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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아래 Aug 17. 2021

내 우울을 희석하지 않아도 돼

반성문 쓰는 삶

오랜 우울로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심각히 체감하는 요즘이다. 이 와중에 몇 주 전 J가 제주 와서 내 집에 같이 머물던 때에 더이상 "좋은게 좋은 거지" 마인드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이 되면서 나도 모르게 꾹꾹 눌러온 감정을 터뜨리고야 말았다. 눈치빠른 그녀는 내 기분을 알아챘겠지만 동시에 모른척하며 넘어가 주었고, 그녀가 돌아간 이후 나는 더 이상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아 더 깊이 깊이 동굴을 파고 들어가 숨어버렸다.


그러나 그런 맘으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 반성문 쓰는 삶을 영속하기 바쁜 내게 사촌동생이 놀러오겠다는 연락을 했다. 결혼한지 10년정도 되고 아이도 둘이나 있는 내 사촌동생은 한 때 나와 일하는 파트너 이기도 하고 제발 결혼 천천히 하고 해외로 진출해서 멋진 사진작가가 되었으면 소원했던 멋쟁이 동생이다. 어느 날 갑자기 결혼을 하더니 전공을 바꿔 신학대학에 새로 진학하여 목회를 준비하는 전도사가 된 이제는 “이 녀석”이라고 막 부를 수 없게 된 나의 사촌동생이 가족없이 홀로 휴가를 오겠다고 한다. 그것도 수원에서 출발하여 배를 타고 제주로 바이크를 타고서. 친 형제가 아닌 이상 한 공간에 같이 기거 하기가 그래서 다이빙샵 게스트하우스에 방을 잡아주었고, 세상만사 다 귀찮아 동굴에서 나가기 싫은 나는 한편으로는 동생이 그냥 알아서 지내다 가주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애정했던 지금은 큰 키에 살이 붙어 그냥 큰 아저씨가 되어버린 여전히 내겐 귀여운 우리 동생을 챙기다보니 기분이 좀 나아지더라. 비가 멈춘 틈을 타서 동생이 타고온 베스파에 둘이 올라 표선부터 상천리 까지 바이크로 다니며 산길을 걷고 슾지를 산책하고 밥을 먹고 커피도 마시면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아도 그냥 편안한 마음이어서 위로를 받는 기분이었다. 전도사인줄 알았는데 어느새 목사안수를 받아 새벽예배에 말씀 준비도 한다고 하니, 나는 이 기회에 목사님에게 내 일방적인 우울을 털어놓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새 돌아가는 전날 저녁밥을 먹다가 “내가 그 동안 이유도 없이 너무 힘들었었쟈나”라고 덤덤하게 얘기하다가 순간 울컥하고 눈물이 슬쩍 나와버렸으니까.


그리고 왜인지 늦은 밤에도 숙소도 돌아가지 않고 뭔가 더 대화하려는 듯 뜸들이듯 천천히 내 푸념을 들어주던 동생은 결혼생활이 너무 힘들어 우울증이 왔노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과묵하고 착한 동생은 가정을 위해 여러가지를 감내하고 참아내며 지내고 있었다. 목사의 사모역할을 해야하는 아내는 유전적인 뇌질환이 발병하여 가사도 돌보지 않고 무기력하게 지내는 것 같았다. 아이들도 잘 돌보지 않아 아이들은 뭐든 스스로 깨쳐나가느라 느리게 자라고 있는 것 같았다. 목회를 위해 학업도 하면서 생활도 해야하는 동생은 수업이 없는 날은 생업을 하고 야간에 대리운전까지 하며 스스로를 몰아치며 생각을 덮어가며 지내왔던가 보다. 그러니 제주에 온 동생의 얼굴을 마주한 순간 모른척 지나고 싶었던 마음보다 단 하루 몇시간이라도 재밌는 시간으로 함께 보내주고 싶었었다.


돌아가는 동생이 안스러웠다. 해결할 수 없는 현실을 다시 대면해야 할텐데. 단 며칠의 휴가로 그 마음이 위로가 되었을까. 아무리 목사라도 그 이전에 사람인데 본능적인 감정을 다스리기 힘든 건 목사 할아버지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련만. 그 앞에서 나는 실체도 없고 대상도 없는 외로움에 기반한 칭얼거림을 우울이랍시고 고백하며 어줍잖은 눈물을 보였는가 싶고 동시에 동생의 입장에 이입하면서 들어주는 것 말고 해줄게 1도 없는 무력함이 미안해져버렸다. 그리고 습관처럼 그래 동생에 비하면 내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야. 우울하지 말아야지. 우울하면 더 우울한 사람들에게 미안한 일이야. 아니 세상에 불행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 라는  극복의지로 머릿속이 채워져 갔다. 그렇게 내 우울은 아무것도 아니니 떨쳐 버리라고 그래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종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후 며칠동안 마음을 가라앉히고 한결 진정된 상태로 나 자신을 바라보니,  보편적 기준의 행과 불행, 복과 박복을 비교하여 내 감정을 외면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닌 막연함으로 시작한 우울이라도 내 사고와 생활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면, 그 또한 소중히 돌보아 다독여 주어야 할, 다독임 받아야 할 감정이 아닌가. 타인의 우울을 보고 연민으로 내 우울을 극복하는 것도 물론 방법이겠지만, 최소 그 우울이 중첩되어 더 큰 무게로 돌아오지만 않아도 다행이다.


동생의 고민들이 나와 나눈 그 짧은 대화로 해소될리 만무하지만, 덕분에 내가 나의 감정을 사뭇 더 객관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된 것처럼 최소 인간 대나무숲의 역할이라도 되어 주었다면 좋을 일이겠다. 나는 이야기를 나누며 동생의 상황이나 감정에 꽤나 이입을 해버려서 그 마음을 먼저 헤아리느라 내 고민을 덮어버리려 했었다. 우울의 크기를 비교했기 때문이다. 각성하고 타인의 감정과 내 감정을 나누어 바라볼 수 있게 되면서, 동시에 응원의 마음으로 동생이 행복해지기를 바라게 되었다. 아니면 동생이 우울을 벗어날 때 까지 내가 동생생의 감정을 대신해서 끙끙거리며 지내야 했을 것이다. 그러니 다시 내 사소한 우울로 돌아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내 자신에게 집중하며 헤쳐갈 방법 또한 긍정적으로 돌아보게 된 것같다. 내 우울을 남의 것으로 덮거나 그 보다 가볍게 희석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좀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그 우울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어떻게 덜어낼 수 있을지를 고민 할 수 있게 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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