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억될 밤
23개월에 접어든 소망이는 요즘 악기 연주하기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특히 엄마 아빠에게 악기를 하나씩 쥐어주고 셋이서 연주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제는 둘을 나란히 앉혀두고 지휘봉을 흔들며 제법 지휘 흉내도 낸다. 소망이의 이런 악기 사랑은 교회 성탄 발표회 준비를 시작으로 더 커졌다. 매번 마라카스를 두고 영아부실을 나올 때마다 “마카-, 마카-“를 외치며 어찌나 울었던지 오는 길로 인터넷에서 같은 제품을 찾아 주문했다. 마라카스와 북, 탬버린을 함께 주문하고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이 악기세트로 하면 되겠다며 배송받은 악기들을 한편에 잘 보관해두었다.
그리고 문제는 주일 밤을 보내는 오늘이었다. 함께 오늘 영아부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다, 성탄곡 연습도 할 겸 마리카스만 먼저 꺼내 주게 되었다. 마라카스를 처음 보았을 때의 환한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성탄절 곡에 맞추어 함께 마라카스와 탬버린을 연주하며 신나게 율동을 했다. 그 시간이 무척이나 즐거웠는지 이제 악기를 정리하자고 하니 울먹거리며 더 하자고 했다. 곡 수를 정하고 약속한 만큼 하였지만, 그럴수록 울음소리는 커져갔다. 그렇게 두어 번 더 했을까. 이제는 정말 마지막으로 할 것을 충분히 이야기해주었다. 단호함을 눈치챘는지 그동안 보지 못한 악을 쓰며 울기 시작하는데 23개월 만에 처음 보는 내 아이의 모습에 어떻게 해야 하나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분명 유치원에서 수없이 마주했던 순간들이었을 텐데, 내 아이의 문제가 되자 또 다른 기분으로 성큼 다가왔다. 그럼에도 늦은 시간이라 악기 연주를 더 할 수는 없었다. 나도 깊은 숨을 한 번 들이마시고 울음을 그칠 때까지 시간을 두었다. 잘잘못의 문제라고는 생각지 않아 그저 기다려 주었다. 소망이는 이런 엄마의 모습이 당황스러웠는지 내 무릎 위로 올라와 나와 눈을 맞추며 악을 썼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려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쯤 지나 소망이는 서서히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말을 걸었다. 말을 걸어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야기를 듣는 도중 또다시 서러움에 울기도 했지만, 늦은 시간에 연주를 하면 이웃집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악기는 매일 함께 연주할 수 있으니 매일매일 많이 하자고 다독여주었다.
그리고 마라카스와 탬버린에게 소망이 양치하고 세수하는 모습도 보여주자고 이야기하자 호다닥 화장실로 향한다. 양치와 세수도 하고 난 후 요즘 잠자리 도서로 주로 읽는 추피 책도 함께 읽었다. 평소보다 여러 권의 책을 보았는데 그 많은 책을 탬버린과 마라카스도 끝까지 함께 들었다. 책 읽기를 마친 후 평소 일상대로 불을 끄고 잔잔한 음악을 틀어주었다. 몇 곡의 음악이 흐른 뒤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잠자리를 정리해주려 슬쩍 플래시를 켜자 양손에 마라카스를 꼬옥 쥔 채 잠이든 소망이가 보인다. 그 모습에 마음 한편이 묵직해진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오늘따라 잠든 이마를 한참이나 어루만졌다. 원하는 것을 이토록 들어주지 않았던 것은 아마 소망이가 23개월 인생에 처음 겪는 일이었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이렇게까지 악을 쓰며 떼를 부린 적이 없었으니 처음일 수밖에. 처음 겪는 일에 소망이도 적잖이 당황하고 서러웠을 법도 한데, 엄마의 이야기에 끝까지 귀 기울여주고 따라와 준 게 그저 고맙고 기특하기만 하다.
이제 이런 순간들을 자주 마주하게 되겠지 싶어 조금은 걱정이 앞서다가도 소망이의 잠든 얼굴을 가만 바라보고 있으니 지금껏 잘 맞춰온 것처럼 앞으로의 걸음들도 잘 맞춰갈 수 있을 거란 든든한 마음도 차오른다. 소망아, 내일은 악기 연주 더 많이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