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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뉘 Mar 27. 2024

괴로움의 속사정

생각편의점

괴로움의 속사정




삶이 아무리 괴로워도

언제든 죽을 수 있다는,

다시 말해, 죽음을

해방구로 쓰고 있으면 

삶에 작은 즐거움이 많습니다

왠지 여유를 느끼기도 하고요


그런데, 즐거움은 잠깐 옆에 놔두고,

괴롭다는 것을 들여다보면 역시

삶이 재미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괴로워합니다


심리학적으로는 괴로움은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방어기제일 겁니다

괴로움을 거부하는 이들이

죽음을 생각할 테니까요


그러니까, 괴롭다는 건

사는 대로 사는 것을 넘어

'잘' 살고 싶다는 겁니다

누군가가 괴롭다고 호소하는 건

삶을 유쾌하게 이어가려고 

열심히 머리를 쓰는 것이지요


"나는 살고 싶다"


괴로워하는 이에게는

동정보다 공감만으로도

충분한 위로가 되는데,

그 이유가 그것입니다


여기서 공감은, 이를 테면,

카뮈가 뫼르소를 통해 드러낸

감수성을 상실한 인간이

사회와 개인 사이의 부조리를

죽음 앞에서 인식한다는 것에

감동하는 것과 다릅니다


사람 아래 물리적으로 짓눌리거나

차가운 바닷물에 숨이 막혀

삶을 놓아야 했던 괴로움을 읽으며, 

'그들에게 그래야 할 당위가 있었어? ' 

그들로 인해 남겨진 이들의 

멈춘 현재를 있는 그대로 

읽어주는 게 공감일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괴롭다는 건 

아프다는 것과 다릅니다

흔히 우리가 함부로 섞어 쓰는

'다르다'와 '틀리다'처럼 말이지요

물론, 아프다는 것도

우리의 몸이 제대로 살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것이긴 합니다만


잘 들여다보면,

괴로움은 시제를 갖고 있는데

아픔엔 시제가 없습니다


현재 시제를 가진 괴로움은

그 한 때만 넘기면 

삶과 타협할 수 있지만, 

시제가 없는 아픔은

그 농도가 달라질 뿐

우리 마음 어딘가에 

하염없이 머무는 이유입니다




동정과 공감이 같이 쓰이는 바람에

쓰게 됩니다만, 십 년 된 세월호 참사와

일 년이 훨씬 지나버린 이태원 참사로

남겨진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기가

그리 어려운 건 아닐 겁니다


이태원 참사는 뉴스로 본 게 전부이지만

세월호 참사 때는, 참사 이틀 뒤

러시아의 홀름스크항에서 화물을 싣고

중국 옌타이를 목적항으로 항해 중,

사고 해역 부근인 맹골수도의

남쪽 해역을 항해하며 보았던 

연둣빛의 무심한 바다를 기억합니다


항해선교 좌우 현측(舷側)의

브리지 윙(Bridge Wing)에서 

내려다보는 바다는 

무심히 겨울을 걷어내려는 듯

봄바람 아래 짓 까불고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을 헤집는 바람은

곧 따뜻해지겠다 싶었고

아이들도 즐겨야 할 것들인데,

그에 더해 그들이 더는 즐길 수 없게 된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미안했습니다


그 해역의 수색이 한참 진행 중이었고,

혹시 눈에 띄는 게 있을까 

바다를 살피는 도중

아이의 장난감 하나가 주인 없이

잔잔한 파도와 놀고 있는 것이 보였고,

"그렇게 마구 데려가면 안 되는 거 아닌가?"

바다에게 묻고 나니 눈시울이 

젖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잘' 살고 싶다도 아니고,

살고 싶지만 죽은 자의 괴로움과 

하염없이 남겨진 자의 아픔에 

여전히 공감할 수 없다면

삶이 잘못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매년 4월 16일 즈음 

안산의 화랑공원을 들리려 하지만,

어린, 아니면 젊은 

영정 사진 속의 눈과 마주할 때마다

눈물이 함부로 흐르는 탓에

얼마 전부터는 곁을 잃은 이들에게 

맡기자 하고 있습니다




참사와는 무관하게 

강요되거나 내몰리지 않고

원할 때 죽을 수 있다는 해방감이나

원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괴로움은

같은 감정의 갈래라도 우리가 그것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다릅니다


그래서일 겁니다

삶에는 겸손해져서

죽기 위해 괴로워하는

내가 되지 않는 것만으로도

오늘의 삶을 즐겨도 좋을 겁니다


언젠가도 썼듯이, 우리가

불행에는 너무 관대하고 

행복에는 쓸데없이 인색하지 않았나,

자신을 돌아보면, 대체로 

지금보다 삶을 즐기게 될 겁니다 


괴로울 땐 괴로워합니다

분명히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걸 하다 보면

아픔과 달리, 곧 지나갑니다

궁극적으로 '잘' 살기 위한 노력이므로,

잠시 한 걸음 삶에서 벗어나

그런 노력을 하는 자신을 사랑하고

박수를 쳐줘도 나쁘지 않습니다


나아가, 장자가 아내를 보낼 때의 태도처럼  

삶을 위무할 것도 없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삶이 괴로워도

제대로 된 삶이 분명하고, 이걸

즐기지 않으면, 달리 어쩌겠나 싶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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