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가르쳐 준 2022년 새해 다짐
2021년 5월 10일 저녁,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의 하마스가 이스라엘 예루살렘을 향해 로켓을 발사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이스라엘 역시 가자지구에 로켓을 발사하며 원래도 앙숙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다시 한번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집트에 살고 있지 않았다면 알지도 못했을 먼 나라의 뉴스였지만 티브이를 틀면 나오는 알자지라(Al Jazeera) 방송에서는 연일 Breaking News라는 타이틀을 내보내며 지금의 상황을 보도하고 있다.
이집트에 살기 전까지는 중동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지도 어디에 어떤 나라들이 있는지도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곳에 오고 나서 뉴스를 접하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조금씩 중동에 관한 책과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지금 일어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 분쟁의 씨앗은 영국이 1차 세계대전의 승리로 그은 잘못된 국경선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이야기를 흥미 있게 보여주는 영화가 <아라비아의 로렌스> 이다. T.E 로렌스(T.E Lawrence)라는 영국 장교가 아랍 민족들을 도와 그들의 독립을 돕는다고 했던 일이 어떻게 보면 영국의 제국주의를 더욱 공고히 하고 결론적으로는 아랍민족을 배신하는 행위로 이어지는 것을 그의 어지러운 심리와 함께 보여준 영화다.
*아래 그림은 Project Gutenberg에서 발행한 Ebook 'With laurence in arabia'의 표지를 직접 다시 그려본 것 (그림은 제가 그렸지만 Origin은 Project Gutenberg에 있습니다.)
CG 없이 그려낸 장대한 사막 장면 만큼이나 내 마음을 곱씹게 했던 장면은 오히려 작은 에피소드였다.
로렌스가 전투에 이기기 위해 네푸드 사막(Nefud Desert)을 가로질러야 했을 때 ‘가심’이라는 아랍인이 무리에서 사라지게 된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낙오자가 발생할 가능성은 충분했기에 족장은 그것이 신의 뜻이니 가던 길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로렌스는 “정해진 것은 없다. (Nothing is written.)" 라며 가심을 찾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간다. 먹을 물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그는 끝내 사막에서 가심을 구해오고 아랍 사람들에게 영웅으로 추앙받게 된다.
그런데 목적지를 목전에 둔 상황에서 여러 부족과 연합을 해야 하다 보니 부족들 사이에 충돌로 한 병사가 죽게 되었고 성공적으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서 분쟁을 봉합해야 했던 로렌스는 분쟁을 시작한 주동자를 죽음으로 처벌하고 분쟁을 덮고자 한다. 그런데 분쟁을 일으킨 사람이 다름아닌 자기의 생명을 걸고 사막에서 구해온 ‘가심’임을 알게 된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의 손으로 가심을 죽이게 되고 괴로워한다. 힘들어 하는 그에게 족장은 원래 죽을 사람이었다며 "It was written." 이라고 그를 위로한다. 운명이라는 것을 인간의 열심히 거스르려 했던 로렌스가 아랍인의 땅에서 어쩔 수 없는 운명의 힘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그 일은 로렌스 장교에게 이상과 아랍의 현실 사이에 괴리를 느끼게 한다. 동시에 자신이 아랍인들을 구원 할 수 있다는 선지자라는 환상과 마음속에 잠자던 전쟁광으로서의 속성까지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된다. 뒤로 가면 갈 수록 자신의 욕심과 아랍인들을 구원해 내지 못한다는 현실이 부딪혀 미쳐가는 그의 심리를 볼 때면 의지와 결기로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내 머릿속엔 한국인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한 문장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안되면 되게하라.’ 근대에 와서 서구주의의 사상을 수혈받은 우리에게는 어떤 것도 정해지지 않았다는 로렌스의 말을 넘어서 원하는 것을 이루고야 말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다. 진심으로 이런 마음가짐 덕분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이렇게 빠른 시간 동안 선진국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로렌스 장교만큼 인생의 꿈과 현실의 괴리 속에 뼈저리게 갈등하는 사람이 많다고도 생각한다. 이 정도 바라는 것은 욕심도 아니라고 생각하고 열심 없는 삶이 마치 죄스럽기까지 느껴지는 문화를 생각해 보면 우리에겐 어떻게 해서든 의지대로 해 내겠다는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Nothing is written.'과 'It was written.' 사이에서 당신은 무엇을 믿고 있는가? 이집트에 사는 짧은 시간 동안 이곳 사람들이 ‘인샬라’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의 뜻대로 되겠죠.’ 아름다운 말이기도 하고 철저히 신에게 맡겨진 운명을 믿는 말이기도 하다. 반면에 상황과 환경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방어적인 말이기도 하다.
약속을 지키지 못해도 자동차 접촉사고가 나도 '인샬라'라는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기도 한다.
멀쩡했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절름발이가 되는 큰 사건에도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꽤 있다. 기도하고 절을 해서라도 신의 뜻이라도 바꿔보겠다는 우리나라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나도 한국인이기에 새해가 된 후 하고 싶고 해야만 하는 리스트를 작성해두었다. 글쓰기를 좀 더 주기적으로 해보기 위해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2022년 경제 전망도 공부해 보려고 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한 가지 큰 마음가짐을 얹기로 했다. 내가 목표한 것들과 해야 할 것들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아도 '인샬라'의 마음으로 살아내기. 흔히 이집트에서 말하는 방어적인 의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삶의 한계를 수용하고 다시 도전하기.
목표를 세우고 성장하는 마음은 중요하지만 내 의지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꿈이나 소원이 아니라 욕망이 되어버린다. 왜냐하면 삶에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집트인들에게 ‘안되면 되게하라.’라는 정신이 필요하듯 우리에게도 ‘인샬라’가 필요하다.
인생의 이루어지지 않은 많은 일이 당연하다고 받아들이는 것
어떤 일은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도
내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더 좋은 일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로렌스처럼 이상주의적인 욕망과 장대한 꿈이라고 생각했던 환상 사이에서 미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