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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영 Oct 30. 2022

그레이스 대성당

샌프란시스코 5

  유럽에는 많은 유명한 성당들이 있다. 오래된 역사를 갖고 있는 성당, 작은 박물관과 함께 기프트샵이 마련된 성당,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성당 등 종류도 다양하다. 유럽 여행할 당시에는 많이 갔었는데 일단 미국에는 그런 성당들이 많이 없었기에 여행하는 동안 ‘Places to go’ 리스트에 그런 성당은 한 곳도 없었다.


  샌프란시스코로 넘어와 종이지도를 보며 가 볼만한 곳인데 놓치고 있는 곳이 혹시라도 없는지 살피던 중, 숙소 뒤쪽에 차이나타운을 지나 몇 블록만 가면 그레이스 대성당이 있는 걸 보게 됐다. 차이나타운 쪽으로 갈 일도 없고, 성당을 굳이 안 가봐도 되지 않냐며 동생에게 확인차 물으니, 동생은 가보고 싶다는 대답을 대신했다. 고딕 양식에 화려한 스테인 글라스로 이루어진, 건축적으로 분위기부터 압도한다는, 책에서나 보던 그런 성당을 실제로 가 본 적이 없다고 가보고 싶다고 했다. 사실 오늘은 버스 타고 동네를 벗어나 꼭 가보고 싶었던 편집샵을 구경하고 그 동네에 아기자기한 매장들이 많다고 하니 해지기 전에 그 동네를 다녀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성당을 다녀 올 시간은 되지만 방향이 정반대라 번거롭게 느껴졌지만 성당을 갈만한 날은 오늘뿐이었고, 이번 여행은 혼자 하는 여행이 아니므로 내가 가고 싶은 곳 한 곳, 네가 가고 싶은 곳 한 곳.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숙소 나와서 버스정류장과는 반대방향의 길로 갔다.


  거리가 그리 멀지도 않고 날씨도 화창하고 좋으니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같은 거리라도 길이 평지가 아니라면 얘기가 달라지는 법. 조금만 지나면 괜찮겠지, 괜찮겠지, 하던 길은 가면 갈수록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로 이루어져 있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이미 많이 와버렸고. 그때 걸으면서 잠시 잊고 있던 게 생각났다, “아, 맞다. 샌프란시스코는 언덕으로 이루어져 있지.” 이게 무슨 바보 같은 고생이냐며 그 오르막길에서 한 번씩 어이없음에 웃음이 터져서 멈춰 서서 폭소하기도 하고, 한참 오르다가 뒤돌아 봤을 때 엄청난 경사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경치에 감탄도 했다. 그 오르막길이 끝나는 곳에 그레이스 대성당이 위치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성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고요함과 향과 나무 냄새가 어우러진 듯한 그 성당 특유의 실내 향. 그리고 후각에 이어 그동안 많은 성당들을 가봤지만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각적 광경. 언덕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이유였을까, 밖에서 비추는 햇빛은 스테인 글라스를 통과해 현란한 색들을 실내 기둥과 바닥 곳곳에 퍼뜨려 놓았다. 스테인 글라스 자체가 그런 효과를 내는 유리라는 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그 넓은 면적을 화려하게 비추는 걸 직접 보니 그건 또 새로운 느낌이었다. ‘난 성당 많이 가봐서 안 가도 되는데, 어떤 분위기인지 대충 아니까 안 가볼래.’ 하던 부끄러운 내 생각과 함께 예상 못한 광경 앞에 멈춰 서 있는 사이, 동생은 그 빛을 향해 더 가까이 들어섰다. 동생이 이런 대성당을 떠올렸을 때 나보다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릴 생각 하니 그 오르막길을 힘들게 오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획에 없던 목적지가 이렇게 또 오래 기억에 남을 순간을 선물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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