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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Aug 30. 2023

이에는 이?

생각편의점

이에는 이?




분노 유발 상황이

한둘이 아니지만..


함무라비 법전에 있다는

유명한 그 조문은,

대개 아는 이야기이겠지만,

'정당한 응징'과 함께

가해자와 피해자 간의 분쟁을

효율적으로 막고자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당사자간에 일상적

응징행위가 계속되다 보면,

한쪽이 비자발적 죽음을

마주하도록 해야 끝나겠지요

법전은 그것을 막는 법이랍니다


그것이 합리적이냐, 아니냐는

따져볼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만,

법을 공부한 사람들이

해진 옷처럼 해석한 법으로

누가 신경을 썼는지 잘 모르겠는

표창장 하나를 찾아내

한 가족의 삶을 훼손하는 게

납득해야 할 일인가 싶다가

문득 떠오른 법입니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누구를 위해서인지 모를

*린치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데,

저런 경우에도 대갚음에

그 조문처럼 균형을 맞춰야

하는 건지 모르겠는 겁니다


내가 눈 하나를 잃었을 때,

상대에게는 적어도

두 개의 눈에 피해를 입혀야

직성이 풀린다는 것을

함무라비가 모른 척 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응징이란

내가 이 하나를 잃는 피해를 봤을 때

상대는 서너 개의 이를 잃게 해야

'대가를 받았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입니다


뼈 하나를 부러뜨렸다고

그가 오직 뼈 하나를 작살내려고

나를 공격했다고 결론짓는 건

악을 모르는 판단 겁니다


할 수 있는 공격을 해낸 결과가

그렇게 나왔을 뿐이지

그가 내 목숨까지 노렸는지는

나는 물론, 그 자신 이외에

누구도 알 수 없습니다


대개 그 조문을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알지만,

내게는 뼈와 눈 하나, 이 두 개를

훼손시켰을 수도 있는

가해자의 공격에 대항하여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막아낸 것을

피해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으로,

그 가치가 한참 추락한

요즘 자주 듣게 되는 말,

공정과도 거리가 있습니다


달리 말해, 그가 나를 부수려고

별짓을 다 했는데, 내 뼈를 전혀

건드리지도 못한 경우에는, 내게

호감(?)이라도 보였다는 건가요?

그건 아닐 텐데 말이지요


그 조문에 동의하지 않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내용이,

내가 인간이고

그 역시 인간일 때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인데,

자신이 저지른 잘 못은 잊은 채

"감히, 네가??

네 이빨와 내 이가 같은 이야??"

라며 목에 핏대를 세우는 쓰레기가

드물지 않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응징을 할 때는, 더 이상

나에게 또 다른 해를 입히지 않도록

상대를 완벽하게 제압해야 할 겁니다

'부당한' 보복을 허용하지 않는 겁니다


웬만한 침해는 받아들이라는

과잉방어 논리를 펴는 이들 가운데,


특히 판사의 그것을

헛소리로 생각하고 있는데,

오히려 피해자가 입을 수 있었던

예상피해와 맞닿는 가해자의 방자함을

비난하려 하지 않는 과잉방어 논리는

합리적이지 않아 보입니다


부당한 일을 당하면서도

남이 모르는 게 분명할 때는

대체로 그 일을 묻어두려는 게 -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박동훈의 대사가 생각나는군요 -

대개의 보통사람이

법을 이용하는 방식입니다

그런 식으로 보통사람이

공개적으로 법의 보호를

받지 않으려는 이유는,

시간과 비용의 부담뿐 아니라,

강자에 대한 법의 동정과

그런 강자의 앙갚음 때문일 겁니다


함무라비의 법은 그런

악인에게 악이 뭔가를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는 듯합니

악인의 여러 면모로 볼 때,

'이에는 이'만으로는 모자랍니다

다시 말하지만,

악인이 그 자신도 모르는

일말의 선함때문에

순간 주저하다가 내 눈 하나만

없애버린 건 아니라는 겁니다


그렇다고, 현실을 견디느라

아우성일 수밖에 없는

요즘을 사는 이로서,

차가운 이성을 가지고 어떻게

보복할까 고민하는 경우는

드라마와는 달리, 흔하지 않습니다


악에 장점이 있다면,

선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주도 면밀함일 겁니다

'좋은 게 좋다'는 선도

악과 같은 속성을 가졌다면,

그래서 좀 더 면밀하게

악에 대항해왔다면

평범한 이들이 이해하는

법 정의는 지금보다 나았을 테고,

그 속에 있는 우리의 삶도

지금보다는 나았을 겁니다


악이 법대로 했다고

자신의 정당성을 강변할 때,

선이 선이랍시고 악에

개전의 정을 고려하는 것은

법을 갖고 노는 악의

노리개가 되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함무라비의 법은 합리적인가요


선이 법을 등에 업었을 때

쓸데없이 **겸손해지는데,

법 앞에 선과 악은 없습니다

나아가, 오래 가지는 않지만

합리란 보통, 힘을 가진자의 것입니다


그는 왕이었고, 수많은 이를 죽였지만

자신을 죽일 생각은 없었고,

그 법은 통치의 수단이었을 뿐

자신은 통치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법이 합리적이냐면, 아닐 겁니다

생각편의점에 납품된 생각이 그렇습니다









   *lynch: 정당한 법적 수속 없이 잔인한 폭력을 가하는 것을 일컬음


    미국 버지니아주 판사, Lynch(Lynch C. W.)가

    미국독립전쟁에서 패한 영국인에 대해

    적절한 절차가 없는 즉결재판을 통해

    서슴없고 신속하게 사형을 포함, 가혹한

    판결을 했던 행위에서 파생된 동사라고 합니다


  **김어준이 쓰는 그 '겸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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