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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Dec 22. 2017

#6. Firenze, Italy

바르지 않아도 아름다워, 피사의 사탑.

 여행하는 45일 동안 비를 만난 적이 없다. 한 여름의 유럽은 뜨겁고 붉었다. 맑은 날씨를 예찬하는 날이 대부분이었고 피렌체에서는 특히나 날이 더 좋았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던 그날들.

세례당, 두오모, 피사의 사탑이 차례로.

 이틀 전, 양이 많아 남겨 온 칼조네로 점심을 해결하고 오후 늦게 미적대며 버스를 타고 피사에 도착했다. 하늘을 합성한 것 같아 보이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현실이었다. 그곳에는 정말로 이 세 건물밖에 볼 것이 없었는데 그것으로 충분했다.

어느 각도로 보아도 훌륭.

 오래된 시간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외관이 현재와 어울려 더욱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세 건물의 색이나 질감은 모두 달랐지만 풍기는 분위기는 모두 같았다. 굳건하고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새카맣게 그을린 발을 보며 그의 45일을 느낄 수 있었다. 키 차이만큼이나 발 크기 차이도 어마어마하다. 우리는 잔디에 누워 피사의 사탑을 바라보았다.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탑은 약간 기울어진 채로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탑이 무너질까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내가 삐뚤어진 것이냐, 네가 삐뚤어진 것이냐.

 가까이서 보면 정말 많이 기울어있다. 점점 더 기울어 가고 있다니 언젠가는 무너지겠지? 지금 이 순간, 이 기울기로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신기했다. 올라가 볼 용기는 나지 않아 밑에서 구경만 했다. 유럽의 건물들이 이국적인 것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나는 유독 유럽의 나무에 관심이 많이 갔다. 사탑 뒤로 보이는 길고 곧은 나무들과 칼같이 정돈된 정원. 잔디는 또 얼마나 푸른지. 마치 인형의 집처럼 작위적이면서도 예쁜 모습은 이국적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이런 인증샷은 관광객의 기본자세라고 할 수 있겠다. 은근히 각도를 맞추기가 어려워 꽤나 애를 먹었다. 

Dal O'ste 티본 스테이크

 기차역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고 한국인 손님도 많았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먹은 Za Za 스테이크보다 맛있었다. 굽기가 딱 적당했고 고기도 신선했다. 20% 할인이 되는 종이쿠폰도 있으니 미리 출력해가면 할인받을 수 있다. 유럽에서는 1 메뉴로 나눠 먹는 게 딱 우리의 정량이었다. 스테이크와 와인 한 잔으로 지친 하루를 위로하며 마무리. 어느새 짙은 밤이 찾아왔다. 








2016. 7. 23. SAT

 그렇다. 토요일이었다. 주말이라 어딜 가나 사람이 많았다. 피사의 사탑 자체가 꼭 들러야 할 명소이기에 더욱 북적였다. 그와 극적으로 화해를 하고 원래의 우리처럼 하루를 보냈다. 하루 종일 데이트를 하는 기분이었다. 그와 나는 소위 롱디 커플이라 온종일 데이트를 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소중했던 하루. 원래는 친퀘테레를 가고 싶었다. 계획을 잡고 일정을 짰고 차편이며 맛집까지 모두 숙지한 상태였다. 하지만 일정은 흐트러지기 마련이고 갑작스럽게 닥친 갈등으로 우리는 조금 시간을 허비했다. 돌이켜보면 매 순간 즐기기에도 모자랐을 것 같은데 그때의 나는 다소 긴장한 상태였다. 복잡하고 불운한 감정으로 그를 마주해서 날카롭고 뾰족하게 그를 대했다. 날이 갈수록 마음은 풀어졌는데 그땐 왜 그랬을까. 정말 아까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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