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6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어제는 가만히 있어도 아프던 발바닥도 괜찮은 것 같아 아침 요가 수업에 갔다.
처음으로 고젝 바이크를 불렀다. 우리집에서 요가원까지 걸으면 25분은 족히 걸리는데, 바이크 타니 7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도착하니 내가 첫번째 학생이라 요가매트 위에 부스터를 깔고 누웠다. 아무도 없는 요가원에서 새소리 들으며 누워있으니 정말 행복하더라.
오늘 수업을 진행한 선생님은 수업을 시작하며 자기가 경험한 최악의 날에 대해 이야기했다. 짱구의 요가 스튜디오에서 자기는 이른 아침 수업을 하고 자기의 요가 스승은 사람이 가장 많이 오는 프라임타임 수업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날도 자기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선생님 부인이 쓰러져서 선생님 수업을 자기가 대신 대타로 뛰게 되었다고... (두둥!) 너무 긴장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라서 자기 선생님처럼 최대한 따라서 수업을 했는데 완전 망했다고 한다. 아마도 자기가 했던 모든 수업 중 가장 최악이었을 거라고. 그렇게 망한 수업을 마무리하고 축 처진 기분으로 핸드폰을 확인했는데, 자기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최악의 날, 힘든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중요한 건 우리가 그걸 어떻게 다루는지이다. 라는 메시지를 남기며 수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오늘 하루 종일 이 생각을 했다. 우리는 갑자기 닥치는 안좋은 일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사실 정말 근원적으로 들어가보면 일어나는 사건 자체에는 좋고 나쁨이 없다. 나에게 일어난 일을 힘든 일, 안 좋은 일, 최악의 일로 만드는 건 우리의 판단하는 마음의 작용일 뿐이다. 그럼 왜 우리는 그걸 좋고 나쁘다로 판단할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준과 기대, 이렇게 되어야만 해라는 상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나만 해도 발바닥이 아프니까 불편하고 실망스럽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여기저기 걸어다니고, 요가 수업도 더 많이 듣고 싶은데 발바닥이 아프니 걷기도 힘들고, 요가 수업도 제대로 들을 수가 없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안아팠던 발바닥이 왜 지금, 우붓에 있을 때 아픈지 원망스럽다. 그런데 조금 생각해보면 내가 아쉬운 이유는 우붓에서는 이렇게 해야만 해 라는 나의 기대가 너무 확고하기 때문이다. 왠지 요가 수업을 하루에 2개는 들어야지 보람찬 하루를 보낸것 같다고 느끼는 나의 기대, 여기저기 걸어다니며 하루에 만 보는 걸어야지 충분히 걸은 것 같다고 여기는 나의 마음, 모두 나의 마음에서 나온 기대일 뿐이다. 이 기대가 없다면 사실 불편할 건 아무것도 없다. 나는 여전히 스쿠터를 불러 타고 여기저기 다닐 수 있고, 많이는 못 걷지만 5~10분 정도 걷는 건 별 무리가 없고, 서 있는 건 꽤 오래 할 수 있다. 심지어 지금 숙소도 너무 좋으니 하루 종일 숙소에서 뒹굴거리고 일하고 고젝으로 맛있는 우붓 맛집 요리들을 주문해 먹어도 된다.
행복한 사람이 된다는 건 행복의 조건을 얼마나 많이 갖추느냐의 문제라기 보다는 얼마나 빨리 상황에 맞게 기대를 수정하고, 포기할 수 있는지에 달려있는 건 아닐까?
아무튼, 그래서 이제 요가에 대한 나의 기대로 살포시 내려 놓으련다. 발바닥이 아프면 아픈대로 충분히 집에서 뒹굴거리며 일하고 쉬면 되고, 발바닥이 좀 괜찮아지면 또 신나게 돌아다니면 되니까.
사진은 오늘의 기분좋았던 풍경들.
우연히 들른 커피숍의 맛있는 롱블랙, 오랜만에 찾은 발리부다에서 먹은 달달구리 스무디볼, 헬레나의 추천으로 가게 된 마사지 숍에서 온 몸이 녹아내리는 마사지를 받은 후에 먹은 맛있는 차 한잔, 숙소 바로 옆 부티크 호텔에서 먹은 나시고랭과 수박 주스.
오늘도 좋은 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