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적인 전원도시를 향해
구엘공원에 가기 위해 택시를 잡았다. 같이 투어하는 신혼부부와 함께 탔는데, 택시에 흐르는 정적이 싫어서 내가 먼저 대화를 건넸다. 인터뷰하는 버릇이 남아 있다 보니 그 부부의 나이, 만난 동기, 여행 코스 등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들의 이야기, 우리의 리액션이 더해져 20분의 이동 시간이 즐거웠다. 그 부부는 신혼여행을 마치고 다음날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아직 잔여 횟수가 남아 있다며 바르셀로나 교통권을 우리에게 줬던 착하고 친절했던 두 사람.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있을까.
관광객들로 붐비는 구엘공원 후문 도착.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쨍쨍한 햇살에 선글라스를 꺼냈다. 맑은 날씨를 자랑하는 바르셀로나다웠다. 매점에서 생수 한 병을 사고 가이드를 따라 에우세비 구엘이 후원하고 가우디가 설계한 유토피아, 구엘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예비 신혼부부를 위한 TIP.
구엘공원 유료 입장은 후문 쪽에서 할 수 있어요. 티켓팅을 하고 후문으로 입장하면 공원 전체를 둘러보기 훨씬 편해요. 또 메인 스팟인 중앙 광장과 가까워요. 성인 기준 입장권 가격은 10유로 정도입니다.
구엘공원 교통편은 버스나 메트로 대신 택시를 추천해요. 메트로 3호선을 타고 이동해야 되는데, 하차 후 한참 올라가야 합니다.
가우디의 최고 후원자였던 구엘은 최고급 전원주택 단지가 모여있는 이상적인 도시를 만들고자 가우디에게 설계를 의뢰했다. 바르셀로나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60여 곳의 집을 짓고 분양할 계획이었으나 도심에서 먼 거리와 비싼 가격에 이곳을 선호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결국 예산 문제로 가우디의 집과 건물 두 채, 광장만 지어진 채 방치되었다. 1920년대가 되어서야 바르셀로나 시의회에서 이 땅을 사들였고 공원으로 조성되어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었다.
가이드의 자세한 설명을 듣고 자유롭게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바르셀로나에서 소원을 빌게 될 줄이야. 소원을 이뤄주는 나무.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에서 영감을 얻던 가우디가 구엘공원을 설계할 때 이 나무를 베어낼 수 없어 건축물의 일부분처럼 그대로 두었다고 한다. 이 나무를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데, 나도 간절한 소원을 담아 쓰담쓰담 만져봤다.
나처럼 간절한 사람들이 많았는지, 나무가 만질만질했다.
꼭 들어주세요. 내 소원.
언덕을 따라 걷다 보면 가우디의 집이자 박물관이 나온다. 중앙 광장으로 가는 길바닥에는 동그란 돌들이 둘러져 있는데, 이는 신앙심이 두터웠던 가우디가 묵주를 형상화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드넓은 중앙 광장에 도착했다. 야자수와 푸른 하늘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탁 트인다.
이곳에 반드시 꼭 봐야 하는 것이 있다. 가우디가 만든 벤치다.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돼 그 시대의 '시디즈' 의자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앉아봤는데, 편안함까지는 모르겠다. 사진은 일단 남기자.
정교하게 붙어있는 모자이크 타일이 더 눈에 들어온다. 이것은 깨진 타일의 결을 살려 모자이크 방식으로 붙인 것인데, 트렌카디스 기법이라고 한다. 곡면의 특징을 살리는 데 매우 적합하다. 잘못 사용할 경우, 유치하거나 과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동화 속 같은 구엘공원에는 잘 어울렸다.
내가 앉아있는 왼쪽에 작은 구멍을 볼 수 있다. 이 구멍은 빗물이 저수조로 흘러갈 수 있게끔 만들어 놓은 친환경적인 장치로 가우디의 섬세한 설계에 한 번 더 놀랐다.
예비 신혼부부를 위한 TIP.
구엘공원 중앙 광장 벤치에서 사진은 필수. 항상 이곳은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빕니다.
경치가 잘 보이는 스팟을 먼저 살펴보세요. 저희 커플 사진은 외국분들이 흔쾌히 찍어주셨어요.
중앙 광장에서는 바르셀로나 도심과 해변이 한눈에 보이는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다. 이곳이 공원이 아닌 고급 전원주택 단지가 들어왔다면 오랜 시간이 지나도 집값이 솟구치지 않았을까 싶다. 한국으로 치면 한강뷰를 끼고 있는 아파트처럼 말이다. 바르셀로나가 그리워질 때, 하나씩 끄집어 볼 수 있게 눈에 이 풍경을 오래도록 담았다.
마치 패션쇼의 런웨이를 연상케 하는 이곳. 구엘공원 회랑.
가우디는 파도에서 영감을 받아 벽부터 기둥까지 사선으로 기울어진 회랑을 설계했다. 구엘공원이 목적대로 전원주택 단지가 되었다면 이곳은 시장이 될 장소였다. 이 회랑은 바르셀로나의 뜨거운 태양을 피해 시원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졌으며, 가우디의 세심함을 엿볼 수 있는 포인트다. 파도가 치는 듯한 엄청 긴 회랑. 당연히 관광객들이 놓쳐서는 안 되는 포토 스팟이라는 사실. 실제로 루이비통 2025 크루즈 컬렉션이 이곳에서 진행된 바 있다.
그리스 신전 같은 이곳, 86개의 기둥과 살라 이포스틸라
움푹 들어간 천장에 그려진 것은 해와 달, 구름 그리고 사계절을 나타낸다. 이 부분 역시 중앙광장의 벤치처럼 트렌카디스 기법이 사용되었다. 첫 번째 사진을 보면 한 관광객이 바닥에 휴대폰을 두고 사진을 찍고 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는 방법인데, 천장에 그려진 사계절과 우리의 모습을 함께 담을 수 있다.
86개의 기둥은 그리스 신전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으며, 비의 형태를 표현했다고 한다.
살라 이포스틸라를 지나 정문으로 내려오면 구엘공원을 지키는 도마뱀 분수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 지하수를 지키는 거대한 뱀 피톤을 연상시키는 작품으로 빗물을 모아둔 지하 저수조부터 물이 계속 순환되도록 만들어졌다. 도마뱀 분수 또한 관광객들의 필수 포토 스팟이다.
가우디의 재기 발랄한 건축 아이디어 뒤에는 가우디의 오랜 친구이자 가장 큰 후원자인 구엘이 있었다.
가족을 잃고 건축과 신앙만이 전부였던 가우디의 인생에서 구엘은 어떤 존재였을까. 가우디가 꿈꾸던 유토피아는 무엇이었을까. 사람도 건물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며 건축에 매진한 그의 천재성이 대단하면서도 측은하다.
바르셀로나를 중독의 도시로 만든 가우디의 우직한 프라이드. 나 역시 그 중독에 빠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