다리를 놔줬지. 다시 시집을 종종 사 보려 해. 한정원 작가에 대해서도 많이 궁금해졌고. 책은 우리 집 서재에서 가장 겸허히 여기는 칸에 꽂아두었어. 나중에 우리 집에 와서 확인하도록 해. 거실이자 내 방인 서가로 초대할 생각을 하니 떡볶이부터 생각난다. 그날이 오면, 즉석 떡볶이를 차려놓을게. 언니와 오빠(언니 남편)가 좋아하는 김밥도 올릴 예정이야. 그냥 올리지 않고 탑 쌓듯이 올려놓을게. 그리고 새봄이랑 새벽이를 위해 콘소메 팝콘과 씨 없는 포도를 준비할게.




아 참, 그리고... 부부가 함께 우울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은데. 병원 다니느라 고생 많았어. 내 주변에도 자녀가 걱정되어 찾아간 병원에서 부모에게 진단이 내려지는 경우가 꽤 많더라고. 그런데 그 모든 이들이 문제를 알고 나니 지금 아주 편해 보인다는 거야. 언니네 부부는 그 지점에 '확언의 힘'이 있는 거고. 맞나?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나는!!! 오늘!!! 육아할 수!!! 있어!!! 이 말투가 생각날 때마다 미소 짓게 해. <이태원 클라쓰> 박서준이 생각나서도 웃지만. 왠지 뭔지 알 것 같거든. 내가 나에게 말을 건다는 의미에서.




실은 나는 집에서 혼잣말을 잘해. 애도 없고 남편도 없어 심심한 내게 말을 걸지. "어머, 카레도 태워?" " 토마토는 사진 찍어야 !! 나는!! 찍을 꼬야!! (찰칵찰칵)" 이래서 쌓이는 사진만 족히 하루 50장이야.  사실 남편이 학교까지 다닌 이후로는 자주 심심해. 언니네가 올해는  우리 집에 왔으면 좋겠다. 이다음에 우리 집에 오면, 들어오자마자  아이패드를 충전기에 꽂아줘. 그럼 "나는!!   있어!!"라고 외치는 BTS 뷔가 반겨줄 거야!  정도면 나도 확언의 힘으로 살고 있는 건가? 아니, BTS 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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