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0월 말에 정신과 치료를 시작했었다. 처음 정신과를 내원했던 때로부터 3년 만이었다. 이전에 진료를 받았을 때보다 내 상태는 더 심각했었다. 우울, 불안, 자책 및 무기력으로 너무나도 괴로웠었다. 그로부터 1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고, 어제는 드디어 약을 받아오지 않았다. 치료가 마무리된 것이다.
혹시, 지금 상태가 원래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죠?
치료 초반, "저 괜찮아질 수 있겠죠?", "잘할 수 있겠죠?"라고 의심하며 묻던 내게 선생님이 해준 말이다. 그때 내가 인식하고 있었던 내 모습은 질병을 앓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래. 치료를 통해 원래의 나를 되찾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었다.
2주에 한 번씩, 화요일 오후 3~4시 사이에 정신과에 방문했다. 그 시간은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이었어서 좋았다. 한적하고 조용한 공간에서 마음을 차분하게 진정시킬 수 있는 시간들이었다.
사실 진료 시간에 대한 기대가 그리 크진 않았었다. 그저, '세로토닌 수치를 높여줄 수 있는 약처방이나 받아야지'라고만 생각했었다. 매번 내원을 하기 전엔 귀찮음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2주에 1번 15분 정도의 진료 시간은 꽤 큰 안정감과 힐링을 가져다주었다. 지난 2주 간 나의 삶, 마음 상태를 살펴보고, 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진료를 받을 때가 아니라면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선 경험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또 요즘처럼 각자 살아가기 바쁜 세상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것이 어렵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진료실에서의 시간이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내가 진료를 받으며, 매번 연습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정적인 상태 및 감정도 털어놓으려고 하는 것. 사실 3년 전 정신과 내원을 했을 땐 '좋은 모습, 나아진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라는 강박이 있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본인이 돈 내고 하는 건데, 왜 그렇게까지 생각을 해야 하느냐"라고 말도 해주었지만, 그 생각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나는 정신과 진료실에서조차 '상대방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진 못 했지만, 그래도 이번 1년 여의 치료 기간 동안 좋아진 점뿐 아니라 안 좋은 상태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하려고 많이 노력했었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진료 시간이 다 좋았던 건 또 아니었긴 하다. 선생님은 좋은 분이셨지만 솔직히 나와 성향이 많이 다른 분이었다. 나와는 반대로, 현실적이고 이성적인 스타일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개국이 싫다고 여러 번 말했는데도, 마지막 진료 때까지 '그래도 나중에 본인 약국을 열면~'이라고 이야기하는 선생님 때문에 좀 화가 나기도 했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마치 정답이 정해져 있다는 것처럼 느껴져 답답하고 괴로워지기 때문이었다.
사실 어제의 내원은 이제 슬슬 치료를 마무리하기로 선생님과 이야기를 한 뒤라 5주 만의 내원이었다. 이제 치료도 마치기로 했겠다, 생산적이고 즐거운 모습이길 기대했는데 사실 그렇지 못했었다.지난 5주 동안 압박감 때문에 힘들 때도 많았고, 외로움 때문에 몸서리친 적도 꽤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잠 못 든 날 또한 꽤 있었다. 게다가 계속 바빠서 정신이 없었던 터라 방 상태도 아주 엉망이었다.흠, 이런 상태로 치료를 중단해도 되는 거 맞나?
그러나 선생님은 치료의 목표가 '100점'은 아니라고 했다. 어떻게 늘 100점인 상태일 수 있겠냐며(그건 조증이라고 하셨다) 말이다.
그래, 나 혼자서는 부정적인 것으로만 기억했던 지난 5주간을 진료실에서 다시 돌이켜보니, 나 꽤나 기특했다. 일단 러닝크루 회식에 많은 용기를 내 참여했고, 인생 첫 3km를 뛴 지 두 달 만에 인생 첫 5km 러닝을 해냈으며, 연주회 2주 전부터 거의 매일 피아노 학원에 가서 연습도 했고 연주회도 그럭저럭(객관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자ㅠ 내 기준에선 망한 거였지만...) 잘 해냈다. 심지어 배달 어플 삭제 3개월 프로젝트도 성공해 현재는 6개월 프로젝트에 도전 중이다.
잘 못 한 것 같아 괴로워했는데 그 부정적인 감정들조차 모두 내가 부지런히 '새로운 시도 및 도전'을 했다는 증거였다. 신기하게도 진료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니 새로운 관점으로 내 지난 경험들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돌이켜 보면 그러네... 처음 치료를 시작했을 때와 분명 많이 달라졌어. 잠도 이젠 가끔 고민에 깊게 빠져들 때만 빼고는 잘 자고, 방 청소도 훨씬 잘하고 있고 무언가를 꾸준히 해내는 힘도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많이 길러졌네.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도 말이야.
마지막으로 내가 "저는 진짜 제가 잘한 점에는 관심이 없고 부족한 점에만 관심을 가지는 것이 문제예요. 기본 세팅 값이 그러니 지옥인 거예요"라고 이야기했을 때 선생님은 차분하게 '어쨌든 그걸 동력으로 이용해 발전할 수 있는 부분도 있으니, 무조건 안 좋은 것은 아니다'라며 나를 안심시켜 주셨다.
"앞으로는 4~5주에 1번씩 내원해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라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치료를 마무리했다. 마지막 인사는 미소와 함께였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기로 선택한 방식은 '계속해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시련에 부딪치고, 좌절할 순간이 분명 많이 찾아올 것이다. 그때 또 정신과를 찾아갈 일이 생기겠지. 그러므로 이 번이 내 인생 마지막 정신과 진료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지난 1년 여의 과정이 쭉 스쳐 지나가면서, 그 과정에서 변화한 내 모습을 바라보며 뿌듯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