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의 '맛 따라 멋 따라' 후쿠오카 여행이 끝나는 날. 이 날도 역시나 날씨가 좋았다. 떠나기 아쉬울 정도였다. 새로운 곳을 가기에는 시간의 제약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곳의 향기를 맡으며 곳곳을 산책하기로 했다. 호텔 체크아웃 후 짐은 호텔에 맡기고, 길을 나섰다. 덥지만 마냥 걸었다. 강변을 걷기도 하고, 시장을 가보기도 했다. 무언가를 특별하게 하지 않았다. 그저 동네 주민인 듯이 걸었다. 적응이 빠른 우리는 그새 후쿠오카가 익숙해졌나 보다. 이제 무더운 더위도, 들려오는 일본어도, 오른쪽에 있는 운전석도 낯설지가 않다. 낯설지 않다는 것은 여행이 끝나간다는 신호였다. 후쿠오카에 도착한 첫날에는 낯설고 조심스러웠는데 말이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커피 한 잔을 하고, 시티팝을 들으며 공항으로 향했다. 왠지 출국할 때는 80년대 일본 시티팝을 듣고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 되어버린 '마츠바라 미키 - Stay With Me / Mayonaka no Door'랑 '마츠다 세이코 - 푸른 산호초'를 들으니 후쿠오카라는 도시를 온전히 즐긴 것 같았다. 낮에는 특유의 맑은 분위기가 있고, 밤에는 화려함이 있는 곳. 그래서 사람들로 붐비는 곳. 일본 여행이 처음인 사람이 가장 쉽게 가볼 수 있는 곳이며, 맛집이 구석구석 차있는 곳이 후쿠오카다.
후쿠오카에서의 첫날부터 맡았던 좋은 향기. 달콤하기도 하고 꽃 향기 같기도 하고, 묘하게 매력적인 향기였다. 길거리에서도 호텔에서도 이 향기가 났다. 한국에 돌아와서야 이 향기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소후란 아로마리치 줄리엣이라는 일본의 유명한 섬유유연제 향기였다.
섬유유연제, 향수에 진심인 나는 일본 직구로 이 제품을 구했다. 빨래를 널 때마다 8월의 후쿠오카가 스친다. 내 머릿속에 여름의 후쿠오카가 이렇게나 선명한데, 벌써 겨울이 되었다니. 하루에도 몇 번씩 추억을 곱씹는다.
스페인은 신선한 오렌지주스, 체코는 진한 에스프레소 같았다면, 일본 후쿠오카는 사과주스 같았다. 한 입 마시면 상큼한 무언가가 있다. 뜨거웠던 8월의 후쿠오카에서 초록의 여름을 주섬주섬 주머니에 담았고, 추운 이 겨울에 땔감처럼 잘 사용하고 있다. 땔감이 떨어질 때쯤, 일본에 다시 한번 갈 생각이다. 그때는 일본의 소도시를 돌며 예쁜 단풍을 주어 올 것이다.
소복소복 내리는 함박눈을 보며 여름의 후쿠오카를 살며시 꺼내보았다. 내 마음이 닿는 곳 어디든 가보고 싶다. 여행의 추억은 나를 살게 하니까. 다음 여행에서 만들어질 어마어마한 추억을 담을 수 있는 커다란 캐리어를 하나 더 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