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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Aug 11. 2023

사람을 기념하는 것

생각편의점

사람을 기념하는 것



어떤 도시를 가든,

서울 사는 이들이 서울 아닌 곳에

첫발을 띄면서 느끼는 건

촌스럽다는 것일 겁니다

서먹하거나 새롭게 느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도시의 공기에 시달린 덕분인지

촌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겁니다


그런 동네 가운데 하필이면, 연이은

열대야를 가져오는 뙤약볕 아래

원주의 박경리문학공원을 간 것은

다른 곳을 쉽게 갈 수 없게 만든,

설비는 같지만 운영하는 모습은 

촌 동네가 분명한 대중교통 덕분입니다




이미 인간에게 할 짓은 

다 하지 않았나 싶은 

신도 마찬가지이지만,

인간이 그 삶에서 남긴 것은

그가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것'을

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거꾸로 보면,

그가 하지 못하거나 

할 수 없었던 것이 훨씬

더 많았다는 말이 되고,

삶을 가진 우리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며

기념할 만한 '나'를

살고 있는 게 보입니다


그러나 여백과 공백처럼 

하지 못한 것과 해놓은 것의

절대적 가치는 같을 겁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비난할 수 없듯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놓은 것들에 대해서

칭찬할 이유도 없습니다


어쨌든, 그 공원이 만들어진 이유가

'토지'가 어느 해 8월, 그곳에서 

25년의 집필에 마침표를 찍었고

박경리의 삶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시간과 삶을

풍부하게 해 준 모든 작가들에게

그들이 남긴 작품에 맞는

그들의 삶을 기대해도 좋을까요


칸트, 페스탈로치, 김기덕,

린위탕, 이시하라 신타로, 

도스토예프스키, 베르톨루치, 

헤밍웨이가 살았던 삶에

갈채를 받아야 할 당위는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의 삶처럼,

칭찬보다는 비난해도 좋은,

비난해야 할

수많은 순간들을 보게 될 겁니다


요즘 우리 주위에

마침내 가면을 벗고마는 

인간이 드물지 않아

인간을, 그가 죽기 전에는

판단하지 않기로 하고 있어도,

이현령비현령 식으로

궤변도 갖다 붙이는 

비평가라는 이들의

뜻 모를 소리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삶이 그가 남긴 것을

설명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을 겁니다


항상 도덕을 말한 작가가

도덕적이냐고 묻는다거나,

철학을 하는 철학자가

철학적이냐고 묻는 건

어느 사회에서나 

미련한 질문일 겁니다


우리가 사랑에 관해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이

사랑에 빠져 있지 않다는 

방증이 되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는 도덕적, 또는 철학적이어서 

도덕, 또는 철학을 쓸 수도 있고,

전혀 도덕적, 철학적이 아니어서

도덕, 철학을 쓴 것일 수도 있으며,

오히려 도덕, 철학에는 

무관심하기 때문에

도덕, 철학을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진정한 도덕자, 

철학자인지는 몰라도,

인간적이라는 건 틀림없으므로

삶에서 존경해야 할 

이유를 찾는 것은 미련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남긴 것이 

그들의 실제 삶과 어떻게 

연결되지 않는가를 따져보면 

재미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무엇을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는지를 따져보는 게

영리한 짓일지 모르겠습니다


삶을 자신이 정한 틀에 

가둘 이유가 없다는 것을

배울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작가이든 아니든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우리는 결국 

이런 여유를 갖게 될 겁니다


"그러니까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살았겠지."


그 순간,

살아있는 자의  우월감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신을 

만드는 것과 같을 겁니다


그 문학공원에는

관련된 소품과 원고, 

손수 만들어 즐겨 입었다는 옷,

그리고 박경리 삶의 연대기를 

벽 하나에 밝혀놨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말대로

인간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작가를 읽으려면

'토지'를 읽어야 할 수 있습니다

그 전권을 읽지는 못했습니다만,

그가 선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느낌 이외에 거기 자료들에서 

박경리를 읽는 건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족합니다


살아 있을 때의 그가

수많은 인간들을 그려낸 

신이었듯이, 우리 자신이

살아 있는 자의 엄연함으로

그가 남긴 것들로도

그의 삶을 연상할 수 있는

신이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숙소로 가는 길에

내가 사람을 구별하는 방식,

"사랑스러운가, 

사랑스럽지 않은가" 가운데

그를 사진 속의 모습 이외에

맨눈으로 본 적도 없으면서

'사랑스럽다' 쪽에 세우고 싶은

나의 망설임이 괜히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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