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샘 Aug 24. 2022

노화

이비인후과에서 미래의 나를 보았다


며칠 전 갑자기 왼쪽 귀가 들리지 않기 시작했다. 병원에 가보니 ‘돌발성 난청’이라고 한다. 뚜렷한 이유가 없이 청력이 떨어지는 병을 말한다. 계속 높은 곳에 있는 것처럼 귀가 먹먹했다. 그렇게 사랑스러웠던 딸아이의 재잘거림이 귀울림으로 너무나 괴롭게 느껴졌다. 다행히 5번의 고막 주사와 고용량의 스테로이드 처방약 복용으로 발병 2주 후부터 다시 귀가 들리기 시작했고, 어제 청력검사에서 다시 정상 판정을 받았다. 다시 청력을 회복하지 못할 확률도 꽤 높기 때문에 정말 다행이다. 


일주일간 매일 종합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환자의 대부분은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이다. 노인분들은 검사나 안내의 과정이 매끄럽지가 않다. 청력검사 지시 자체를 잘 못 듣거나 들리더라도 이해를 못 하신다. 어떤 날은 청력 검사하는 직원과 할아버지 간에 다툼이 있었다. 청력검사 중에 어음명료도 검사가 있다. 검사자가 말하는 단어를 환자가 따라 해야 하는데 이 검사에 대한 설명 자체를 할아버지가 이해 못 해서 서로 언성이 높아지더니 결국 큰 소동이 일어났고, 경호 직원들까지 올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너무 화가 많이 나셔서 혹시 혈압에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양쪽 모두가 이해가 갔다. 귀가 안 들리고 이명까지 있다면, 누군가의 말을 듣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기도 하고 못 알아듣는 게 스스로도 짜증 난다. 검사자 입장에서는 환자는 계속 밀려있는데 노인 환자에게 말 한마디 한마디 이해시키는 게 너무 힘들다. 텍스트나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해도, 노인 환자는 눈도 어둡고 인지능력이 저하된 경우도 많다. 그래서인지 이비인후과에서는 병원 직원뿐만 아니라 보호자로 따라 나온 자식들도 부모들한테 짜증 내는 일도 많이 보였다.


그런 광경을 계속 보니, 만약 나에게 노화가 닥쳤을 때 그 상실감을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아득한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잃어가는 삶에서 사람은 어떻게 존엄을 유지할 수 있을까. 호모 헌드레드 시대에 나는 무얼 준비할 수 있나. 나의 청력은 돌아왔지만, 청력검사 중에 자기를 무시한다며 고함을 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자꾸 눈앞에 아른거려서 마음이 개운치만은 않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