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어뉘 Jan 26. 2024

선한 사람 2

생각편의점


선한 사람 2



"우리가 마주치는

모든 사람은 선하다"


이 전제는 대체로 맞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믿습니다


우연히 만나는 이들이

적어도 자기에게는

선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맨몸으로 거리에 나서는 우리가

하염없는 교육 덕분에

갖게 되는 이 전제는

미필적 선에 의해 '확실히'

도외시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져보면, 거리의 양아치도

그 전제를 역으로 이용합니다


(선악과 곡직(曲直)

헷갈리는 이가 많니다만,

선악으로는 곡직판단할 수 없,

그 역으로, 곡직으로도

선악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착함 옳고, 나쁨 그르다

자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거라고 봅니다

위선이나 위악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내게 좋은 것이 선이고, 아니면

악으로 치면 그만 아닌가 하지만,

좀 아는 이들은

선으로 악을 정의해야 하는지,

악으로 선을 정의해야 하는지,

선을 선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

악을 악으로 정의할 수 있는지

아직 논쟁 중이라고 합니다


어떤 정의를 택하든 간에

선한 사람은

내가 될 수 없습니다


선한 사람이 되려면,

당사자가 아니거나

제삼자로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타인이 나의

선함을 말해 주고, 그것을

누군가가 받아들여야 합니다


나 자신이 내게

선해서라기보다는, 나아가

나의 선악과무관하게

내가 아닌 ''에게,

혹은 당신에게 선해야

비로소 선할 수 있습니다


벌써 잊히는 분위기입니디만

내가 고 이선균을

선한 사람으로 생각하는 이유를

말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선하지 않아도

선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선한 사람이라 하는 것은

그가 진정 선한지의 여부와는

거의 관계가 없습니다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사랑받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사랑받느니

사랑하는 것이 쉬운 것처럼

선한 사람이 되느니

선하게 보이면 됩니다


(인간의 역사

선하게 보인 인간이

저지른 악으로

채워진 세월이 깁니다)




우리가 선을 찾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까닭은,

역설적으로,  내 안의 악이

더 강력하다고 본능적으로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가 선을 추구하면서도

사람의 선함에 관해서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이유입니다


그렇게 들여다 보면, 우리는

순자荀子의 주장에 동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미의 젖을 빨기 위해

그의 귀에 가장

까탈스러운 소리로 울어대는 것을

주저하지 않으며 삶을 시작했습니다




며칠 전 한 정치인에 대한

대낮의 테러 때문에

바람 빠진 공처럼 처량합니다


한 인간의 경동맥을 뚫어

즉사를 의도한 것으로 보이는

이번 사건이 좀 더

허망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마주치는 모든 이를 선하다고 믿는

선한 사람의 이야기가 더욱

간절한 시절이기 때문일 겁니다


심리학이나 인류학, 그 외에

인간에 관한 학문을 살펴보면

외부로 드러낸 목적은

선을 연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악을 연구합니다


대개 알고 있는 것인데,

우리가 표면적으로라도

악을 거부하는 몸짓으로 살며,

그걸 연구하는 건

트라우마를 남기지 않는 선에 비해

정신적 장애를 남길 수 있는

악의 월등한 힘 때문입니다


악의 월등한 힘이라기보다는

악의 의외성이라는 게

더 적확하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결국 선이 이기리라고 보는 건

인간이 선해야 한다는 무언의

사회적 압박 덕분이라고 봅니다




행복한 이유의 단순함과 달리,

불행한 연유의 다양성이*

보다 우리의 관심을 끕


아무래도, 세상사는

악이 이룬 서사로

이뤄지는 게 맞을 겁니다

그 악에서 선을 봅니다


어느 날 지하주차장에서

죽은 채 발견된 잡새와 같이,

사람 사는 세상의 햇빛 아래

칼질을 한 잡새는

그래야 할 운명이었다고

주장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악을 서둘러

감출 이유가 없을 텐데요

악은 선을 가르치지 않지만,

늘 선을 보여주니까요


다만, 세상을 악으로 보면,

선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평범한 이의 삶을 선명하게 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아무나였던 그가 느닷없이

사랑스럽게 보일 때처럼 말이지요






*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매거진의 이전글 맛,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