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주, 『마흔의 서재』, 프시케의 숲
43번째 생일을 맞았다. 생일은 어떤 성취나 업적과 상관없이 존재 자체로 축하받는 날이라 각별한 마음이 든다. 올해도 가까운 이들로부터 다정한 축하를 받았다. 특히 아이들이 손수 쓴 카드와 함께 처음으로 꽃집에서 사 온 꽃바구니가 특히 감동이었다. 엄마 생일엔 선물은 없어도 꽃과 편지는 꼭 있어야 한다고 일러둔 지 3년째, 드디어 주입식 교육이 효과를 발휘한 모양이다. 남편 역시 손 편지와 함께 물때 하나 없이 반짝거리는 화장실을 선물로 주었다. 들뜬 며칠이 지나고 난 뒤 나는 원치 않는 선물 역시 받았음을 알았다.
가장 먼저 맞닥뜨린 변화는 눈이다. 분명히 어제 아침만 해도 또렷이 보였던 글자들이 뭔가 흐릿해졌달까? 상이 제대로 맺히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왜 이렇게 뻑뻑하고 피곤한지 종일 읽고 쓰는 활자 중독자의 삶에 빨간 등이 켜졌다. 집 앞 안과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씀 “노안이 시작되었네요. 안구건조증도 있고요.” “노... 노안이요? 벌써요?” 언젠가 올 줄 알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니 당황스럽다. 지금 쓰는 안경은 먼 거리를 볼 때 적합한 안경이라 책 볼 때 쓰는 저도수 안경을 하나 맞추면 눈이 훨씬 편할 거라 신다. 처방을 받고 나오는 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이제 시작이구나. 염색 후 흰머리가 올라오는 주기도 빨라지고, 생리량도 확연히 줄어든 것이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아이와의 관계에서도 변화가 생겼다. 특히 초등학교 6학년인 큰 아이가 달라졌다. 아직 품 안에 착 감기는 둘째와 달리 원래 뻣뻣한 아이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자기주장도 세지고 짜증과 불평이 늘었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고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엔 이내 시큰둥해지는 녀석. 얼른 숙제를 끝내고 집에서 게임이나 하고 싶다나. 얼마 전 주말엔 좋아하던 동네 중식당에 저녁 먹으러 가자고 해도 그냥 혼자 집에 있겠단다. 막내만 데리고 셋이 다녀오는 길, 넷이 똘똘 뭉쳐 지내던 한 시절이 지나갔음을 직감했다. 며칠 전 친구에게 들은 말이 생각났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안고 걷고, 그다음엔 손잡고 걷고, 그다음엔 나란히 걷고, 그다음엔 저만치 앞서 뛰어가는 아이들을 따라 걷고, 그다음엔 그 자리에서 서서 떠나버린 아이들을 기다리는 게 부모의 일생이다.
왠지 마음에 계속 남아 막내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어디쯤 있는 거 같니?”
“저는 나란히 걷고 있는 것 같아요.”
“손잡고 걷던 시절은 지나갔어?”
“네, 지나갔어요.”
“그럼 형은?”
“형은 저만치 앞서서 뛰어가는 것 같아요.”
아, 그렇구나. 나는 몰랐다. 막내와는 아직 손을 잡고 걷고, 큰 아이와는 나란히 걷고 있다고 생각했다. 근데 아니었다. 나는 아이들이 천천히 컸으면 하는 바람이 투영되었을 테고, 아이가 보는 눈이 더 정확하겠지. 집중육아기 내내 그토록 아이들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였는데 이제 와서 아쉬워하다니. “사춘기는 장차 아이의 독립을 위해 부모와 정을 떼는 시기”라던데 아이들과 딱풀처럼 붙어있어야 했던 10여 년 동안 나는 이제 강한 접착력에 익숙해지고 말았구나. 빠르게 궤도를 이탈해 자기만의 우주를 만들어 가는 아이를 볼 때 대견하기보다 마음이 쓸쓸해지는 건 그 때문일까. 모든 게 그대로일 것 같지만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깨달음은 언제나 늦다.
몇 주간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별것 아닌 일에도 괜히 눈물이 나고, 물에 젖은 솜처럼 몸이 무겁고 피곤해 주로 소파와 한 몸으로 지냈다. 또 가을 타는구나 하면서 퉁 치고 있었던 마음을 낱낱이 쓰고 보니 이유를 알겠다. 갑자기 닥친 변화에 당황하고 있었던 거다. 더 이상 좋은 날들은 남아있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아침저녁 찬바람과 함께 마음에 훅 스며들었던 거다. 매일 나를 비워내야 했던 육아, 시어머님 암 투병과 장례, 남편 회사 파산과 이직, 갑작스러운 주재원 발령으로 3년간의 해외 생활까지 나의 30대는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고, 40대가 되어 안정적인 지금이 너무나 좋다고 얘기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인생에 좋은 순간은 역시 짧구나 싶어서 마음이 쿵 내려앉았던 것 같다.
내가 지금 겪는 변화, 자꾸 우울해지는 마음의 실체를 미리 마주한 이의 글을 읽고 싶었다. 도서관에 가서 마흔이라고 쓰여 있는 책을 모조리 일별 했다. 그중에서 장석주 시인의 <마흔의 서재>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장석주 시인은 2009년 광화문 교보문고 ‘광화문 글판’에 소개되어 전 국민이 알게 된 시, ‘대추 한 알’을 쓴 분이다. <마흔의 서재>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쩌다 나이 마흔이 되었을 때 내 푸른 시절은 다 끝났다고 여겼다. 마흔이라니! 미망 속에서 맞은 마흔에 내 마음은 황망하고, 몸과 마음은 오랜만에 대면한 가족같이 데면데면했다. 내 마흔은 온통 잿빛이었다. 망연자실한 채로 맞은 마흔이라는 낯선 사태 앞에서 나는 포름알데히드로 채운 유리병에 갇힌 듯 힘들었다. 숨이 탁 막혔다. 가슴에 별자리같이 품었던 청춘의 꿈들은 흩어져 사라졌다. 그때 희망은 줄고 절망은 넉넉했다. 해는 지는데, 갈 길은 먼 방랑자의 심정이 그랬을 테다. 이제 인생은 내리막길만 남았다고 낙담했다.
- 장석주, 『마흔의 서재』, 4쪽
이 부분을 읽고 나는 이 책이 단박에 마음에 들었다. 구구절절 내 마음을 대변하는 문장 같았다. 작년과 또 다른 올해의 나를 마주하고 보니 어느새 젊은 날은 이제 다 끝난 것 같아 서글펐고, 시작된 아이의 사춘기가 어떻게 진행될지 몰라 지레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제 겨우 읽고 쓰는 삶에 들어왔는데 눈이 흐릿해지다니... 본격적인 레이스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내리막길만 남은 거 같았던 느낌이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싶어 위로를 받았다.
시인은 “인생이 하루로 치자면 마흔은 오후 4시에 해당한다(18쪽)”고 말한다. “새로 시작하기엔 늦은 감이 들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나이, 젊음은 지나가고, 노화를 받아들여야 하는 나이.”란다. (젊음이 지나갔다고 선언하듯 말하는 시인의 말에 잠시 뼈를 맞은 듯 얼얼했지만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자.) 지금이 인생의 사계절에서 어디쯤 와 있을까 자주 가늠해 보곤 했는데 하루를 일생으로 치환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기에 시인의 말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오후 네시라면 하루 중 가장 힘들고 치열한 시간은 지나갔고, 분주한 저녁을 앞두고 잠깐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오후의 빛이 길고 따뜻하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낀다.
시인은 마흔쯤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히려 마음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노자와 장자, 주역같은 고전을 읽으면서 명상과 산책을 했다. 책은 시인에게 피난처나 은신처가 되어 주었고, 그때 읽은 책이 길잡이가 되어 남은 인생을 맞이할 방향과 힘이 되었다. 책에서 묵직하게 와닿았던 부분은 리처드 J. 라이더와 데이비드 A. 샤피로의 『인생의 절반쯤 왔을 때 깨닫게 되는 것들』에서 제시한 ‘인생이라는 단순하지 않은 것을 위한 단순한 공식’이다.
자기가 속한 곳에서place,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며love, 삶의 목적을 위해purpose, 자기 일을 하는 것work.
지금 내가 속한 곳이 있다는 사실, 사랑하는 이들이 가까이 내 곁에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고, 내게 주어진 읽고 쓰는 삶을 꾸준히 성실하게 해 나가기. 크고 높은 것에 마음을 두지 않고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만족하기. 닥칠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오늘을 충실히 누리며 살기. 책을 읽으며 이런 다짐을 적어 내려가다 보니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말 같기도 하지만 원래 생의 진실은 단순한 데 있으니까.
얼마 전 둘째가 백일 때 썼던 일기장을 열어보았다.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나의 밑바닥을 보는 것 같던 나날들이 다시 떠올라 마음이 아리다 이렇게 적어둔 글귀를 보았다.
같은 조산원에서 아이를 낳은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다. 얘기를 하다 00가 어떤 삶을 살고 싶냐고 묻는 말에 “읽고 쓰는 삶”이라고 얘기하곤 흠칫 놀랐다. 그게 내 진심이구나. 그러려면 눈을 아껴야지, 오래도록 책을 보려면... 지금은 책 한 줄 읽을 여유가 없지만 곧 다시 시간은 흐르고 그런 날이 올 거다.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자. (2015. 3. 27 일기 중에서)
이번에도 흠칫 놀랐다. 지금 내가 사는 삶은 10년 전 꼬물이들의 엄마였던 내가 가장 바라던 것이었구나. 어떤 바람은 이루어진 줄도 모른 채 있다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깨닫게 된다. 일기장을 가슴에 품고 그 자리에 한참 동안 머물러 있었다. 왠지 모르게 기운이 났다. “인생에서 가장 좋은 날들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속삭이는 시인의 말을 눈 딱 감고 믿어보고 싶어졌다. 소파에 누워서 의미 없는 영상을 뒤적거리면서 보내던 날들을 청산하고 다시금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내야지. 내 나이 마흔셋, 아직은 햇살이 길게 드리우는 오후 네 시. 내게 주어진 삶을 껴안고 다시금 뚜벅뚜벅 걸어갈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