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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지 Jun 06. 2021

돈에 대하여

문득 샤워하다가 든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가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싶어 오래간만에 브런치를 열었다.


돈이 지배하는 삶

20대 초반에는 돈이 많은 것을 지배했다. 갖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학업과 병행하며 벌 수 있는 돈이 많지는 않았기에 무엇을 결정할 때 가격이 중요한 요소였고, 돈 때문에 의기소침해지거나 서러운 경험이 종종 있었다. 만으로 스물여덟이 된 지금의 나는 여전히 풍족하진 않지만, 무엇을 결정할 때 가격보다는 나의 마음을 더 들여다보게 되었다. 돈은 현실이고 숫자지만, 돈의 지배를 받느냐 아니냐는 마음의 문제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샤워를 하면서 '내가 지금 더 많은 돈이 있다면 무엇을 바꿀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작게는 수건, 잠옷부터 좋은 것으로 바꾸고 싶었다. 음 그리고 넓은 집도 사고 차도 사겠지? 하지만 그런 것들을 소유했을 때 내가 더 행복해질까? 질문했을 때, 꼭 그렇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에 풍족함이 생기고 찾아온 변화

사실 최근까지도 돈 때문에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운영하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기는커녕 돈을 다른 곳에서 벌어와서 회사 통장에 넣어야 했던 사업 초기 1-2년은 누군가에게 돌려줘야 하는 돈이 있다는 사실이 큰 압박이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돈을 쓰는 일에 죄책감이 들었다. 사업이 조금씩 안정화되며 부채와 함께 미안한 마음을 청산하고, 사업을 시작한 지 약 2년 만에 (귀여운 수준이지만) 월급을 받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업도 바빴지만 생활비를 벌기 위해 프리랜서 일도 놓을 수 없었는데, 그때 느껴지던 마음의 풍족함이란! 그게 딱 1년 전이다.


그 조금의 여유가 지난 1년간 돈과 소비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를 가져왔다.

1. 돈보다는 소비가 가져다주는 경험에 집중하게 되었다. 약속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쓰게 되면 그게 스트레스로 다가왔었는데, 지금은 그걸로 좋은 경험을 하고, 같이 보낸 좋은 시간에 만족한다.

2. 삶에서 중요한 요소에는 돈을 아끼지 않게 되었다. 책이나 강의 구매, 좋은 식재료 사기, 소중한 사람들 챙기기, 좋은 컨디션 만들기. 배움과 성장, 나의 건강, 가족과 소중한 친구들, 나를 지지해주는 주변 사람들이 돈과 비교할 수 없게 중요하다.

3. 사소한 것에는 고민하는 에너지도 쓰지 않기로 했다. 식당에서 메뉴 고르기, 장보기, 여행 숙소나 차편 구하기 등. 그렇게 자주 있는 일이 아니라서, 여기저기 몇천 원/몇만 원 아껴봤자 큰 차이는 없다. 그리고 여전히 과소비를 하진 않지만, 가끔은 좋은 곳도 가고 좋은 것을 경험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4. 삶의 질을 향상하는 요소에는 최상의 것을 선택한다. 성에가 끼고 식재료가 유난히 빨리 상하던 저가 소형 냉장고와 매일 아침마다 뻐근한 몸으로 일어나게 되는 침대, 고장 난 헤어드라이어를 좋은 것으로 바꾸자 일상이 조금 더 풍요로워졌다.


가장 큰 변화는 사업이 점점 더 흥미로워지고 더 중요해지면서, 개인적인 소비는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된 것이다. 소비나 소유보다는 내가 하는 일에서 느끼는 보람과 희열, 성장에서 의미를 찾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 안 가꾸고 다니는 나의 모습에 현타가 와서, 요즘은 다시 말끔한 옷을 사 입고 화장도 하기 시작했다. 무엇이든 과유불급!)


무시할 수 없는 현실

돈 때문에 오는 스트레스는 겪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그 구간을 지나, 꽤나 평화롭게 살고 있었는데 최근 돈 때문에 서러운 일이 있었다. 8년 전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고 우리 가족은 무소유가 되었다. 심적으로 힘들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아직 일할 수 있는 건강한 몸과 지낼 곳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기댈 곳이 없어서 더 간절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다! 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으로 살아가고 있다.


최근 은행에 회사로 신용대출 심사를 넣었는데, 전화가 와서 뜬금없이 부모의 재산을 물어봤다. 없다고 하자, 담당 은행원은 내가 질문을 잘못 이해한 줄 알고 두세 번 재차 확인한다. 정말 집도 없고 차도 없다고요?


집이나 차가 없어서 서러웠던 적은 없다. 오히려 집값이나 수리, 보험 등을 신경 쓰지 않아도 돼서 좋다. 지금 반려인과 전월세로 살고 있는 집은 작기는 하지만, 채광과 풍경, 높은 층고가 좋아서 무척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차는 필요한 일이 거의 없고, 필요할 때는 용도에 맞는 차를 쏘카로 빌려 탄다. 비싼 물건이 없어서 잃어버리거나 손상을 걱정할 일도 없고, 집에 도둑이 들면 그분께 미안할 정도로 가진 게 별로 없다. 소유한 게 적어서 오히려 더 가뿐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 저 질문이 내 마음에 비수로 꽂혔다. 그 은행원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지만, 현실을 직시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행복을 나누는 것으로 만족했는데, 조금 더 큰 목표가 생겼다.


새로운 목표

어떤 형태이든 사업은 결국 누군가가 총대 매고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어서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지불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번다는 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산다는 것 같다. 연고나 투자도 없이 정말 0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우리의 제품을 구매한 분이 몇 만 단위가 되었지만 (!) 우리는 아직도 한참 멀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들이 더 우선순위였다면, 이제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더 귀를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부자의 삶을 동경해본 적은 없지만,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사업을 만드는 것은 꽤나 멋진 일인 것 같다. 돈을 많이 벌면 우리를 믿고 함께 하는 팀원들에게 더 좋은 대우를 해줄 수도 있고, 같이 일하는 협력 업체나 사람들에게도 비용을 깎지 않고 마음껏 기량을 발휘하도록 지지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을 지키고, 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시작해 지금은 탑이 된 유명인사들의 이야기가 큰 위로가 되는 요즘이다. 나도 잘 돼서 다른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길. 그리고 사업적으로도 잘 해내서 누군가의 영감이 되고, 좋은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열심히 준비한 것이 생각만큼 반응이 좋지 않을 때 불안함이 엄습하는 여전히 초짜 대표지만, 지치지 않고 묵묵히 꾸준히 해나갈 것. 우리의 노력이 차곡차곡 쌓여 빛을 발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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