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건축가가 남긴 까사 바트요와 까사 밀라
사실 이탈리아 로마에서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넘어올 때 생전 경험하지 못했던 항공성 중이염에 시달렸다.
신랑을 붙잡고 끙끙 앓으면서 2시간을 넘어왔다. 항공성 중이염은 기내의 기압 변화로 생기는 증상인데, 발이 땅에 닿는 순간부터 증상은 점차 나아졌다. 어마어마한 고통에 이제 비행기 탈 때는 무조건 미리 약을 처방받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밤 12시 호텔 도착.
우리가 바르셀로나에서 묵은 호텔은 H10 Metropolitan이다.
카탈루냐광장에서 도보 3분 거리, 편리한 대중교통, 발코니 및 테라스 객실, 루프탑 수영장까지 모두 갖춘 곳이다. 사실 이 호텔은 우리가 직접 검색해서 여행사에 예약 요청을 했다. 앞서 1편에서 이야기했지만 반자유 여행은 여행사에서 호텔을 리스트업 해주는데, 굳이 그중에서 고를 필요 없이 개인적으로 원하는 호텔을 찾아도 된다는 사실. 우리는 가격이 좀 더 비싸더라도 여러 장점을 생각해 이곳으로 선택했다.
늦은 밤 체크인. 추가 비용을 지불할 테니 발코니룸으로 배정받을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이미 예약이 찬 상태였다. 아쉬운 마음이 컸지만 너무나도 친절한 프런트 직원들의 응대로 아쉬움도 녹고 피로도 노곤노곤 녹았다. 우리는 다음날 아침에 예약되어 있는 가우디 투어를 위해 부랴부랴 짐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다.
서울과 바르셀로나의 시차는 7시간.
'원래 시차 적응을 잘하는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로 나와 신랑은 아침 7시 초롱초롱하게 눈을 떴다.
아침 8시 30분 가우디 투어 집결지인 까사 바트요로 향했다. 까사 바트요 앞에는 아주 많은 여행객들이 모여 있었고, 다양한 여행사의 가이드들이 여행객들을 안내 중이었다. 우리가 신청한 가우디 투어는 우리 포함 세 쌍의 신혼부부가 함께 했다. 가이드, 두 부부와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무선 수신기에 이어폰을 끼웠다. 가이드분의 자세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안토니 가우디
스페인 카탈루냐 출신의 천재 건축가. 스페인의 아르누보 건축의 중심인물로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사람. 평소 건축적인 영감을 자연에서 많이 얻었으며, 성당 관련 건축 일을 하면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카탈루냐의 전통 건축을 재해석해 자신만의 양식으로 만들었고, 독특함 속에 합리적인 구조를 갖춘 건축물들을 완성했다.
가우디 투어의 첫 번째 건축물. 까사 바트요
까사 바트요를 처음 본 순간, 무슨 이렇게 특이한 건축물이 있지 싶었다. 네모 반듯하고 정형화된 건물 속에서 살다가 곡선의 미가 두드러지는 입체적인 건축물을 보니 매우 낯설었다.
까사 바트요는 직물업자였던 바트요를 위해 지은 건물로 그의 걸작으로 꼽힌다.
혹시 까사 바트요를 보면 해골과 사람의 뼈가 떠오르지 않는가?
발코니랑 기둥은 해골과 사람의 뼈를 형상화했으며, 건물을 뒤덮은 세라믹은 용의 비늘을 뜻한다. 까사 바트요는 바르셀로나의 수호성인 산 조르디 전설(기사 게오르기우스가 악한 용과 싸우는 이야기)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겉모습과 내부 곳곳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지붕을 자세히 보면 전설 속 용의 모습도 보인다.
까사 바트요에 가면 꼭 찍어야 하는 츄파춥스 인증샷.
가이드분은 우리에게 츄파춥스를 나눠주면서 얼른 인증샷을 남기라고 하셨다.
현재 까사 바트요는 바트요 가문 소유에서 츄파춥스 창립 가문인 Enric Bernat 가문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이쪽에서 보아도 저쪽에서 보아도 누가 보아도 가우디의 건축물임을 보여주는 까사 바트요. 밤에 가보면 화려함이 더욱 배가 된다. 우리는 일정 상, 까사 바트요의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내부 투어를 하려면 블루 티켓, 실버 티켓, 골드 티켓 중 하나를 구매해야 한다. 내부 투어를 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가우디가 만들어낸 곡선의 아름다움, 생동적인 느낌은 충분히 느끼고 왔다. 바르셀로나에 다시 간다면 그때는 꼭 내부까지 둘러보고 싶다.
예비 신혼부부를 위한 TIP.
앞 구르기 하면서 봐도 뒤구르기 하면서 봐도 가우디의 대표 건축물입니다. 화려함을 꼭 느껴보세요.
낮과 밤 둘 다 방문해 보길 바라며,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내부 투어까지 추천합니다.
매년 4월 말 산 조르디 축제(4월 23일 산 조르디의 날)를 진행합니다. 장미꽃으로 뒤덮인 까사 바트요를 만나보실 수 있어요.
가우디 투어의 두 번째 건축물. 까사 밀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까사 밀라는 가우디가 바르셀로나의 큰 부자였던 밀라 부부의 의뢰를 받아 지은 집이다. 가우디는 몬세라트 바위산에서 영감을 받아 거친 돌의 미학을 살렸는데 이를 본 사람들의 평가는 '기괴하다', '이상하다', '볼품없다'라는 비판 뿐이었다. 시간이 흐른 뒤에야 독창적인 건축 양식을 만들어냈다는 찬사를 들을 수 있었다.
까사 밀라의 특징은 옥상에서 찾을 수 있다. 영화 '스타워즈'에 영감을 준 옥상의 조각상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가우디가 수호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까사 밀라에는 현재 거주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1층, 중정, 옥상만 둘러볼 수 있다. 까사 밀라 역시 일정 상, 내부까지 둘러볼 수 없어서 아쉬움이 남았다.
가우디 투어 번외 편. 까사 예오 모레라, 까사 아마트예르
가우디의 건축물은 아니지만 중세 시대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두 건물을 소개한다.
독특하고 화려한 까사 바트요 옆에 있어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는 것 같지만 이들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
유이스 도메네치 몬타네르가 건축한 까사 예오 모레라 1층에는 스페인의 명품 브랜드인 로에베 매장이 있어서 슬쩍 들려보는 것도 좋겠다. 우리도 투어 끝나고 들려서 이것저것 매보고 왔다는 사실.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인 호세프 푸이그이 카다 팔츠크가 지은 까사 아마트예르 1층에는 유명한 초콜릿 카페가 있다. Cafe Faborit.
아마트예르는 초콜릿 공장 사장으로 알려졌는데, Cafe Faborit에서는 아마트예르 집안에서 만든 초콜릿을 맛볼 수 있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를 먹어봤는데 이 맛은 후편에서 공개할 예정.
단조롭고 정형화되어 있던 일상에서 벗어나 생동감 넘치는 곡선의 미학을 배웠던 이튿날 아침.
인생에 있어서 곧고 빠른 직선, 딱딱 떨어지는 직각만이 정답이 아님을.
오르락내리락, 굽이굽이 돌아가는 곡선이 필요할 수 있음을.
앞만 보고 일직선으로 달려왔던 20대와 다르게 어디로 구부러질지 모르는 곡선 위에서도 균형을 잃지 않고 잘 흘러가는 30대가 되기를. 곡선 위의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는 어른이 되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