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슈페이퍼 제작기
작년부터 노션을 열심히 사용했다. 노션을 본격적으로 쓰게 된 계기는 이직이다. 이직한 회사에선 애매하게 많은 종류의 일을 맡게 됐는데, 기본적으로 내가 할 일을 내가 알아서 잘 챙겨야 하다보니 체계적인 업무 관리가 필요했다. 아무 생각이 없다간 일 흘리고 시간도 버리겠다는 위기감이 있었다.
이런 식으로 일지 적고, 프로젝트 단위 관리하고 미팅이나 관련 정보들도 한 데 모았다. 쓸만한 템플릿이 다양하게 있어서 생각보다 생산적으로 쓰기 좋았다. 웹에 있는 정보들도 그러모아놓고 정리하면 보기 편하더라. 쓰다 보니 노션이 꽤 유용한 정보 공유의 도구로도 쓰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노션은 간단하게 웹에 퍼블리시하는 기능도 지원한다. 미팅 시에 자료를 공유하는 용도로도 괜찮지만, 간단한 페이지를 만드는 데도 꽤 유용하다. 채용이나 소개 같은 간단한 페이지를 만들기 위해서 노션을 사용하는 업체들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기도 하고.
노션은 글로벌 400만 유저가 있고, 한국에서도 수십만의 노션 유저가 있다. 사용자 규모로는 미국 다음이라 노션 한국어 버전도 있다. 유용한 정보 공유 도구인 노션에서 뉴스를 볼 수 있게끔 하면 어떨까? 처음 기획할 때 기대한 것들은 이랬다.
문제의식
- 뉴스 웹사이트에서 이슈 섹션은 실시간 배열만 제공해 소비자들에게 구조화된 기사 소비경험을 주지 못한다
- 대선 기간에 브랜드 가치를 제고할만한 뉴스 서비스 기획이 필요하다
- 사내 리소스를 최소한으로 사용해 제작이 가능한 기획이어야 한다
기대효과
- 3단계로 구성된 대선 기사 분류 보드로 소비자들이 대선 후보별로 전개되고 있는 이슈를 구조적으로 살피고 소비할 수 있게 돕는다
- 2030 사이에서 많이 쓰는 협업 업무 툴의 템플릿을 활용해 해당 소비자층에게 새로움과 익숙함을 동시에 어필한다
- 곳곳에 기사 링크를 배치해 뉴스 콘텐츠 유통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한다
노션에서 가장 활용하고 싶었던 템플릿은 보드였다. 이 기능을 활용하면 시작 전 / 진행 중 / 진행 완료의 3단계로 작업의 단계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전체적으로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파악하기에 좋은 형식이다. 대선 후보에게 산적한 이슈와 논란은 일종의 일거리가 아닐까, 그럼 이슈와 논란을 마치 단계와 우선순위가 있는 일거리처럼 배치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기획했다. 생산성 툴에 익숙한 사람에겐 익숙한 포맷이고, 생산성 툴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한눈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고 판단했다. 노션이 업데이트와 퍼블리시가 용이해 가볍게 해 볼만하다는 점도 노션을 활용하게 된 이유다.
처음엔 비슷한 형태의 페이지를 회사에서도 구축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판을 몇 개 짰었다. 하지만 언론사의 고질적인 문제인 사내 개발 인력의 부족으로 이 안은 폐기되고, 아이디어만 남아 노션만 사용하는 쪽으로 진행하게 됐다.
이런 틀에 맞춰서 넣는 건 전혀 어렵지 않다. 노션 조금만 써 본 사람이라면 다 할 수 있다. 다만 보드 틀 안에 이슈페이퍼라는 링크로 연결되는 정보를 넣으려고 보니, 링크 클릭이 썩 편안하지 않았다. 결국 링크로 넘기기에 쉬운 북마크를 주로 사용하는데, 단 구성과 콜아웃 박스 등을 활용해 보드와 유사한 느낌을 주는 쪽으로 바꾸었다. 이 과정에서 나름 셀링포인트라고 생각한 현장 기자의 한 줄 평을 잘 보이게 배치했다. 가장 중요한 '진행 중 이슈'의 최상단은 강조하기 위해 이미지를 짜서 넣었다.
사실 노션 보드에선 클릭하면 해당 창이 떠서 상세한 내용을 더 확인할 수 있다. 그럼 외부 링크를 쓰지 말고 그렇게 만들면 되는 거 아냐? 할 수 있다. 아직도 나의 일부는 그게 맞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면 '브랜드 가치 제고'라는 애매한 목표만 남을 수 있다. 자체 사이트로 유도하려는 노력을 안 할 순 없었다. 이슈를 본격적으로 설명해주는 이슈 페이퍼를 어떻게 연결하냐가 고민이 되는 지점이었다.
이슈보드의 핵심은 이슈페이퍼다. 대선 후보들이 갖고 있는 여러 논란과 이슈를 비교적 긴 호흡에서 조망하고, 일이 추가될 때마다 업데이트를 진행한다. 이런 식으로 항목을 짰다.
왜 중요한가 : 이슈에 대한 세 줄 요약
담당 기자의 한 줄 평 : 이슈에 대한 한 줄 요약 + 현장감
담당 기자가 추천하는 좋은 기사 : 좋은 기사 소비 유도
등장인물 : 등장하는 인물에 대한 배경 정보 제공
스토리 : 너무 오래전부터 시작하지 않으면서도 이슈의 맥락을 제공하는 수준의 깊은 정보 제공
용어사전 : 관습적으로 쓰고 있는 어려운 단어에 대한 설명
개별 이슈페이퍼는 기사로 발행된다. 그래야 포털에도 나가고 유입에도 도움이 된다. 문제는 이 이슈페이퍼를 어떤 식으로 전달하는가다. 이슈보드와 개별 이슈페이퍼의 전체 목표를 1. 소비자의 쾌적한 정보 소비 경험에 두냐, 2. 사이트 유입 및 페이지뷰 증진으로 보냐, 아님 3. 둘 다를 잡아보느냐 뭐 이렇게 구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중 무난하게 세 번째를 택한다고 해도 다시 1. 노션에 더 최적화시켜서 쾌적하게 만들고 유입의 기반이 될 수 있는 소비자층 자체를 넓힌다 2. 적당히 괜찮아 보이는 판으로 만들고 링크로 넘어가는 걸 얕게 만들어 최대한 효율을 빼 보려고 한다 중에 골라야 한다. 그냥 느낌으로야 1-1을 고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객관적인 증거도 없을 뿐더러 이런 작업 처음 해 봤는데 내 느낌을 세게 밀어붙일 만큼의 경험도 쌓이지 않았다. 결국 목표 3과 수단 2라는 안전한 조합으로 진행하게 됐다.
링크를 많이 심는 조건에서도 최대한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도록 가능한 선에서 노력을 많이 했다. 지도 임베드를 활용해 매일매일 대선 주자의 일정과 장소를 업데이트하고 있고, 디데이 블록을 넣었으며, 여론 조사 결과를 반영한 대선 지지도 그래프도 넣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일 하면서 임베드를 많이 넣어 본 팀장님이 이런 것들을 적극적으로 추가했다.
첫 번째 서비스를 만들고 관련 게시물을 노션 페이스북 그룹에 업로드한 뒤 피드백을 부탁드렸다. 정리된 이슈를 테이블에 태그로 구분해서 아카이빙 하면 어떻겠냐는 댓글이 달렸다. 마침 대선 관련 공약을 검증하는 기사를 만들었는데, 이걸 같이 노출할 수 없겠냐는 내부 요청도 받은 터였다. 노션을 쓰다 보면 다양한 주제로 링크 자료를 모아 테이블에 태그로 분류하는 글을 종종 본다. 그냥 당일 소비되고 끝나는 기사라면 모르겠지만, 공약을 따져보거나 이슈에 대해 차근차근 분석해놓은 기사들은 아카이브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아카이브 페이지인 만큼 아무래도 본 페이지랑 콘텐츠가 중복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이름을 SIDE B로 지었다. 내용은 큰 테이블 하나로만 구성했고, 기사들에 태그를 붙여 필터링해서 볼 수 있게 했다. 다만 이런 기능은 노션만의 기능에 가깝기 때문에 일반 독자에겐 좀 어색할 수 있어서 사용설명서를 만들어 표 하단에 붙였다. 노션 사용자들이 이 페이지를 복제하는 것도 가치가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서 복제 버튼도 살려놨다. 본격적으로 공약 검증이 시작되고 해당 콘텐츠들이 생성된다면 이 페이지에도 함께 가치가 쌓일거라고 기대한다.
만든 거야 여자 저차 만든 건데, 마케팅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만든 콘텐츠 서비스가 잘 유통이 되고 소비가 될까 하는 걱정은 있다. 앞으로도 계속 가져가야 할 고민이다. 대체 이걸 어떻게 잘 팔 수 있을까. 여기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면 기껏 만든 게 다 헛수고가 될 수도 있는 거다. 위의 두 페이지를 내놓긴 했지만, 이 부분의 고민이 너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걸 통감하는 중이다. 기존에 회사가 기사를 유통하는 통로로 이래저래 노출은 시켰지만 효율적인 수단인지는 솔직하게 확신이 없다. 적어도 한 번 들어온 사람들에게 이걸 계속 소비해달라는 말이라도 잘 짜야했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말이 '즐겨찾기에 넣어주세요' 다. 우리처럼 플랫폼을 타는 사업자들은 어떻게는 소비자의 눈에 '찜' 되어야 한다. 배달의민족 가게들도 그렇고,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도 그렇고. 팔로우나 메일 구독이나 깊이감의 문제일 뿐 다 비슷하다. 우리가 운영하는 게 사이트이기 때문에 즐겨찾기에 넣어달라는 게 그나마 플랫폼 의존도를 낮춰볼 수 있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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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한겨레>대선 이슈페이퍼와 SIDE B 즐겨찾기 부탁드립니다 ^________^ !! 피드백 적극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