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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coming Jane Dec 02. 2019

빨간 등대가 사는 곳, 페기스 코브

당신은 등대 같은 사람인가요? 배와 같은 사람인가요?




캐나다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횡단하기로 한 후 그 마지막 도시, 할리팩스에 왔다. 그동안 거쳐 온 동부의 다른 도시들과는 다르게 이곳은 빅토리아와 같이 바다에 인접해 있었다. 습하고 더운 기운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건조하고 시원한 바람이 도시 전체에 내려앉았다. 대신에 빅토리아처럼 아기자기한 영국마을 느낌이 아니라 큰 배가 들고 나가는 항만도시의 느낌이 강했다. 그동안 더위에 지쳤었는지 할리팩스에 와서야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 빨간 등대를 보고 싶어 했다. 북 대서양이 끝없이 펼쳐지는 바다 곁에 외로이 서 있는 등대가 ‘페기스 코브(Peggys Cove)’라는 곳에 있다고 했다. 



페기스 코브는 할리팩스 시내에서 40분정도 차를 타고 나가야해서 빨간 차를 렌트해 빨간 등대를 만나러 떠났다. 해가 질 무렵, 오렌지 빛깔이 하늘색 캔버스에 서서히 물드는 시간, 수풀이 우거진 시골길 끝에 등대가 보였다. 흰 기둥에 빨간 모자를 쓴 것 같은 등대가 덩그러니 있을 줄 알았지만 그 등대가 서 있는 화강암 지형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빙하의 이동과 북대서양의 거친 파도가 조각한 바위의 모양은 인간이 사포로 매끌매끌하게 다듬은 것 보다 더 예쁘고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바위를 향해 몸을 부수는 파도의 물보라 때문에 바위의 색깔이 실시간으로 바뀌어 더 다채로운 풍경이 연출됐다.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이 파도소리와 함께 윙윙거리고 붉은 태양은 아까보다도 더 아래로 내려와 바다와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만나보고 싶었던 빨간 등대는 이 그림 같은 풍경을 호들갑 없이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만약 이 곳을 지키는 등대지기가 되어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에 두 번 태양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풍경을 바라보고 해가 다 지나간 후에는 밤 속에서 누구의 방해도 없이 소설 한 권을 읽어 낼 수 있겠지. 춤추는 바다와 바람을 반주 삼아 노래를 부르고 시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이 풍경을 보는 것처럼, 누군가가 그리워 질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는 엽서를 보낼 수 있는 작은 우체국이 마련되어있다. 빨간 등대 모양의 소인을 찍어 바다 끝에서 내 마음이 닿는 곳으로 편지를 보내지 않고는 견딜 수 가 없을 것이니까. 그리고 답장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매일 바다 끝을 물끄러미 바라보겠지.   


   

다시 생각해 보니 나는 등대지기가 되고 싶지 않다. 왜냐하면 등대는 늘 한곳에 머물러 길을 알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만히 있기 보다는 바다 끝에서 출항하는 배처럼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그곳에서 또 다른 먼 곳으로 그렇게 매번 새로운 곳을 만나고 싶다. 아마 마로는 배 보다는 등대에 가까운 사람이겠지만 배와 같은 나를 위해 이 여행을 시작했을 것이다. 땅을 지탱해서 단단히 서야하는 등대는 지금 재미있는 배 위에서 흔들거리며 매일 새로운 것들을 보고 있다. 등대는 이 여행이 끝난 후에 과연 다시 뭍으로 돌아가고 싶을까?      



결국 우리는 등대이거나 배 일 것 이다. 배인 사람이 등대가 되려하면 괴로울 것이고 등대인 사람이 배가 되려하면 버거울 것이다. 등대는 바다 끝에서 길을 밝혀주고 배는 떠났다가도 다시 돌아와서 재밌는 이야기를 등대에게 들려주면 되겠지. 부부든 친구든 어떤 관계에서든 서로가 같아질 필요는 없다. 등대는 등대의 일을, 배는 배의 일을 하면서 때론 페기스 코브처럼 아름다운 곳을 만나 함께 낙조를 바라보면 그만일 것이다. 







*Today's Place: Canada, Halifax 


캐나다의 왼쪽 끝이 빅토리아섬과 맞닿은 북태평양에서 시작한다면 캐나다의 오른쪽의 북대서양과 만나는 지점에 할리팩스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북대서양을 건너면 바로 영국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인지 영국인들이 처음 이주를 했던 ‘루넨버그’라는 19세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도시도 이곳에 있습니다. 또한 독일인들 이주해서 살았던 3개의 교회로 유명한 ‘마혼베이도 루넨버그와 함께 둘러보기 좋은 근교 도시입니다. 더불어 ‘빨강머리 앤’ 소설의 배경지인 ‘프린스 에드워드 아일랜드’도 할리팩스에 왔다면 들려볼 수 있습니다. 빨강머리 앤 만화에 배경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안에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실제로 만나볼 기회입니다할리팩스는 어업이 발달한 도시여서 질 좋은 해산물과 바닷가재도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먹어볼 수 있습니다. 퀘벡에서 비행기를 타거나 자동차로도 이동할 수 있지만, 이곳까지 오기가 쉬운 것은 아니기에 미국 동부, 캐나다 동부를 여행할 때 들려보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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