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경력과 재능
‘출판편집자 6년, 영어강사 2년, 디자이너 2년, 인쇄제작 관리자 6년으로 밥벌이를 하고 살았다.’ 라고 브런치 작가 신청에 쓸 소개글을 써놓으니 무척 그럴 듯하다. 다방면에 능한 멀티플레이어가 된 기분이다. 나는 최소한 4가지의 능력을 갖춘 실력자라고. 여기에 전공인 중국어까지 더하면 5가지 능력치를 가진 슈퍼파워 히어로 아닌가. 예전에 일본 드라마를 원작으로 한 ‘직장의 신’에서 김혜수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
지난 번 독서모임에서 ‘내 인생에서 만난 루스 할머니가 있나요?(<닥터 도티의 삶을 바꾸는 마술 가게>)’라는 질문이 있었다. 루스 할머니는 말하자면 인생의 멘토, 스승, 구루이다. 내 인생에서 만난 루스 할머니는 바로 마지막 직장의 보스다. 보스도 최종 보스. 보스와의 첫 만남은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직장을 다니다 그만두고 도전한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재수를 할까말까를 고민하던 시기에 단기 아르바이트로 갔던 회사의 사장님이었다. ‘꿰뚫어본다’라는 의미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보스의 눈빛으로 처음 경험했다. 그는 한낯 단기 아르바이트 직원인 나를 앉혀놓고 본인의 사업, 꿈, 가치관 등을 거침없고 유쾌한 언어로 쏟아냈다.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면서 출근하는 동안 거의 매일 들었다. 그 이후 홀린 듯이 임용고시를 포기하고 그 회사에 취업을 했다. 그리고 영어강사 2년, 디자이너로 2년을 지내고, 2년의 이직 후에 다시 인쇄제작관리자 6년, 이 모든 경력이 한 보스의 휘하에서 가능했던 일이다.
‘너만 잘 따라오면 내가 너를 끝까지 책임지겠다.’ 나의 마지막 직장이라고 생각했다. 평생 직장이라는 말은 사라진지 오래지만, 나는 그 직장에서 상무, 이사가 되어 직장인으로서의 성공의 탄탄대로를 거침없이 걸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었다. 1억 연봉을 받을 날이 곧 오리라! 직원 10명 규모의 작은 회사가 300명 규모의 회사가 되면서 나중에 만난 동료들은 나를 ‘회사에 뼈를 묻을 사람’ ‘회사에 충성된 사람’ 심지어 ‘사장님 측근’, ‘사장님 패밀리’ 이런 수식어를 서슴없이 달아주었다. 심지어 나도 보스 코스프레를 하며 ‘내가 너를 키워주겠다.’는 거만한 생각으로 팀원들을 대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슴 속에 사직서 한 장은 품고 사는 거 아닌가. 그러고보니 나는 사직서를 품고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직원들을 데리고 얼르고 달래면서 사직서를 빼앗는 데 많은 에너지를 썼다. 그러다보니 내 사직서 쓸 생각은 못하고 살았다. 직장이라는 거 어딜 가나 비슷비슷해. 그래도 우리 회사가 좋은 회사야. 다른 회사 가서 고생을 죽도록 해보고 후회해봤자 소용없을 걸.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꼰대 중에 꼰대. 철저히 ‘사측’이 되어 살았다.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그 회사에 뼈를 묻지 않았고, 몸과 마음은 좀 상했지만, 멀쩡히 살아서 걸어나왔다. 뼈를 묻을 것 같던 회사에서 나온 지 1년이 좀 지났다. 슈퍼파워 히어로까지는 아니어도 다양한 경험과 경력을 지닌 능력자쯤은 되는 줄 알았는데, 회사와 직함을 떼고 난 나는 별 거 아니었다. 얕은 전문성과 애매한 실력으로 당당하게 구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16년간 근근히 일하고, 운 좋게 이직하면서 쉬지 않고 밥벌어먹고 살았던 게 용하고 운이 좋았던 것 뿐이다.
출판편집자 6년, 영어강사 2년, 디자이너 2년, 인쇄제작관리자 6년, 마케팅 담당자도 잠깐 1년, 직업적으로 써보지 못한 중국어 전공, 이런 것들로 남은 반평생을 뭘 해서 밥벌어먹고 살까? 일반적인 회사로는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 자유롭고,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는, 최소한의 생활비는 벌 수 있는, 평생 직업(직장 아닌)으로 삼을 만한 일을 찾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책방이 되기로 했어요.’로 마무리하고 싶지는 않다. 여전히 나는 찾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아온, 경험한, 배운 갖가지 재료와 양념들을 모아서 근사하게 차려낼 식탁에 여러 사람들이 둘러앉아 흥겹게 잔치를 벌이는 그 날을 상상한다. 책방이 되기로 한 건 그래도 그런 상상이 가능한 일인 것 같아서이고, 상상이 현실이 될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