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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허실 Jan 15. 2022

엄마의 김치

맛은 기억이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내게는 결혼 전까지의 엄마의 김치가 그랬다. 김치의 맛이 집집마다 다르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엄마의 김치도 다른 집 김치와 맛이 다르다는 것, 그리고 엄마의 김치가 나에게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치라는 것을 결혼하고 나서야 '알았다'.


엄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늘 바쁜 삶을 쪼개서 살아오셨기에 내 기억으로는 소위 말하는 김장다운 김치를 담으신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집에는 언제나 김치가 있었다. 엄마의 삶을 잘 알고 계시는 지인들이 김장 시기마다 김치를 보내주신 적도 있지만 내가 기억하는 시원하고 아삭한 맛의 엄마표 김치는 늘 집에서 먹을 수 있었다.



얼마 전에 처음으로 엄마와 함께 김장을 했다. 아내의 제안으로 엄마에게 김장을 함께 하자고 이야기했을 때 처음에는 바쁠 텐데 그럴 필요 없다며 극구 사양하셨지만 내 느낌이 맞다면 엄마 표정에는 묘한 설렘이 서려있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그동안 엄마의 음식을 무심하게 먹던 나의 모습이 떠올라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김장 당일, 인근 농수산물 시장에 들러서 빛깔 좋은 수육용 고기와 신선한 굴, 백골뱅이를 사서 엄마 집으로 향했다. 엄마는 평소보다 더 반가운 표정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셨고 엄마의 진두지휘 아래 3시간 동안 즐겁게 대화를 나누며 김치를 담글 수 있었다.


김치를 모두 담그고 저녁상에 함께 앉았을 때 웃음꽃이 핀 엄마의 얼굴을 보며 나도 모르게 마음의 울렁거림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엄마의 삶을 궁금해한 적도 없었고 엄마의 고민과 생각, 소소한 삶의 경험을 나눈 적도 별로 없었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과 함께 매년 엄마와 함께 김장을 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늘 먹던 음식이 가끔 먹는 음식이 되었을 때 그 맛을 제대로 이해하고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하지만 삶의 소박한 진리인 것 같다. 지금의 나에게 엄마의 음식은 먹는 순간에도 늘 그리운 기억이다. 언젠가 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 한 구석이 아프다.


엄마의 음식을 평생 '기억'하는 방법이 없을까. 엄마와 함께 음식을 하며 엄마의 레시피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해보지만 내가 엄마의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한다고 엄마의 맛이 그대로 재현될 리도 없다. 그래도 언젠가 이 프로젝트를 엄마와 함께 진행해 보고 싶다. 엄마의 맛을 오래오래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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