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단어: 관용
관용, 寬容
남의 잘못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함. [국립국어원]
게으름을 피웠다.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은지 몇일이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안 쓰고 있다. 나한테 나는 너무 관대하다. 가끔은 이런 내가 밉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 배우 장동건이 TV광고에서 "자신에게는 엄격하면서, 타인에게는 관대한 사람"이 되자고 한 문구가 생각난다.
관대하는 것은 남을 너그럽게 수용한다는 것이다. 이 글의 주제와 어울리는 것은 <관용>보다는 <관대>가 맞을 것이다. 내가 처음 관용이라는 단어를 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었다. 독서토론 동아리를 하면서 "홍세화" 작가의 글을 많이 읽어볼 수 있었다. 특히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에서는 <똘레랑스 tolérance> 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였다. 당시에 우리 동아리에서는 관용이라고 번역을 하여 토론을 진행하였다. 우리나라의 <정>과 <한> 처럼 프랑스의 고유 정서를 상징하는 단어였다. 프랑스는 시민운동으로 자유를 쟁취한 나라답게, 시민의 자유를 무한정 보장을 한다. 각 개인이 갖고 있는 사상이나 철학을 존중하고 억압하지 않는다. 똘레랑스는 시민 자유의 상징이다. 타인이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수용하고, 이해하며 존중하는 것이 똘레랑스에서 나타는 프랑스의 시민의식이다. 하지만 이런 똘레랑스로 파리는 많은 사상가, 종교인이 유입이 되어 늘 테러에 표적이 되지만, 파리시민들은 아직도 그 위험을 감수하며 똘레랑스를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서로의 생각 차이에 대한 관용이 부족하다. 지역갈등, 좌우갈등, 세대갈등, 남녀갈등 등 많은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표를 결집시키고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오래 전부터 우리 정치의 문제였다. 갈등은 집단 간의 세력 대결로 번져가고 있다. 최근에는 탄핵 정국 당시에도 큰 유혈 사태가 날까봐 우려스러웠다. 이런 갈등의 조장은 정치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국민적 인식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서로의 사상에 대한 존중은 찾아보기 힘들다. 고등학생 시절, 많은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낀 점은, "어른들은 자신의 생각은 죽어도 바꾸지 않는다."였다. 어린 나이에는 "저런 어른은 되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충분히 타인의 의견을 듣고, 합리적인 것에 대해 수용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일부 친구들은 내가 타인의 의견을 수용하는 모습을 보고, "너 참 줏대없구나."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였다. 내가 소심해서 그런 말에 많은 상처를 받았다. 한 두번 듣다보니 자존심도 상하기도 해서, 귀를 닫게 되었다. 요즘에는 그런 말에도 크게 상처받지 않고, 다시 똘레랑스를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똘레랑스에 대해서는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갈등만 일어나고, 서로의 의견을 듣지 않는 현재 우리 사회에 대해 매우 걱정된다. 타인의 말을 경청하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수용할 수 있는 사회로 거듭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내일자단어: 선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