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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아래 Aug 25. 2021

뭐든 해도 괜찮은 48시간이 남아있어

반성문 쓰는 삶


길고 긴 방학이었다. 뭐든 해도 했었을 2달을 말 그대로 뭘 했는지 알 수 없이 허비했다. 그래도 간간히 글을 쓰는 노력, 동영상을 찍고 편집해서 유튜브에 올리는 새로운 시도, 매일은 아니어도 빼먹은 주간은 없이 운동을 하러 ‘다닌 것’… 오 그리고 넷플릭스.


7월 말, 도쿄올림픽의 너무나도 기괴한 개막식을 본방으로 보는 바람에 하나의 클립으로 시작된 동영상 시청은 알고리즘을 타고 거의 한 달 넘게 중독에 가까운 유튜빙에 빠지게 했다. 덕분에 동영상도 찍어보고 편집도 하게 되었지만… 몰라도 되는 내용을 보고 또 보고 좋은 것과 나쁜 것, 거짓 뉴스들과 검증되지 않은 정보들을 걸러내고 그 와중에 물론 좋은 채널들도 찾아내기도 했다만… 역시 너무 과하게 몰입했다. 일은 안 하고 멍청한 시간만 보내고 있어서 우울과 자괴감에 빠지는 것인지, 우울과 자괴감에 빠져서 멍청한 것들에 빠져 헤어나고 싶지 않은 것인지…


드디어 거의 두 달만에 케이터링 일을 하는 날이 다가온다. 토요일 오후 작은 가족모임용 박스 케이터링을 해서 보낼 예정인데 생각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고 두통에 난독까지 오는 이것이 바로 공황인가 싶은 상태였는데… 역시 사람이 시간 맞춰 밥을 먹고 몇 달 동안 귀찮아 미루던 국민연금 환급금 신청도 끝내고 차분히 앉아 견적서 메뉴를 찬찬히 살펴보고 있으니 “어머, 한 달 전의 일하기 싫은 나 최선을 다해 메뉴를 짰구나…” 싶다. 간만의 일이니 열심히 해야지.


오늘도 의미 없이 중문까지 드라이브 다녀오면서, 그중 하나쯤은 대박 아이디어일지도 모르는 수 만 가지 스쳐가는 생각들, 다 담아두고 기록하고 검색하고 싶어 정말 힘들었다. 잡채 양념 검색해서 메모를 끝내는 그 짧은 순간에도 몇 번을 멈추고 산만하게 이것저것 동시에 하고 있는지. 예전에 이런 나를 돌아보면서 나는 멀티태스커라 이렇게 해서 시간이 좀 걸려도 여러 개의 결과가 동시에 나올 거니까 괜찮다고 생각을 했었지. 그러나 역시 나는 이제 노안도 슬슬 오는 것 같고, 뇌용량도 슬슬 작아지고 있는 게 느껴지니까, 이제 하나의 일, 생각에 집중해서 순차적으로 끝내기 위해 무척 애를 써야 해. 아니 이런 걸 애써서 할 일 인가. 네 적어도 지금의 나는 그렇습니다.


괴로운 마음, 비참한 기분, 내가 나를 갉아먹는 상황에 대한 나의 태도는 비난과 질책이 아니고 포용이 되어버렸다. 오죽하면…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측은지심으로 토닥이는 마음이랄까. 지금 당장 이 시간부터 토요일 케이터링 준비를 시작할 금요일 오후까지 약 48시간의 시간이 남아있고, 이렇게 바람 부는 창 밖을 바라보며 마음 정리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왠지 기특해져서 앞으로의 48시간도 지금처럼 지낼 수 있길 바란다고 또한 나 스스로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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