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오래 기다렸지.
남편이 요즘 ‘자기 자신을 향한 확언’을 하면서 힘을 얻는다고 하더라고. 그동안 습관처럼 스스로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부정했는데, 이제는 반대로 자신이 이루고픈 모습과 상태를 스스로에게 말한다는 거야. 되뇌는 정도가 아니고 주먹을 꽉 쥐어 치켜들면서 우렁차게 외쳐야 한대.
나는! 오늘! 밤에 아이들 재울 때까지! 웃으면서 육아할! 힘이! 있다!!!!
나는! 창의적인 작업을! 꾸준히! 이어갈 수! 있다!!!!
이렇게 말이야. 그럼 나는 무얼 외쳐야 하지? 했더니 그가 이렇게 말하더라고.
(ㅋㅋㅋㅋㅋㅋ)
덕분에 주말 황금 육아 시간에 이어폰 끼고 편지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어. 그는 내게 편지를 너무 깊고 장황하게 쓰려고 하지 말고, 짧더라도 완성해서 꾸준히 이어가는 게 낫다고 했는데 그 말이 도움이 되었어. 브런치에 올리는 글은 아무래도 부담이 되거든. 아무튼 이제는 기름때 같은 부담감을 씻어내고 뽀득뽀득한 마음으로 담백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아.
그 사이에 나는 더 운전이 익숙해져서 두통은 사라졌지만 허둥대는 건 여전해. 운전을 하니까 ‘주의력’을 자주 생각하게 되는데 일상에서는 주의력이 좀 떨어져도 크게 불편하진 않거든. 하지만 운전은 생명이 달린 일이라 스스로의 상태를 인지하지 않으면 안 되겠더라고. 그래서 딴생각들이 와글와글 떠드는 와중에 정신 붙들지 않으면 차선도 슬쩍 넘고 S자 곡예운전도 하고… 아무튼 난리야. 그렇지만 네가 주는 상은 기쁘게 받을게. 나는!! 용감하다!!!
그리고 네 이야기를 보고 더욱 확신했어. 너는 좋은 사람들의 동심원 속에 있는 게 맞아. (지금 손사래 치는 손 당장 내려놓으면 좋겠어) 네가 만난 좋은 사람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친해진다고 했잖아, 그거 쉬운 일 아니다? 나는 가끔 내가 너무 별로라고 느낄 때면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떠올려. 그들의 존경스러울 만큼 성실한 태도, 팡팡 터지는 유쾌함, 진실한 얼굴, 사려 깊은 말, 경청하는 눈빛을 생각하면 그들 가까이에 있는 나도 마찬가지로 괜찮은 인간이란 증명을 받은 느낌이 들거든. 네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모인다면 그건 네가 좋은 사람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해. 너랑 친한 친구라면 나와도 결이 맞을 것 같은데, 과한 기대일까?
행복하면서도 불안한 건 나도 마찬가지야. 일종의 패턴이랄까. 이번에 행복했으니 다음 차례는 무서운 게 하나 오지 않을까 싶고. 이건 그냥 내 생각인데, 아무리 삶이 만족스럽다 해도 10년 주기 안에서 삶을 뒤흔드는 일 한 두 가지씩은 누구나 겪는 것 같아. 네가 말했던 것처럼 요즘은 다들 모양과 색깔만 다르고 무겁긴 매한가지인 괴로움을 겪고 있나 봐. 돌이켜보면 나 역시 숯불을 밟고 걷는 듯한 괴로운 시간들이 몇 차례 있었고 네 말처럼 그 시간을 지우려 애쓰고 서랍에 접어 넣곤 했었던 게 생각나. 그래서 네 글에 공감이 되더라고.
네가 지나온 길, 네가 겪은 고통을 내가 다 알 수 없지만 가만히 네게 머리를 기대고 네 등을 도닥이고 싶어. 그리고 <2021 가장 힘낸 사람에게 주는 상>을 줄 거야. 물러나지 않아 줘서 고마워. 몸은 힘들어도 눈으로 빛을 내며 꾸준히 써온 너는, 몰이해 속에서도 사람과 사랑을 선택하는 너는 얼마나 힘이 센 사람인지. 2022년에는 운동까지 시작했으니 물리적 힘도 더 생기겠지? 차차 회복된 네가 한라산에 약간만이라도 오를 수 있을 때까지 내 첫 입산을 유예할게. 같이 가자!
너의 편지를 읽으면서, 글을 쓰며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 출렁이는 마음을 그대로 적는 일이 주는 힘을 생각했어. 너는 그저 일어나는 일을 진술했는데 돌파구를 발견했잖아. 내가 저번에 말한 것처럼 우린 생각이 많은 게 아니라 생각이 민첩한 거야. 그래서 이미 알고 있지. 흔들릴 때는 젠 체도, 괜찮은 척도 하지 않고 절대 도망가지 않는 것. 직면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지혜를 말이야.
20대 때 나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확대해서 보려고 했어. 자기가 만든 바이러스를 자기 몸에 넣어 실험하던 19세기 과학자들처럼, 나는 상처받고 무너질 상황에 회피하지 않고 일부러 더 몸을 던졌어. 그리고 마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집요하게 지켜보곤 했지. 미움은 불길처럼, 열패감은 깊은 물처럼 자기들끼리 엎치락뒤치락하면서 고통을 생성하고 그 와중에 외로움의 가스가 꽉 차오르는 과정을 온몸으로 느꼈던 것 같아. 울고 싶으면 참지 않고 울부짖었어. 데굴데굴 구르기도 하고 벽에 대고 소리치기도 했어. 그러다 잠들지도 깨어있지도 않은 상태로 그냥 누워있기만 했지.
모든 감정을 허락했더니 저마다 기세를 부리다 천천히 힘이 빠졌는지 잠잠해지더라. 그 고요한 심연에서 작은 새싹이 움튼 느낌이 들었어. 폐허에서 새 생명이 자라는 것처럼 말이야. 그제야 비틀거리며 일어나 씻고 뭘 먹기도 하면서 돌아보면 엉망이 된 마음을 깨끗한 물에 담갔다 꺼낸 기분이 들었어.
너의 글을 보면서 나는 또 하나의 정화 과정을 목도했어. 평소 하고픈 말을 다 꺼내지 못하는 사람도 홀로 글을 쓰면 완전한 주도성과 끝없는 발언권을 가질 수 있다는 게 글쓰기의 최대 강점 아니겠니. (누가 훔쳐보지 않는다는 전제 안에서) 남들은 모르는 내밀한 이야기를 글에 다 쏟아내도 안심이 되고, 내 글 안에서 마음껏 옹졸해져도 뭐라 할 사람이 없잖아. 배려가 없는 말, 내 말을 막는 목소리들에 질식될 것 같다가도 글쓰기는 마침내 터져 나온 물숨처럼 나를 살리곤 해.
네 글에서도 나는 터져 나온 숨을 느껴. 내가 너였어도 주변 사람이 그렇게 말했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번개처럼 글을 팍팍 쏟아내기 시작할 것 같아. 그렇지만 너는 그 자리에 눌러앉지 않았어. 너의 글은 너를 살게 할 뿐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게 하더라. 맞아. 역풍에 등을 돌리면 순풍이 되지. 너는 그걸 해내더라고. 너는 말에 묶였지만 그걸 풀고 사람을 향해 전진했어. 아이고 참 <2022년 1월의 용감상>까지 안겨주고 싶어 지네!
지난번 편지에서 나의 불안을 이야기했었잖아, 그것의 확장판인 ‘아이의 분리불안’으로 정초부터 정신이 없었어. 이전까진 그런 모습 보인 적이 없던 아이가 7세가 되더니 부모와 떨어지면 달래지지 않을 만큼 울음을 터뜨리고 하루에도 수차례 무섭다고 말하기 시작하는 거야. 저 문으로 낯선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를 잡아갈까 봐, 괴물에게 잡아먹힐까 봐, 어둠 속에서 미지의 무언가가 나타날까 봐, 엄마 아빠가 자신을 놓고 가버릴까 봐 아이는 떨며 힘들어했어. 이것도 나 때문인 것 같아서 잠시 자책도 했지만 아이 상태가 오히려 내 불안을 가라앉히더라. 눈앞의 상황을 해결해야 하니까 부정적인 상상할 겨를도 없어지더라고. 그러다 혹시 도움이 될까 해서 아동심리검사를 받았는데 부모의 상태도 봐야 한대서 우리도 다면적 인성검사를 받았어.
검사 결과를 들으러 갔더니 선생님이 아이 상태를 쭉 읊어주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그런데 지금 이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바로 부모였어. 가족 간의 관계는 다 좋대. 자녀와 부모 사이, 또 부부 사이도 문제가 없대. 그런데 부모 각각의 우울이 높고 삶에 기쁨이 없다는 거야. 아이는 부모의 미간 주름만 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대. 부모 각자 삶이 행복하고 편안해야 그 감정이 아이에게 전달될 거라고 하시더라고.
우리 부부가 우울이 높았던 이유는 비슷했어. 우리 정체성은 창작자인데 아이들 키우느라 창작할 힘도 시간도 없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열심히 성취해서 쭉쭉 나아가는 것만 같고, 나는 스스로를 정체된, 뒤쳐진 사람이라 생각해왔더라. 그런데 남편도 그렇더라고. 난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니까 친구와 이야기 나누며 마음을 채우지만, 그는 어디 털어놓을 데도 없고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도 않아서 가슴속에 빠져나가지 못한 우울감이 쌓였대. 이 소식을 들은 남편이 충격을 받더라. 다 맞는 말이라며.
그 후 우리는 서로의 우울을 돌보고 의욕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 그 사이 둘째 아이가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아빠에게 더 많이 집착하면서 남편도 나도 금세 진이 빠지곤 하거든. 큰 아이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둘째 아이는 하고 싶은 말을 아직 못 해서 성질을 내고. 아이들 마음도 이해가 되어 받아주고 들어주고 하다 보면 몸을 넘어 혼이 지치는 느낌이 들어. 밤에 번갈아 가며 작업실에 가고 서로 쪽잠이라도 자게 하면 숨통을 유지할 수는 있어. 그러면서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창조성을 이끌어내려고 이것저것 해보는 중이야.
나는 독서모임에 다시 나가고 기관이 아닌 사설(!) 글쓰기 수업도 시작했어. 그리고 대망의 글쓰기 모임을 열었지. 이것 때문에라도 글을 써서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친구들에게 보일 수 있으니 다행이야. 너도 그 멤버니까 더 이상의 이야기는 생략할게. 후후.
남편도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회복해 가는 것 같아. 서두에 밝힌 ‘확언 기법’에도 효과가 있대. 오늘도 우리 부부는 고비가 올 때마다 몇 번이고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소리쳤어.
나는!! 할 수!! 있다!!!
이 글의 제목은 <고백의 힘>이지만 <확언의 힘>으로 마무리가 되네.
맨 처음 했던 확언과 선포가 정말 이루어졌잖아.
네게도 효과가 있으면 좋겠다. 한 번 시도해볼래?
(커버 사진은 너의 조카이자 나의 딸이 만든 작품들이야^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