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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꽁치 Sep 04. 2016

남편과 함께 보내는 첫가을

결혼생활 이야기


     정성스러운 손길로 한 장의 사진을 조심스레 액자에 끼워 넣었다. '액자에 사진을 끼워 넣었던 게 얼마만이었더라'하고 생각에 잠겨 한참을 거슬러 올라가 보았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아 오래전 언제쯤이었겠거니, 하고 이내 생각을 마쳤다. 다음 사진을 액자에 담아 넣었다. 싱긋 웃고 있는 사진 속 나와 남편의 모습에 나도 덩달아 싱긋 웃음이 났다.



     우리는 봄, 여름, 가을과 겨울 사계절을 함께 보내고 그다음 해 늦은 봄 결혼식을 올렸다. 매년 봄이면 수두룩 하게 받는 청첩장만 보더라도 결혼은 주변에서 꽤 빈번하게 일어나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일인 듯도 하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결혼은 일상적인 어떤 것이라고 하기엔 설명이 부족한 듯싶다.

     우리 부부는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잠드는 것을 좋아하는데, 결혼 후 얼마간은 우리가 만나 결혼까지 한 과정을 돌아보며 그 과정은 퍽 신기한 일이었노라고 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남과 이별, 수많은 이야기 속에서 너와 내가 만나 결국 결혼을 한 것. 결코 마주칠 일 없었던 우리가 만나 만남을 가지고, 지금의 한 가정을 이루 게 된 것.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어찌 보면 너무도 평범한 이야기인 듯 하지만 결혼은 기적 같은 일임이 분명하다고 서로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누군가의 특별한 러브스토리처럼 여행지 어딘가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거나,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길거리에서 특별한 만남으로 연을 이어나간 것이 아닌 너무도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루어진 것임에도 우리는 기적 같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리곤 했다.


    정신없이 결혼 준비 과정을 거치고, 많은 사람들의 축하와 축복 속에 결혼식을 올렸다. 분주하게 결혼식 날이 흘러갔지만 예쁜 옷 곱게 차려입은 남편과 내가 주인공이 되어 행사를 치러내는 일은 꽤 근사했다. 더불어 그 자리를 함께 채워 앞날을 같은 마음으로 축복해준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기에 행복이 가득했다. 결혼식을 마치고 꿈만 같던 신혼여행이 끝나고 나서야 진짜 결혼 생활이 시작되었다. 걱정과 달리 우리 부부는 아직 서로의 생활 습관이 달라 겪는 갈등은 딱히 없었다. 오히려 서로에 대한 책임감과 사랑이 더욱 커져감이 느껴졌다. 이제 막 시작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더욱 단단하고 아름답게 지어져 가길 소망하며 대화로 그 걸음을 막 다져가기 시작했다. 우린 아직 가야 할 길이 멀기만 한, 초보 부부이긴 하지만 그 시작이 따뜻해서 참 좋고, 너무도 감사하다. 생각을 서로 나누며 하나씩 맞춰 가는 과정이나 남편으로부터 받는 고마운 배려들은 연애할 때와는 또 다른, 특별한 사랑으로 가득 물들어갔다.

     우리도 분명 앞으로의 인생에 크고 작은 굴곡들이 있을 거다. 자녀를 낳고 키워가는 과정에서 이기적인 모습이 나타날지도 모르고, 또 이런 모습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로운 모습에 황당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또 예상치 못한 어떤 일들에 서로를 탓하며 힘들어할지도, 우스갯소리로 말하는 것처럼 남편이 출장이라도 가는 날이면 환호성을 지를 날이 올는지도 모른다. 혹 그런 순간이 온다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했던 서약을 기억해야지 싶다. 또 지금의 사랑 넘치는 시절을 떠올리며 다시금 행복이 넘치는, 따뜻한 울타리가 되어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싶다.


     신기하게도, 그리고 동시에 애석하게도 불평 섞인 소리나 불만 가득한 이야기들은 말로 찰지게 표현하기가 쉽다. 또 전염성도 높아서 나도 모르게 나의 주변 사람들 역시 덩달아 불평을 늘어놓게 만드는 힘도 있다. 반면에 행복 가득한 이야기들은 왠지 낯간지럽고 부끄럽기도 해서 좀처럼 표현이 잘 안된다. 또 불평, 불만 섞인 이야기와 다르게 딱히 표현할만한 단어나 방법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아 말로 표현하기 힘들 때가 많을뿐더러 왜인지 자랑하는 것만 같아 조심스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 행복도 나누어야 할 필요가 분명 있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 표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되지 않도록 초보 부부인 지금부터 노력해야지 싶다. 그리고 행복을 나누며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도 덩달아 행복한 일들을 나누고 대화가 풍성해질 수 있었으면 싶다. 마주 앉아 나누는 찻잔에 행복이 묻어났으면 좋겠다.



     얼마 전,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 부케를 만들어주기로 했다. 평소에 꽃을 좋아하긴 했지만, 직접 부케를 만들어 본 경험은 없었기에, 조심스럽기도 또 설레는 마음도 동시에 들었다. 결혼 후 "결혼하니까 좋아?"라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는 자신 있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친구의 가정에도 결혼 생활이 주는 행복이 넘치길 바라며 꽃 한 송이 한 송이에 마음을 담아 부케를 만들어갔다.

     선선한 바람 살랑이는 가을이다. 하늘거리는 가을바람이 코끝을 스친다. 결혼 후, 남편과 함께 보내는 첫가을이다. 이제 막 시작된 가을이지만 남편과 함께 보낼 가을이 벌써부터 설렌다. 특별한 여행지에 가지 않아도, 울긋불긋 물든 단풍을 보러 떠나지 못해도, 마주 앉아 살랑이는 바람에 가을 과일 서걱서걱 깎아 먹으며 나눌 대화들이 벌써 기대된다. 여름옷이 정리된 자리에 가을 옷이 차곡차곡 자리 잡게 될 옷장이나, 여름 이불 대신 포근한 간절기 이불을 덮인 침대, 함께 산책하는 동네의 가로수들이 갈색 옷을 갈아입고 있을, 너무도 평범하고 일상적이지만, 함께이기에 특별할 그 시간들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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