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ozak Apr 02. 2021

까만 비닐

: 어둠 속에서

까만 비닐은 재활용도 되지 않는다

한 번 쓰고 버려질 인생

하찮고 하찮아


쓰레기통도 아니고 그냥 막 버려진 까만 비닐은

정처 없이 마을을 떠돌다 바람을 만났다

바닥을 스치던 바람은

가볍고 여린 까만 비닐을

힘들일 필요도 없이 슬쩍 들어 올렸다


자신도 모르게

세상에서 발이 떨어진 까만 비닐은 두려워졌다


누구와도 손을 잡지 않고

세상에서 멀어져 본 적이 없어


눈을 질끈 감은 까만 비닐은 계속 밀려오는 바람에

누구도 닿을 수 없는 곳까지 떠올랐다


나는 지금 어디일까?


까만 비닐은 슬쩍 실눈을 떠보다 눈이 커졌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이 한눈에 담겼다

처음 보는 세상은 눈을 떼지 못하게 아름다웠다

이런 광경은 누구라도 마주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내 아래의 몇몇 사람들이 나를 바라본다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지 궁금한 눈빛이다


나의 삶은 비록 하찮다지만

이런 순간을 목도할 기회가 있다면

내가 줄곧 까만 비닐이라도 괜찮아


까만 비닐은 그렇게 한동안 파란 하늘에 머물렀다

이전 21화 우울함의 기록들 사이에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