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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영 Dec 24. 2020

<불쌍한 사람들>

코로나 중증인 환자를 치료할 중환자 병상이 없어서 정부에서 병상 동원 행정명령을 내렸다.

나는 정부가 행정명령 내린 것이 잘못된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매일 확진자가 천명 가량 되는데 수도권에 중환자를 위한 가용 병상이 한 자릿수인 것은 너무나 위험천만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절벽 앞에 다다른 지금, 행정명령을 내리는 것 외엔 다른 뾰족한 수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진짜 뒷북이라는 생각이 든다.

중환자 전문 간호사로서 혼자 무리 없이 일할 수 있으려면, 교육기간이 끝난 후에도 임상에 적응하는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다양한 기저질환을 가진 환자들을 보고, 여러 응급상황을 옆에서 보고 직접 경험해보면서 그런 상황이 닥쳤을 때 당황하지 않고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코로나 환자를 보는 의료진의 경우 레벨D라는, 입는 법도 어려운 격리복을 입고 PAPR이라는 호흡보호구 등을 장착해야 하기 때문에 격리실에 들어가기 전 준비시간이 10~15분 정도 걸린다.

만약 환자 혈압이 급격하게 떨어지거나 산소포화도가 저하되고 심장이 멎는 응급상황이 오더라도 바깥에서 그런 상황을 인지하고 도와주러 들어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15분이면 호흡정지가 온 환자가 사망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짧은 시간 교육을 받고 실전 경험이 거의 없이 투입된 간호사가 혼자 그 15분을 침착하게 잘 버틸 수 있을까?

급조된 코로나 중환자 병동에 파견 나간 간호사가 여기서 치료받는 환자들이 불쌍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1~2주간의 짧은 교육을 받고 성급하게 투입되어 격리실에서 중환자와 혼자 맞서야 하는 간호사들이나 그런 간호사에게 생명을 맡길 수밖에 없는 환자 모두 불쌍하다. 모두가 불쌍한 사람들이다.

이렇게 코밑에까지 물이 차오르기 전에, 대구에서의 쓰라린 경험을 바탕으로 미리 준비를 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올해 초에 대구에서 중환자 진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때, 전문가들이 겨울에 대유행이 올 거라고 경고했을 때, 수도권과 광역시마다 거점병원들을 정하고 상급종합병원 측과 협의해서 중환자 전문 의료진을 양성할 수 있게 지원을 하고 미리 인력들을 트레이닝시켜놨었더라면 어땠을까?

정부에서 상급종합병원마다 병상수의 1%만큼 코로나 중환자 병상을 만들어내라고 했다는데 아마 각 병원 규모에 따라 10~20 병상 정도가 아닐까 한다.

뉴스를 보는 일반인들은 커다란 건물을 몇 개씩 가지고 있는 대형병원에서 한 10~20개 정도 병상 마련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닌 일처럼 생각할 것 같다.

참고로 “고작” 20 병상을 운영하던 서울대병원 응급중환자실에 소속된 인력이 60명이 넘는다. (이것은 청소나 이송을 담당해주는 분들이나 여러 병동을 오가며 일하는 의사 같은 인력들을 제외한 숫자다.)

일반 중환자를 보는 경우 간호사 한 명이 2~3명의 환자를 보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그 정도다. 하지만 격리병상의 특성상 1:1로 간호를 할 수밖에 없는 코로나 병동은 그 2배가 필요할 것이다.

단순히 계산해봐도 20 병상을 운영하는 데에 100명이 넘는 인력이 투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근무 중에 격리복이 찢어지거나 문제가 생겨서 자가격리에 들어가게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산술적으로 계산한 인력보다 여유인력이 더 많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런 사정들을 따져보면 병원마다 며칠 만에 중환자 병상 열댓 개씩 뚝딱 만들어 내라는 건 청와대를 하루아침에 베르사유 궁전처럼 바꾸라는 주문같이 터무니없어 보인다.

백여 명의 간호사들을 차출하기 위해서는 일반 환자 진료를 대폭 축소해야 한다. 하지만 겨울에는 뇌졸중 환자들도 많이 오고, 노인들이 빙판길 낙상으로 인한 골절, 폐렴 등으로 더 많이 병원을 찾는다. 코로나 이외의 환자들이 제대로 진료를 받는 데에 아무런 차질이 없을 수가 없다. 결국 내부적으로는 뭔가 문제가 생길 것이다.

병상이 즉시 가용 가능한 상태로 제대로 준비되었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며칠 후면 정부는 중환자 병상 몇 백개가 확보되었다고 광고를 할 것 같다.

몇 백 병상을 지킬 몇 천명의 중환자 전문 간호사들은 둘째 치고, 몇 백대의 인공호흡기나 high flow, CRRT, ECMO, infusion pump 등이 과연 며칠 만에 제대로 준비될 수 있을까? 의료기기는 굉장히 비싸다. 작은 기계도 몇 십만 원, 큰 기계는 자동차 한 대 가격을 웃돈다.

메르스 때 삼성서울병원의 손실 보전 금액 607억 원을 5년이나 지난 지금에서야 준다는 정부를 뭘 믿고 코로나가 끝나면 필요 없어질 그 비싼 의료기기들을 수억 원을 들여 덜컥 덜컥 살 수 있을까? 코로나 상황이 아니었으면 정부가 삼성병원에게 607억 원을 지급한다고 했을지도 의문이다.

아직 겨울이 두 달 넘게 남았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그.나.마. 빠른 거라고 하니 지금이라도 준비를 하는 게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를 내년 1, 2월을 생각하면 현명한 선택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말 많이 늦었다. 1차 유행, 아니 2차 유행 때라도 중환자 병상 부족시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대해 상급종합병원들과 협의하여 구체적인 지침을 마련해놓았었다면 어제 사망자가 24명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참 희한한 게...국회의원이나 정치인 중에도 60세 이상인 사람들 많고, 연세가 있으신 만큼 기저질환 있으신 분들도 참 많을 텐데... 미국 대통령, 프랑스 대통령은 걸려도 자긴 코로나 안 걸릴 것 같은가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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